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요한계시록 제19장 아마겟돈 전쟁
 마지막 일곱 재앙은 사탄의 삼위일체 편에 가담하기로 결정하고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에게만 한정해서 내려진다. 처음 다섯 재앙은 문자 그대로의 재앙이나, 마지막 두 재앙은 분명히 상징적이고 영적인 재앙이다. 여섯째 재앙이 내리면 세상 역사의 마지막 기간에 일어날 아마겟돈 대전쟁의 초입에 들어선다. 일곱째 재앙은 이 전쟁의 시나리오를 종결짓고, 마지막 때의 바벨론—하나님과 그분의 충성된 백성의 원수—의 멸망을 그려 준다. (256.1)
 여섯째 재앙 (계 16:12-16)
 성경절 : 요한계시록 16:12-16

 (256.2)
 여섯째 천사는 그의 대접을 유프라테스강에 쏟아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을 위해 길을 예비하고자 그 강의 물을 마르게 한다(계 16:12). 이 장면은 상징적이다. 여기서, 사탄의 삼위일체 및 짐승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그리스도 및 마지막 때의 그분의 백성 사이에 벌어질 최후의 전쟁을 묘사하기 위해 고대 바벨론의 멸망에 관한 구약의 언어가 사용되었다. (256.3)
 유프라테스강은 여섯째 나팔 때에 악한 세력과 연관된 최후의 전쟁(계 9:14)에서 벌써 소개되었다. 구약에서 유프라테스 강은 이스라엘과 그의 원수 나라인 앗수르와 바벨론을 가르는 경계선이었다(사 7:20; 렘 45:10). 이 원수 나라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할 때 이 큰 강으로부터 내려왔다. 그들의 공격은 유프라테스 강물이 넘쳐흘러 유다의 땅을 휩쓰는 것으로 비유되었다(사 8:7-8). 유프라테스강은 바벨론 성을 관류(貫流)했고, 그래서 그 도성에 중요했다. 이 강은 작물을 키워 주었고 사람들을 위한 식수도 공급했다. 유프라테스강이 없이는 바벨론이 존재할 수 없었다. (257.1)
 바벨론은 요한계시록에서 둘째 천사의 기별에 소개되었다(계 14:8). 최후의 투쟁에서 주요 역할을 하는 마지막 때의 바벨론의 의미는 구약 시대의 역사적 바벨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바벨론은 하나님의 백성의 억압자로 묘사되어 있다. 바벨론은 유다를 점령하여 그 백성을 포로로 잡아갔다. 유프라테스 강변은 또한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하나님의 백성이 억류되어 있던 곳이기도 하다(참고 시 137). (257.2)
 요한계시록에서 바벨론은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 때에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에 대항하여 연합된 종교적 세력의 상징이다. 요한계시록 17:1-2에서 바벨론은 많은 물위에 앉아서 세계의 민족들을 유혹하는 음녀로 묘사되어 있다. “많은 물”은 유프라테스강을 가리키는 다른 표현이다(참고 렘 51:13). 요한계시록 17:15은, 마지막 때의 바벨론이 위치한 많은 물 또는 유프라테스강은 전 세계적인 시민적, 세속적, 정치적 세력들을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이 세계적 세력들이 한동안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대항하여 싸우는 말세의 배교한 종교적 연합체를 받드는 일에 가담할 것임을 보여 준다. 고대의 바벨론이 유프라테스강에 의하여 유지되었듯이, 이 마지막 때의 종교적 연합체는 전 세계적인 시민적, 세속적 및 정치적 세력들의 지지에 의하여 존재한다. 그러나 어떤 시점에 이르면, 바벨론을 받들고 있는 이 상징적 물들은 말라 없어진다. (257.3)
 유프라테스강이 마름 (16:12a)
 다니엘서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하나님의 백성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BC 539년에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왕(Cyrus the Great)은 그의 대군을 이끌고 와서 바벨론 도성을 포위하였다. 바벨론은 강력하게 요새화되어 있었고, 물과 식량 보급이 풍족하여, 그 시민들은 그 도성이 난공불락(難攻不落)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나라의 지도자들이 벨사살왕의 궁전에서 음주 연회를 즐기고 있던 날 밤에, 그 도성은 페르시아 군대에 의하여 점령되었다(단 5). 고대 역사가들에 의하면, 페르시아 군대는 바벨론 도성을 통해 흐르는 유프라테스강의 물길을 돌려, 그 강이 바벨론 도성을 통과하지 못하게 한 후, 페르시아 군대가 물이 없는 강바닥을 걸어 들어와 그 도성을 순식간에 점령했다고 한다.1 바벨론이 함락되었기 때문에 포로로 잡혀갔던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들의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게 되었다. (258.1)
 고레스 대왕에 의한 고대 바벨론의 함락이 여섯째 재앙 장면의 배경이다. 고대 바벨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기, 마지막 때의 바벨론—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의 원수—의 몰락도 유프라테스 강물의 상징적인 마름[括渴]의 결과로 일어난다. 이 장면은 상징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요한계시록에서 유프라테스강은 바벨론을 지지하는 세계의 시민적, 세속적, 정치적 세력들을 나타내기 때문이다(계 17:15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바 음너가 앉아 있는 물은 떡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바벨론은 그 배후에 모든 나라들을 거느리고 있지만(18:3), 그 세력들은 마침내 지지를 철회할 것이고, 바벨론에게서 돌아섬으로써 그것을 멸망하게 할 것이다(17:15-18). 유프라테스강이 마르는 것은 이런 상징적 의미에서 이해해야한다. (258.2)
 여기에 한 질문이 떠오른다. 그것은 왜 세계의 시민적, 세속적, 정치적 세력들이 갑자기 바벨론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가? 하는 물음이다. 다섯째 재앙까지는 세상 사람들이 자기들을 보호해 줄 것을 바라는 희망의 초점을 바벨론에다 두고 있었다. 자연계의 대변동을 체험하면서, 세상 사람들은 바벨론이 그들을 보호해 줄 것을 바랐다. 그러나 디섯째 재앙이 짐승의 권좌 자체를 치는 것을 목격할 때, 이 미망(迷妄)에서 깨어난 사람들은 바벨론이 그 재앙들의 결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에 무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계 16:10). 기만당한 것을 느끼면서 적개심에 가득한 그들은 바벨론을 대적하고 그것을 파괴하는 일에 연합한다(17:17). (258.3)
 하지만 재앙이 주는 고통도 그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지는 못한다. 세상 사람들은 고통 가운데 혀를 깨물 때, 그들의 분노는 더해 가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저주할 뿐, 회개하기를 거절한다(계 16:11). 이제 그들은 자기들의 분노를 하나님의 백성에게 돌리려 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그들은, 전 세계를 아마겟돈의 대전쟁 속으로 끌어들이는 맹렬한 마귀의 활동을 위한 비옥한 토양이 된다(계 16:12-16). (259.1)
 동방에서 오는 왕들 (16:12b)
 요한계시록에서 유프라테스강이 마르고 이어서 마지막 때의 바벨론이 몰락하는 이유는 “동방에서 오는 왕들” 또는 해 돋는 곳에서 오는 왕들의 길을 예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요한은 구약의 바벨론 정복을 모델로 하는 언어를 사용한다. 해 돋는 곳, 즉 “동방에서 오는 왕들”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한 바벨론을 무너뜨린 고레스 대왕과 그의 군대들을 가리키는 하나의 인유(引喩, allusion)이다. 이사야는 고레스 대왕을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사 45:1),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메시아(God’s messiah) 고레스”라고 일컬었고, 그가 “해 돋는 곳에서”(41:25)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은 포로에서 풀려났고, 그들의 본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사 44:28; 렘 50:33-38). (259.2)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의 최후의 싸움을 묘사하기 위하여 이 역사적 사건을 이용한다. 유프라테스강이 마른 것이 고레스 대왕과 그의 군대가 고대 바벨론을 정복하는 일을 예비한 것과 흡사하게, 상징적인 유프라테스 강이 마른 것도 “동방에서 오는 왕들”이 오도록 길을 예비한다(계 16:12). 고대 바벨론의 경우와 같이, 마지막 때의 바벨론이 무너지는 것도 마지막 패의 하나님의 백성의 궁극적인 구원을 가져다주고, 그들이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길을 준비시킨다. (259.3)
 이 본문에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은 누구인가? 요한계시록은 그들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성도들로 구성된 군대이며, 마지막 싸움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군대임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이 어린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계 17:14). 요한계시록 19:14-16에 보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히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리라(19:14)고 한다.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은 어린양의 신부의 옷이며, 하나님의 백성의 “옳은 행실”을 나타낸다(19:7-8). (260.1)
 어떤 사람들은 “동방에서 오는 왕들”이 하늘의 천사들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이 재림하실 때 하늘의 천사들을 동반하실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마 24:30-31). 그러나 성경에서 천사들이 왕으로 일컬어지는 예는 없는 반면에, 하나님의 백성은 왕과 제사장이라고 불린다(계 1:6; 5:10). 요한계시록의 다른 곳에서는 마지막 때의 성도들이 사령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휘하에 악의 세력과 싸우는 144,000명의 전사(戰士)들로 표현되어 있다(7:1-8; 14:1-5). 이것은 이 지상 역사의 최후의 전쟁은 그리스도와 그분께 충성하는 백성의 편과 사탄의 삼위일체와 그들을 따르는 편 사이의 전쟁임을 보여 준다. (260.2)
 개구리 같은 세 귀신의 영들 (16:13-14)
 유프라테스 강물이 말라버린 것은, 용과 바다 짐승과 거짓 선지자로 불리는 땅 짐승으로 구성된 사탄의 삼위일체를 흔들어 놓는다. 이 시점에서 사탄과 그의 두 조력자는 최후의 기만을 행하기 위해 전 세계를 모은다. 사탄의 삼위일체의 입으로부터 개구리 같은 세 귀신의 영들이 나와서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려고(계 16:13-14) 세계의 지도자들에게로 간다. 사탄의 삼위일체의 입에서 나오는 세 귀신의 영들은 마지막 기만에서 사탄의 삼위일체의 “숨/호흡”이다. (260.3)
 개구리 같은 영들은 애굽의 개구리 재앙을 연상하게 한다(출 8:1-15). 개구리 재앙은 바로의 요술사들이 흉내 낼 수 있었던 모세의 마지막 재앙이었고, 이것은 바로가 모세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기별을 거역하면서 하나님께 대한 저항을 고집하게 하였다. 이러한 구약의 배경에 비춰 보면, 여섯째 재앙의 개구리 같은 세 영들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위조하려는 사탄의 마지막 시도이다. 이들 개구리 같은 세 영들은 요한계시록 14장의 세 천사의 대응물(counterpart)로 묘사되어 있다. 사탄의 삼위일체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에 대한 준비로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대적하여 자신들의 편에 서도록 세상의 세속적 및 정치적 권세들과 세력들을 설득하려고 그 개구리 같은 영들을 거짓 복음과 함께 내보낸다. (2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