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는 16:21 이래로 그의 복음서의 위대한 절정인 십자가를 향하여 우리를 인도해 왔다. 예수의 죽음의 이야기는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한 끝맺음말이나 부록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그의 생애를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의 죽음이다. 결국 예수께서는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20:28)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그의 피는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려질(26:28)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는(1:21) 것은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였다. 그 왕의 죽음은 첫째 복음서의 초점이다. 이와 같이 사복음서를" 기나긴 서론을 지닌 수난의 이야기들"로 본 마르틴 칼러(Martin Kahler)의 정의는 약간 과장된 것이긴 하지만 바르게 강조한 것이다. (303.1)
 마태복음 26장27장은 우리를 왕 예수의 지상 생애의 끝으로 이끌어 가지만, 28장은 패배의 움켜쥐는 손에서 승리를 낚아챈 부활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처럼 끝은 시작으로 드러난다. (303.2)
 마태복음 26:1-27:44은 그의 가르치는 봉사가 대체로 끝난 예수를 제시한다. 우리는 최후의 만찬에서의 그의 가르침과 겟세마네에서의 그의 기도 외에는 그의 입에서 나온 말들을 별로 발견하지 못한다. 그 대신에, 우리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대적인 로마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 그들의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박는 그 드라마를 본다. 그 외에도, 이 장들은 개인들이 예수를 위하여든 아니면 그를 반대하든, 어느 쪽으로든 결정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될 때인, 십자가 앞에서의 인간의 책임을 부각시킨다. ‘예수에 대한 반응들’이란 주제는 제2장에서 시작되었고, 첫 복음서 전체를 관통하는 실선의 하나다. 그 성경절들에서, 인간의 선택의 책임성이란 문제는 여러 제자들, 유대인들 그리고 로마인 뿐 아니라 십자가를 앞에 두고 계시는 예수 자신에게 있어서도 그 절정에 도달한다. (303.3)
 ■ 말씀에 들어감
 26:1-56을 두 번 읽으라. 그러고 나서 다음의 연습 문제들을 풀어 보라. (304.1)
 1. 에수께서 십자가에 이르는 사건들을 통제하고 계셨다는 것을 지적해 주는 그런 진술들(그 성경절들로 함께)을 열거하라. 이 연습 문제에 57-68절을 포함시키라. 십자가의 의미에 대하여 저 통제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몇 문장으로 써보라. (304.2)
 2. 이때에 이르기까지, 유다는 첫째 복음서에서 주인공은 아니었다. 그러나 14절에서 그는 무대 중심으로 나아 온다. 1-56절27:1-10에서 유다에 관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일일이 열거하라. 마가복음 14장, 누가복음 22장 그리고 요한복음 13장에 있는 평행 구절들로부터 주워 모을 수 있는 가외의 사실들은 무엇인가? 26:14-1626:6-12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가? 유다에 관하여 그대가 수집한 정보로부터 어떤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는가? (304.3)
 3. 겟세마네 경험의 개요를 적으라. 한두 문단으로 예수께서 더불어 투쟁하고 계셨던 시험의 핵심을 논하라. 그대는 그 투쟁, 4:1-10의 시험의 핵심, 그리고 16:21-26의 문제 사이에 어떤 관계를 보는가? 그 관계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304.4)
 4. 1-56절57-75절에서 베드로의 경험의 개요를 적으라. 그의 최상의 상태들(혹은 경험들)과 최악의 상태들을 나열하라. 이 장들에서 그대는 베드로란 인물에 대한 어떤 단평(短評)을 작성해 낼 수 있는가? 마태복음 26장에 비추어 요한복음 21장의 베드로의 경험을 평가하라.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요한복음 21장은 에수님(그리고 하나님)에 관하여 무엇을 우리에게 가르치는가? 베드로에 관해서는? (305.1)
 ■ 말씀을 탐구함
 왕 예수에 대한 반응들
 마태복음 26:1-16은 남녀들이 그리스도의 주장들과 마주칠 때 발생하는 양극화(兩極化)를 부각시킨다. 한편으로, 우리는 유대인의 지도자들과 가룟 유다를 발견한다. 다른 편에는 향유병을 가진 그 여성이 있다. 예수에 대한 다양한 반응은 마태복음의 한 주제였다. 이것은 그의 출생의 때에도 그러했고(마 2), 그의 죽음의 때에도 계속 그러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기별에 내포된 것들이 사람들의 마음들 속에서 명백하게 드러나게 될 때 사람은 그를 대적하든지 그를 위하든지 하게 된다(예컨대, 12:30). 일단 예수와 그의 기별이 깨달아진 다음에는 중립 지대란 없다. 개인이 예수와 대면하게 될 때, 그는 예수와 자아를 희생하는 십자가를 위해서든 아니면 그것들을 대적하는 것이든 선택을 강요당한다. 천국의 원칙들을 위해서든 이 세상 왕국을 위해서든 그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305.2)
 그러나 이 구절에서 양극화에 대한 본보기들을 탐구하기 전에, 마태가 예수를 그의 통제를 벗어난 사건들의 볼모가 되셔서 십자가를 맞이하시는 것으로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와는 반대로 예수께서는 사건들을 지휘하고 장악하고 계신다. (305.3)
 사건들에 대한 그의 지배는 26:2 이후부터 명백하다. 그 구절에서 그는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해 팔리우리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신다. 재삼 재사 그는 자신의 미래를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강조해 오셨다(9:15; 16:21-24; 17:9-12, 22, 23; 20:22, 28; 21:33-45). 예수께서는 눈먼 상태로 걸으시다가 함정 속에 빠지고 계신 것이 아니다. 그는 선택을 가지고 계시며, 그는 발생하려고 하는 사건들에 대해서 완전히 알고 계신다. 그는 열둘 중의 하나가 그를 배반할 것을 아시며(21절), 그는 어느 제자가 그럴 줄도 아신다(23-25절). 그는 나머지 제자들이 바로 그날 밤 그를 버릴 것을 아시며(31절), 베드로가 그를 배반할 것을 아신다(34절). 그러나 예수께서는 또한 자신의 부활을 통해서 사망에 대해 승리할 것과(32절), 그가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실 것과, 그를 따르는 자들을 구출하시기 위해 자신이 하늘 구름을 타고 마침내 다시 올 것도 아신다(64절). (306.1)
 앞이 내다보이지 않는 운명의 인질이기는커녕, 예수께서는 만일 그가 자신을 방어하기로 선택한다면, 그가 그의 아버지를 부르실 수 있고, 하나님은 그가 임의로 부릴 수 있도록 즉시 열두 영(營)의 천사들(72,000명)을 보내실 것이다(53절). 그러나 바로 그 점이 마태복음 26장의 주요 요점들 중의 하나이다. 예수께서 사건들을 지휘하고 계시고 십자가를 피하실 수 있지만, 그는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 이루어지”도록(54절)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지 않기로 선택하신다. (306.2)
 사건들을 지휘하고 계신 분으로서의 예수에 대한 마태의 묘사는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요 10:17, 18; 요 15:13 참고)고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기록한 요한의 묘사와 조화된다. (306.3)
 그러나 예수께서 발생하고 있는 것을 통제하고 계시고 그것들을 알고 계신다고 하는 바로 사실은 다른 세력들이 그들 자신이 갈망하는 목적을 이루어내려는 책동을 부리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저 세력들 중 으뜸은 유대교의 대제사장(가야바), 다른 지도급 제사장들, 그리고 백성의 장로들(중요한 평신도들)이다. 최소한, 마태는 산헤드린-유대인의 최고 사법 단체-의 강력한 소위원회를 언급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마태는 “공식적” 유대교는 예수를 배척해왔고, 그를 죽이기를 바라고 있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3, 4절). (306.4)
 그러나 이 지도자들은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다. 첫째, 그들은 예수에 대해서 감히 공개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대중들이 그에게 호의적이었기 때문이다(5절). 그러나 그들은 시간에 쫓기고 있다. 결국, 만일 그들이 유월절 이후까지 조치를 미룬다면, 추측컨대 예수께서는 도성을 떠나가실 것이며, 그렇게 되면, 그들의 손아귀를 벗어나실 것이다. (307.1)
 그들의 목적을 이루어 내는 데 필요한 도움은 전혀 예상치 않았던 곳—거의 믿어지지 않는 곳—에서 온다. 즉 예수의 열두 제자들 중 하나의 변절이 그것이다. 가룟 유다는 노예의 몸값인 은 30세겔을 받고 잠입 스파이로 일하기로 동의한다(출 21:32; 슥 11:12 참고). 유다는 유대인의 지도자들이 예수를 체포할 절호의 기회를 마련해 주겠다고 자원한다(14-16절). (30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