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출애굽기 제 IV 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중에 거하심 (출애굽기 25-40) 제 11장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응징하심 (출애굽기 32-34장)
 우리는 본 장의 모든 사건을 하나의 연속된 사건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본 장의 사건은 앞서 우리가 살펴본 내용과 직접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본 장에 나타나는 적어도 두 가지 질문은 바로 이전에 살펴본 내용에 대한 연속적 질문이다. (293.1)
 회막
 본 장은 33:7-11에 언급된 회막에 관한 기술로 시작된다. 25-31장에 걸쳐 언급된 성막/성전은 “회막”이라고 불리는 곳에 위치해 있었지만, 이곳에 언급된 회막은 문맥상 분명한 상이점이 있다. 성막은 진의 가운데 위치하고 있었고 이 “회막”은 진에서 떨어져 진 밖에 위치하고 있었다. (293.2)
 어떤 학자들은 출애굽기에 3개의 장막이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Ramm의 187쪽과 Durham의 Exodus 440 참조). 첫 번째 장막은 거룩한 회막으로 둘째 장막 앞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두 번째 본전인 성막으로 들어가는 예비장소로 쓰였으며, 세 번째 회막은 만남의 장소로 이곳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며 교제하였다는 것이다. (293.3)
 모세가 이 회막에 들어갈 때 구름 기둥이 회막 입구에 하강했으며 모세와 아마도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들 역시 하나님과 교통하였을 것이다(33:7“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누구나” 참조). 구름 기둥이 내려와 있는 동안에 진안의 백성들은 모두 경배를 드렸다. 모세는 회막에서의 일을 마치고 진으로 돌아올 때 여호수아를 남겨두어 회막을 지키게 하였다. (293.4)
 왜 이런 성경절이 중간에 삽입되었을까? 하는 질문이 일어나게 된다. 얼핏 보면 전체적인 흐름을 가로막고 있는 듯이 보인다. 성경 본문을 계속 읽어 나가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동행치 않을 것과 이스라엘이 진멸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그들은 슬퍼하게 된다(33:1-6). 계속되는 성경절에서 모세가 하나님과 이 문제에 관하여 토론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 이러한 내용이 중간에 삽입된 이유는 무엇인가? (293.5)
 이 사실은 모세가 과거에 하나님과 교통하였음과 이제 하나님께서 더 이상 그들과 동행치 않으시겠다는 경고가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이 범죄함으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여정에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라고 말씀하신다(3절). 이 사실은 과거에 모세와 백성들이 회막에서 행했던 것과 직접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다(7절). 이전에 하나님께서 회막에서 모세와 백성들이 직접적으로 교통하며 하나님께서 가시적으로 나타나신 것과는 반대로 이제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 그들에게 나타나지 않으실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동행치 않으시는 이 비극은 그분의 임재가 얼마나 경이로운 사실이었는지를 깨달았을 때 극에 이른다. 이러한 상황은 모세로 하여금 보다 신속히 중재에 나서게 하여 하나님의 임재가 회복되기를 고대하게된다. (294.1)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 ‘회막’은 있는가?” 하고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디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너무 오랫동안 동행치 않으심으로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 가까이 계신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 못한가? 이스라엘과 동행하셨던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의미가 있는가? (294.2)
 끊임없는 중재
 이스라엘을 위한 모세의 중재를 계속하여 토론해 보기로 하자. 초기 대응한 모세의 중재는 이스라엘을 진멸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경고를 돌이키시게 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치시겠다는 계획을 취소하신다. 이제는 언약과 하나님의 용서가 관련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하나님께서는 다소 양보를 하시게 된다(1-3절).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천사를 이스라엘 앞에 보내어 그들의 원수들을 쫓아내시겠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그들을 인도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동행치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294.3)
 두 가지 이유로 인해 그렇게 말씀하셨다(3, 5절). 첫째로, 그들은 죄가 많아 목이 곧은 백성이라는 사실이다. 죄는 하나님과의 교통을 단절시킨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가까이 하실 경우 그분께서 그들을 진멸하실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의 죄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들을 심판하도록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지 않는 것이 그들의 유익을 위해서 좋았다. 그분께서는 진노하심으로 심판을 행하시게 되는 상황을 원하시지 않으셨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모두의 유익을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동행을 원하시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자를 보내시지만 당초 계획하신 대로, 그분 자신은 당신의 성막 또는 회막에 거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295.1)
 이러한 상황에 모세는 결정적인 중재자로 나서게 된다. 출애굽기 33:12-34:9은 모세의 과거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 우리를 놀라게 하는 구절로 하나님의 성품과 본성에 관한 훌륭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이 성경 본문을 자세히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295.2)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동행하지 않으시겠다는 결정을 철회하시도록 하기 위하여 그가 알고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그의 첫 전략은 자신에 관한 두 가지 사실을 진술한 후에 두 가지 요청을 하는 것이었다(12, 13절): (295.3)
 1. “주께서 나더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모세는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로부터 변론을 시작한다.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지도자로 부르셨다. 하나님께서 그와 계속 동행하실 것인가? 아니면 당신의 사자만 보내실 것인가? 만약 여호와께서 백성을 인도하라고 명하셨을 때 그분께서도 그와 함께 동행하실 것인가? (295.4)
 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주께서 나의 이름으로 알고 내가 주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은즉” 출애굽기 어디에도 이와 같은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우리는 추측으로 알 수가 있다. 실지로 모세는 “보소서 주께서 우리의 아름다운 관계에 대하여 진실로 말씀하시지 않으셨는지요?” 하고 여호와께 질문한다. 이것이 사실이고 제가 주께 은총을 입었다면 이제는 (295.5)
 3. “주의 길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주의 뜻을 내게 알려 주소서 그리하면 내가 계속하여 주를 위하여 일하리라, 그리고 (296.1)
 4. “이 백성이 주의 백성임을 기억하소서.” (296.2)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중재에 나선다. 그는 허물이 없었으며 하나님께 은총을 입고 있었으므로 하나님께 그와 같은 요청을 할 수 있었다. 그의 요청은 자신과 백성을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과 백성들도 모세가 계속하여 인도하기를 원했다. (296.3)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가 친히 너(단수)와 함께 갈 것이며 내가 너(단수)를 편케 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신다. 하지만 백성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의 신이 그들에게도 함께할 것인가? (296.4)
 모세는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저희를 보내지 마옵소서”하고 대답한다. 모세는 여호와의 임재가 그들에게도 함께하기를 분명히 하고자 했다. (2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