알기쉬운 요한계시록 제19장 아마겟돈 전쟁
 이와 같이 이 개구리 같은 세 마귀의 영들은 세상 사람들을 마지막 전쟁으로 유인할 사탄의 강한 대리자들이다. 이러한 상황은 아합왕을 충동하여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내신 기별을 거절하고 도리어 전쟁에 나가게 한 “거짓말하는 영”을 회상시킨다(왕상 22:21-23). 사탄은 이 최후의 위기에서 승리를 거두기로 작심하고, 마귀의 영들에게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부여한다. 이 영들의 설득하는 방법은 기만이다. 기적 행위는 사람들을 참하나님보다는 사탄의 삼위일체의 편에 서도록 설득하기 위한 마지막 시대의 사탄의 기만술의 일부이다(계 13:13-14). 엘렌 화잇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하였다. (261.2)
“미구에 하늘에는 이적을 행하는 마귀의 능력을 알려 주는 증거로서 초자연적인 무서운 광경이 나타날 것이다. 마귀의 영은 땅의 왕들과 온 세상 사람들에게 나아가서 속임수로 그들을 얽어매어 하늘 정부를 대적하는 그의 마지막 투쟁에 사탄과 연합하도록 그들을 강요할 것이다. 그 악한 영들로 말미암아 통치자들과 백성들은 다 같이 속을 것이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그리스도라고 자칭할 것이며, 세상의 구주께 속하는 칭호와 경배를 요구할 것이다.”2
(261.3)
 마귀의 삼위일체가 행하는 활동은 큰 성공을 거둔다. 세계의 민족들은 다시 기만을 당하여 그들의 힘을 하나님의 백성을 대항하는 사탄에게 바친다. 이제, 최후의 전쟁을 위한 무대가 펼쳐진다. (262.1)
 라오디게아에게 보낸 경고 (16:15)
 계시자 요한은 세상 사람들을 최후의 전쟁으로 이끌어 들이는 마귀의 활동들에 대한 기술(記述)을 잠시 중단하고, 예수님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대기만(Great Deception)의 와중에서도 그분에 대한 시선을 잃지 말라는 권고의 말씀을 삽입한다. “보라. 내가 도둑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계 16:15). 이 말씀은 최후의 전쟁의 진정한 본질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최후의 전쟁은 군사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임을 보여 준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빼앗기 위한 전쟁이다. (262.2)
 하나님의 백성은 가까운 장래에 일어날 일들을 심각하게 다루어야 한다. 기만적 기적들을 통하여 악한 세력들은 세상 사람들의 충성심을 앗아갈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까지도 속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은 영적으로 깨어 있고, 경계하며, 대기만에 대하여 항상준비되어 있어야 한다(참고 살전 5:1-8). (262.3)
 예수님께서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게(계 16:15) 하라고 권고하신 것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행해지던 행습을 반영(反映)한다. 야간에 성전 경비대장이 성전 문들에서 근무하는 보초들을 순찰했다. 만약 어떤 보초가 그의 초소에서 졸고 있는 것이 발견되면, 그 보초의 옷을 벗겨 불에 태워 버렸고, 그는 벌거벗은 채로 쫓겨나가는 수치를 당했다.3 이런 행습을 암시하면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 영적으로 깨어 있을 것을 강권하신다. 그들은 성전 보초들 또는 군인들과 같아야 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흡사한 훈계의 말씀을 그분의 제자들에게 하시면서 감람산 강화(講話)를 끝맺으셨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마 13:35-37). (262.4)
 요한계시록 16:15에 있는 예수님의 훈계는 일찍이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하신 호소, 즉 벌거 벗은 수치가 드러나지 않도록 흰옷을 사서 입으라는 권고를 반복한 것이다(계 3:18). 요한계시록에서 옷은 그리스도께 대한 타협하지 않는 충성심과 신실함을 상징한다(3:4-5; 6:11; 7:9, 13-14; 19:8). 이 흰옷은 예수님 이 두 번째 오실 때 그분을 만나기 위해 갖춰야 하는 요구사항이다(19:7-9마 22:11-14). (263.1)
 반면에, 벌거벗은 것은 바벨론의 기만적 현혹 아래 바벨론에 대하여 타협하는 태도를 의미한다(참고 계 17:2; 18:3). 한 패배한 군대의 극심한 굴욕의 상징으로(사 20:4),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패배시켜 “망하게[황폐하게] 하고 벌거벗게” 할 것인데(계 17:16), 이것은 패배한 군대에 대한 심한 모욕의 표시이다(참고 사 20:4). 바벨론과 타협한 자들도 바벨론과 같이 모욕과 수치를 당할 것이다.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의(義)의 두루마기를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계 3:10)에 굳게 설 수 있을 것이다. (263.2)
 아마겟돈 전쟁을 위해 집결함 (16:16)
 마귀의 기만적인 이적들은 어떤 기대나 예상 이상으로 성공할 것이다. 참된 복음을 거절함으로 사람들은 기만적 기적들에 따라오는 거짓말을 믿을 것이다(살후 2:9-12). 세상의 권력들은 히브리어로 “므깃도의 산”을 의미하는 아마겟돈(Armageddon)으로 집결할 것이다. 구약게서 므깃도는 갈멜 산맥(Carmel Ridge)의 기슭의 에스드랠론 평야(Plain of Esdraelon)에 그리고 지중해와 갈릴리 바다 사이에 위치한 요새—도성이었다. 이 도성은 이집트로부터 다마스쿠스로 가는 대로에 서 있어서 팔레스타인으로 진입하기 위한 자연적인 통로를 제공하였다. 이리하여 이 도성은 전략적 요충지였다. (263.3)
 에스드랠론 평야는 이스르엘 계곡(Valley of Jezreel)으로도 불리며, 고대의 유명한 전쟁터로 알려진 곳이다. 구약 시대에 므깃도 도성은 이스라엘 역사의 많은 결정적인 전쟁들을 겪었다. 므깃도에서 드보라와 바락은 시스라와 그의 군대를 패배시켰고(삿 5:19-21), 기드온은 미디아인들과 싸워 승리를 거두었으며(6:33), 사울은 블레셋인들에게 패망했고(삼상 31), 아하시야는 예후의 화살에 맞아 죽었으며(왕상 9:27), 요시야는 애굽의 바로에게 죽임을 당하였다(왕하 23:29-30). (264.1)
 다시 한번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과 악의 세력 사이의 최후의 투쟁을 묘사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역사로부터 친숙한 언어를 사용한다. 하나님의 큰 날의 전쟁을 위하여 종교적 세력과 세속적 세력이 사탄의 삼위일체의 지휘 아래 연합하여 전쟁을 위한 군대로 조직된다. 요한계시록 9:16에서 그들은 마귀의 세력으로 묘사되었고. 그들의 수는 2억(“2만만”)이며, 이는 성도의 수 144, 000과 대조를 이룬다. 이것은 시편 2:2을 상기시킨다.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사 2:2). (264.2)
 므깃도산(Mountain of Meggido)은 므깃도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갈멜산(Mount of Carmel)을 가리켰다. 므깃도 산은 엘리야와 바알의 선지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투쟁들 중의 하나가 발생한 장소이다(왕상 18). 갈멜산에서 결판을 내야 했던 문제는 여호와와 바알사이에 누가 참된 신인가하는 것이었다(18:21).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불은 여호와께서 경배를 받아야 할 유일한 참신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었다(18:38-39). 그런데 최후의 전쟁에서는 참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위조하고 그리하여 온 세계를 속이기 위하여 땅의 짐승이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한다(계 13:13-14). (264.3)
 이 최후의 투쟁에서 결판을 내야 할 문제는 대쟁투의 시작 때에 사탄이 끌어들인 문제, 곧 누가 우주의 합법적 통치자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아마겟돈은 팔레스타인이나 중동의 어느 곳에서 치러질 군사적 전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이 전쟁은 그리스도 및 그분을 따르는 자들과 암흑의 세력 사이에 벌어지는 영적 전쟁이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전쟁이다.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고후 10:4-5) 한다. 이 최후의 전쟁의 결과는 갈멜산 투쟁의 결과와 같을 것이다. 그것은 암흑의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 승리이다. (264.4)
 요한계시록 16:12-16은 실제적으로 전쟁이 벌어지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종교적 세력들과 정치적 세력들이 아마겟돈에 큰 무리로 집결하는 것만을 묘사하였다. 실제적인 전쟁은 여섯째 재앙 이후에 일어나며, 요한계시록 16:17- 19:21에 묘사되어 있다. 요한은 그 후에 다음과 같은 이상을 보았다.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성도의 무리가 호위하는 가운데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는 그리스도와 대항한다(계 19:19; 참고 17:14). 이 전쟁은 합법적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신 그리스도(계 19:16)께서 짐승과 그의 군대를 패배시킴으로 끝날 것이다(19:20-21). (265.1)
 일곱째 재앙 (계 16:17-21)
 성경절 : 요한계시록 16:17-21

 (265.2)
 일곱 천사 중의 마지막 천사가 그의 대접을 공중에 쏟는다. 그 순간, 성전에서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큰 음성이 나서 “되었다(It is done)[다 이루었다]”라고 선포한다(계 16:17). 하나님의 보좌는 하늘의 성전 안에 위치해 있다(계 4-5). 보좌는 창조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권(統治權)과 지상권(地上權)을 상징한다. 요한계시록에서 이 보좌는 사탄의 보좌(2:13; 13:2) 및 짐승의 보좌(16:10)와 상반된다. 그 큰 음성이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음성은 요한계시록 16:1에서 일곱 천사에게 그들의 대접들을 쏟으라고 명하신 그 동일한 음성이다. (266.1)
 신약에서 예수님은 “되었다”[또는 “다 이루었다”]4 라는 선언을 세 번 하셨다. 첫 번째는 갈바리의 십자가 위에서 하신 것이다. 사탄과 싸워 승리하신 것과 마지막 때가 시작된 것을 선포하면서 그분은 “다 이루었다”라고 크게 외치셨다(요 19:30). 두 번째, 여기 요한계시록 16장에서 그 동일한 그리스도의 음성은 지구 역사의 종결과 사탄 및 그의 악한 세력에 대한 최후의 승리를 선포한다(계 16:17). 다시 한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루었도다”라는 말씀은 죄가 근절된 것과 지상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가 영광스럽게 시작되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계 21:6). (26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