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이 반응에 관하여 가장 놀라운 사항은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법정 근처로 나아갈 용기가 있다는 것이다(58절). 결국, 바로 조금 전에, 그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도망을 쳤었다(56절). 재판정에 모습을 나타내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다. 불행히도 베드로의 용기는 많은 압력을 버티지 못한다. 그는 그 날 밤 세 번이나 그의 주님을 부인한다. (320.3)
 64-75절에서 그리스도와 베드로 사이의 대조를 놓치기가 어렵다. 예수께서는 그 국가의 최고위 관리들 앞에서 그가 누구인지 담대하게 고백했지만, 베드로는 일단의 종들 앞에서 그가 예수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것조차도 부인한다. (320.4)
 베드로의 부인의 수위가 점점 높아진다는 점 또한 주목할 가치가 있다. 처음에 한 여종이 그가 예수와 함께 있었다고 제시할 때 그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단순히 주장한다(69, 70절). 그러나 압력이 더 거세지자 베드로(5:34-37에 있는 예수의 지시에 배치되게)는 맹세하면서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71, 72절) 말하면서 새빨간 거짓말을 한다. 그것으로도 만족스럽게 수긍이 되지 못하자, 그는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자신과 예수 사이에 거리를 두면서, 다시 한번 그가 예수를 안다는 것을 부인함으로써 위증을 한다(73, 74절). 베드로는 그때쯤 되어서는 포괄적인 부인을 했다. 그는 곧 닭이 우는소리를 듣고 예수의 예언이 생각나서 심히 통곡한다(75, 34절). (320.5)
 베드로의 경험에서 두드러진 사항은 그것이 성경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복음서들이 기록되었을 당시, 베드로는 지도급 사도로 간주되고 있었다. 그 이야기의 존재 바로 그 자체는 세 가지 결론을 시사한다. 그 첫째는 그 봉사로 베드로를 회복시키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와 관계가 있다(요 21:15-19). 둘째는 베드로의 변화인데, 이는 그가 복음서 기자들에게 그의 실패에 관해서 말해 주었음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대단히 많은 “교회의” 전기들과는 달리 그 영웅들의 결점들이나 그러한 결점들을 치료하는 구속하시는 은혜를 감추지 않는 성경의 투명한 정직성이다. (321.1)
 우리의 구절에서 예수에 대한 세 번째 반응은 유다의 반응이다. 그의 반응은 전적인 좌절의 반응이다. 예수로 하여금 로마 당국에 맞서서 그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강요하려는 그의 계획이 실패로 끝났을 뿐 아니라 유다는 그 왕국 자체에서 그의 자리를 상실했다. 완전한 절망 가운데서 그는 배반의 대가로 받은 그 돈을 성전 안에 던져 버리고 나가서 목을 매 자살한다(27:3-5). (321.2)
 그러는 동안 산헤드린의 지도자들은 예수를 로마의 총독인 빌라도에게 넘겼다(27:1, 2). 그것은 예수에 대한 네 번째 반응, 즉 빌라도의 반응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 로마 총독은 예수와 그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서 손을 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27:24) 이런 전략이 그에게서 그의 죄책을 면제해주지 못한다. (321.3)
 마태는 공적인 심문은 별로 없었다는 것을 명확히 한다. 그러나 그것은 엄밀하게 필수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는 로마 총독은 이런 문제들에 있어서 상당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고, 그가 최선이라고 간주하는 거의 어떤 방식으로도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321.4)
 이런 경우들에서 그가 가진 거의 절대적인 권세로 인하여, 빌라도는 유대인의 지도자들의 계획에서 핵심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위해서는 불행하게도 성경 이외의 자료들은 빌라도가 유대인들과 그들의 관습들을 모두 경멸했다고 지적한다. 그 외에도 필론(Philo, c. 20 BC-AD 50)과 요세푸스(AD 37-c. 95) 이 두 사람은 빌라도를 탐욕스럽고 완고하고 잔인한 사람으로 그리고 강탈과 압제에 의지한 사람으로 묘사한다(Green and McKnight, 615 참고). 유대인들은 이런 사람에 대해서는 교활함과 조심성을 갖고 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의 임무는 쉬운 것이 아니었다. (321.5)
 빌라도는 유대인의 지도자들의 책략들을 꿰뚫어보는 듯이 보인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손에 놀아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 반대로 그는 유월절에 한 죄수를 풀어주는 관습을 이용하여 예수를 석방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그 시도는 유대인의 지도자들이 예수 대신에 바라바(“살인”[막 15:7]을 저지른 폭동을 일으킨 사람)를 석방해 달라고 요구하도록 군중들을 부추기는 일에 성공하자 실패로 돌아간다(27:15-18, 21). (322.1)
 예수께 유리한 쪽으로 결정을 내리려는 빌라도 결심은 예수가 무죄하다는 꿈을 꾸었다며 그의 아내가 보낸 기별로 말미암아 굳어졌다. 빌라도 자신은 예수에게서 사형을 선고할 만한 어떤 죄목도 찾지 못한다(19, 23절). 그러나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군중들을 선동시킴으로써 그 압력을 강화한다. 그 군중들은 며칠 전 승리의 입성 때 예루살렘으로 오시는 예수를 환영했던 그런 사람들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유대인의 지도자들이 이런 경우에 있어서 군중들이 그들의 입장에 동조하도록 확실히 하기 위해 신경을 썼을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 (322.2)
 군중들은 큰 소동을 피울 뿐 아니라, 요한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빌라도가 예수를 사형에 처하지 않으면 그는 자신을 왕이라고 주장한 사람을 비호한 죄목으로 티베리우스(Tiberius, 디베료) 황제 앞에 고소될 것이라고 넌지시 암시하기 시작했다(요 19:12). 이런 전략으로,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빌라도의 가장 큰 약점을 건드렸다. 결국, 많은 증인들의 증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역죄를 너그럽게 봐주는 총독에게 황제가 자비를 베풀리라고 기대될 수 없었다. 또한, 그들의 고소로,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유대인의 율법과 로마의 법 사이의 간격을 없앴다. 빌라도는 유대인의 얄팍한 음모를 꿰뚫어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형을 내릴 구실을 갖게 되었고 또 그렇게 내린다. 유대인의 지도자들이 그가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을 깨달은 빌라도는 마지못해서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명령을 내린다(27:26). (322.3)
 26:57-27:31에서 예수에 대한 다섯 번 째 반응은 로마 군병들의 반응이다. 그들의 반응은 유치한 조롱의 반응이다. 예수를 왕처럼 차려 입힌 후에,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잔인하게 놀린 후에 그들은 그에게 침을 뱉고 머리를 때리고 그의 옷을 다시 입히고 십자가에 못박히도록 그를 끌고 간다(27:27-31). (323.1)
 궁극적 모순: 십자가에 못박힌 메시야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 그것을 마음에 떠올리기만 해도 로마 세계에서 제아무리 마음이 강퍅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잔인한 형태의 사형인 십자가에 못박힘은 느린 신체적 고통과 함께 공개적 수치가 동반되었다. (323.2)
 공개적인 수치는 가로지르는 십자가의 긴 들보를 끌고 거리들을 통과하여 공개 처형 장소로 이동하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폭력에 대한 인간의 갈망이란 하향적 측면을 충분히 만족시킬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영화들이 없었던 그 시대에 십자가 형벌은 자주 따분하고 호기심 있는 자들에게는 도시에서 “제일 좋은 쇼”였다. 십자가 형벌을 받을 사람들은 발가벗긴 후에 그들의 신체적 필요를 돌보거나 구경꾼들의 조롱과 모욕들로부터 자신을 가리울 수 없게끔 십자가 형틀에 단단히 고정된다. (323.3)
 십자가 형벌의 신체적 고통은 손바닥 (혹은 손목)과 발을 관통하는 못으로부터 팔레스타인의 태양의 피할 수 없는 작렬함에 이르기까지 망라되었다. 거기 못박힌 사람은 몸을 움직일 수 없으며, 그러므로 열, 추위 혹은 곤충들을 피할 수 없었다. 십자가 형벌은 어떤 생명 장기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피곤, 경련을 일으킨 근육들, 배고픔 그리고 목마름으로 인한 죽음은 서서히, 자주 여러 날 후에 이르러 왔다. (323.4)
 로마법에 따르면, 십자가 형벌은 범죄자로 간주된 노예들과 외국인들에 대한 형벌로 마련되었다. 그것은 그 제국에 대한 반역의 어리석음에 대한 공개적인 시위로서 자주 사용되었다. 그리고 물론 예수께서는 정치적인 반역자로서 빌라도 앞에서 정죄를 받으셨다. (324.1)
 유대인들이 이해한 대로는, 십자가에 못박혀 처형된 사람은 누구든지 그의 백성들로부터 배척을 받았고, 하나님의 율법으로 말마암아 저주를 받았고, 유대 백성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에서 배제되었다(갈 3:13; 신 21:23). 게다가, 유대인들은 그들의 메시야가 고난당하는 죄수로서가 아니라 정복하시는 능력 있는 왕이 되기를 기대했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고전 1:23)이라고 언급할 수 있었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324.2)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예수를 따라 예루살렘에 갔던 제자들에게 있어서 그의 수치스런 죽음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충성의 극치도 아니었고 순교로 그의 진리를 전시(展示)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주장에 대한 부정이요 거절이었다. 그것은 그에 대한 그들의 희망을 굳게 해준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파멸시켜 버렸다”(Moltmann, 132). (324.3)
 제자들은 십자가에 못박힌 메시야란 역설(逆說)을 깨달은 유일한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제자들과는 달리 다른 사람들은 그 주제에 관하여 침묵을 지키지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그들은 고난당하시는 예수에게 모욕을 퍼붓는다. 마태는 그렇게 하는 명확하게 구분되는 세 그룹들을 언급한다. (3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