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때에 유다는 유대인의 지도자들이 파송한 많은 무장한 무리들과 함께 도착한다. 다시 한번 예수께서는 그를 체포하기 위하여 파송된 악한들 중 한 사람으로부터 베드로가 잘라낸 귀를 치료하심으로써 그가 그 상황을 완전히 통제하고 계신다는 것을 드러내신다(눅 22:51; 요 18:10).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그가 요청만 하면, 그의 아버지께서 그를 구조하기 위해 72,000명의 천사들을 보내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고 나서 그는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이루”기(53, 54절)를 자신이 원하고 있다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신다. 아니면 요한이 표현하듯이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요 18:11). 그 대답은 분명하다. 예수께서는 겟세마네에서 결정을 내리셨다. (316.4)
 예수의 체포에서 마지막 장면은 그가 예언한 대로 “모든” 제자들이 도망간 것이다(56, 31절). 그렇지 않다는 그들의 장담과 항의에도 불구하고(35절), 제자들 중 하나도 예수와 함께 고난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 충격은 그저 너무 컸고, 유다의 뜻밖의 공모(共謀)도 그들의 충격을 거의 경감시키지 않는다. 그의 원수를 피하거나 패배시키기 위해 그의 능력을 사용하실 수 있는 예수조차도 그곳에 서 계셔서 그들과 이야기하실 뿐이다(55, 56절). 점점 누적된 사건들은 제자들이 허약한 믿음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것임이 입증된다. 그들 모두 도망을 친다. (317.1)
 ■ 말씀에 들어감
 26:57-27:44를 적어도 두 번을 읽으라. 그리고 나서 아래의 질문들과 연습 문제들을 풀어보라. (317.2)
 1. 마태복음 26:57-67은 산헤드린 앞에서의 예수의 재판에 관해 말해준다. 마태가 묘사한 그 재판 때의 사건들의 순서의 개요를 적으라. 그 심리(審理)에 대한 그대의 전반적인 인상들을 한 문단으로 쓰라. (317.3)
 2. 26:69-75에서 우리는 베드로에 의한 일련의 점층적(漸層的)인 부인(否認)을 발견한다. 각각의 부인에 내포된 의미들과 아울러 각 각의 부인에서 점층적인 요소를 나열하라. (317.4)
 3. 마태복음 27:11-26은 빌라도 앞에서의 예수의 심문에 관하여 우리에게 말해준다. 빌라도가 예수에 대하여 갖고 있는 견해에 대한 통찰을 제공해 주는 구절들과 개념들을 나열하라. 다른 복음서들에서 예수에 대한 로마인의 심문을 다루는 평행 구절들을 연구하라. 왜 빌라도는 마침내 유대인의 지도자들의 소원에 굴복했는가? 성경사전에서 빌라도에 관한 기사를 읽으라. 그에 매한 마태의 묘사에 관해 빛을 던져주는 그 기사를 읽고 그대는 어떤 이해를 얻었는가? (317.5)
 4. 27:32-34는 예수의 십자가에 못박히심에 관해 말한다. 성경사전에서 십자가(cross)와 십자가에 못박음(cruxifixion)이란 항목을 읽으라. 그 정보들이 예수의 십자가를 더 잘 이해하는 데 그대에게 어떻게 도움을 주었는지 짧게 요약해 보라. (318.1)
 5. 27:32에서 우리는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십자자를 나르는 것에 대해 읽는다. 그대의 성경에 있는 지도를 사용하여 구네레의 위치를 찾아보라. 이런 먼 곳에서 온 한 유대인이 예루살렘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신명기 16:16, 사도행전 6:9 그리고 가능한 해답들을 얻기 위해 성경사전에서 “디아스포라”(diaspora, 즉 “흩어짐, dispersion”)에 관한 기사를 보라. 마가복음 15:21은 시몬의 두 아들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 그것은 시몬에 관하여 무엇을 암시해 주는가? (318.2)
 6. 그가 십자가에 달려 계시는 동안 그에게 퍼부어진 모든 모욕들의 일람표를 만들라(27:32-44). 그런 다음 그 일람표에, 26:57-27:31에서 그에게 돌려진 모욕들을 더하라. 이런 모든 모욕들이 예수께서 십자가로 향하여 가실 때와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 예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그대는 생각하는가? (318.3)
 ■ 말씀을 탐구함
 왕에 대한 다섯 가지의 다른 반응들
 마태복음 26:57-27:31은 메시야로서의 예수에 대한 다섯 가지 반응들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반응은 산헤드린의 반응이다. 그들의 반응은 미리 유죄로 결정해 놓은 반응이다. 유대인의 대법정 앞에서의 예수에 대한 재판(심문)은 일반적으로 재판이란 의미의 재판으로 거의 간주될 수 없는데, 이는 지도자들과 그 공회원들 대다수가 심문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를 유죄로 판결했기 때문이다(26:3, 4, 59). (318.4)
 산헤드린의 임무는 그들이 사형 선고를 내리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복잡하지만, 형량을 결정하는 것은 그들의 일이 아니다. 로마인들은, 가능할 때는 언제나 정복된 속주(屬州)들에서 지역 행정부를 사용하면서, 사형을 그들의 관할권 아래 두었다. (319.1)
 그리하여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중대한 문제에 봉착한다. 그들은 자신이 메시야란 주장을 했다는 죄목으로 예수를 사형에 처하기를 원하지만, 로마인들은 신성 모독을 사형에 해당하는 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결과 산헤드린의 지도자들은 한꺼번에 두 마리 토끼를 쫓아야 했다. 첫째, 그들은 신성모독 죄목—유대인의 율법에 대한 문제—으로 예수를 처형시켜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그들 자신의 공회원들 가운데서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둘째, 그들은 로마 총독으로 하여금 로마법을 기초로 하여 사형 선고를 내리도록 유도할 적절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319.2)
 다소간 책략을 사용해 보았지만 여의치 않자,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마침내 그의 몸-성전의 부활 전 무덤 속에서 사흘을 있겠다고 예언하신 것에 대한 오해에 기초하여 예수께 죄를 뒤집어씌운다(26:61; 요 2:19-21). 그러나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러므로 가야바는 예수께 그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명백하게 질문한다. 예수께서는 그렇다고 답변하실 뿐 아니라 한술 더 떠서, 미래에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그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하신다(26:63, 64; 계 1:7 참고). (319.3)
 바로 이것이야말로 가야바가 필요로 하고 있는 대답이다. “참람하다”고 그는 소리친다. 참람은 구약 시대에는 돌로 쳐서 죽일 수 있는 죄였다(65절; 레 24:10-23). 법률상으로, 물론,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발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성 모독죄를 범하지 않으셨다(Sanhedrin 7:5). 그러나 유대인의 대법정은 그 죄목의 정확성보다는 유죄 판결을 얻어내는 데 더 관심이 있다. (319.4)
 그와 같이 하여 가야바와 그의 추종자들의 첫 번째 책무는 성취되었다. 이제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저 유대인의 죄명을 사형 선고를 초래할 정도로 심각한 로마법에 대한 범법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 작업은 27:11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로마인의 재판으로 나아가기 전에, 우리는 두 제자를 다룰 필요가 있다. (320.1)
 26:57-27:31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두 번째 반응은 베드로의 반응이다. 예수가 예언하신 대로 베드로의 반응은 그를 부인하는 것이다. (3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