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보좌에 이르는 길 제 4 편 성소 제18장 성전 벽과 마루
 

 널판의 크기와 개수
 성소의 벽에는 양쪽에 이십 개씩과 서쪽 끝에 여덟 개, 총 마흔 여덟 개의 널판이 있었다. 북쪽과 남쪽의 마혼 개 널판과 서쪽의 여섯 개 널판은(두 모서리 널판을 제외함) 모두가 같은 크기로 장(長)이 십 규빗(4.5미터), 광(廣)이 한 규빗반(68센티미터), 즉 장이 십오 피트, 광이 이십칠 인치 이상이었다. 이 벽은 뜰의 벽보다 두 배 정도 높았다(출 26:15-30; 36:20-34). (160.1)
 저명한 유대 학자들에 의하면 이 널판은 반 뼘 정도의 두께였다. 한 뼘은 반 규빗, 즉 최소 9인치였으므로, 따라서 널판의 두께는 약 4.5인치(11.1센티미터) 정도였다. 어쨌든 그것들은 “이쪽 끝에서 저쪽까지” “널판들을 가로지를”(출 36:33, 킹제임스역) 중간띠(막대)를 위하여 충분한 두께 이상일 필요가 있었다.1) 이렇게 측정해 보면 각 널판은 약 150보드피트 정도였을 것이다.2) 그러면 널판 하나의 무게는 어느 정도였을까? 일 인치 두께의 마른 사각 참나무 일 평방피트는 무게가 약 4.5파운드(2.04킬로그램)이다. 따라서 금으로 싸기 전의 널판 하나의 무게는 대략 700파운드(317.53킬로그램) 정도였다. (160.2)
 모서리 널판들
 서쪽 끝에 있는 널판을 가리킬 때에는 항상 “널판 여섯을 ∙∙∙ 모서리에도 널판 둘”(출 26:22, 23, 킹제임스역)이라며, 모서리(모퉁이, 개역판) 널판을 다른 널판과 구별하여 나타냈다. 모서리 널판은 다른 것과 길이는 같았다. 그렇지만 그 너비는 같지 않았다. 성경 어느 곳에서도 그것의 정확한 너비를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 성소의 지붕을 덮은 두 번째 덮개는 장(長)이 삼십 규빗(13.5미터)으로 “덮어 드리우”(출 26:7, 8, 13)기에 충분한 길이이다. 성소 양측의 합계 높이가 이십 규빗이며, 따라서 너비를 위하여 십 규빗(4.5미터)이 남는다. 서쪽벽의 여섯 개 표준 널판의 총 너비는 아홉 규빗이었다. 그러므로 양측 모서리 널판의 너비를 위해 한 규빗이 남으며, 하나당 반 규빗이 남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60.3)
 킹제임스역 성경은 출애굽기 26장 27절“서쪽의 두 면을 위해 다섯 띠”라고 번역한다. 모팻은 이것을 “뒤편 혹은 서편을 위하여 다섯 띠”라고 말한다. 출애굽기 26장 24절에 대한 그의 번역은 서쪽 끝이 두 겹의 널판으로 된 것이 아니라 두 개의 모서리 널판이 “이중 받침”을 형성한 것으로, 모서리 널판이 두 개였음을 말해 준다(본서 화보, 널판 참고). (161.1)
 48개 널판의 의미
 마흔여덟이라는 숫자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그분께서는 그렇게 자주 모형(pattern)을 따르도록 주의를 환기하셨다. 이것 또한 “모든 것”(시 29:9)이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는 성소의 영적인 이해로 빠져서는 안될 중요한 내용이다. 앞 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솔로몬은 성소 벽에 사용된 육십 개의 기둥을 “이스라엘의 용사들 중에서 육십명”으로, 모두가 칼을 잡은 “전쟁에 능숙한 자들”(아 3:7, 8, 신킹제임스역)로 묘사한다. 이 강력한 “승리의” 육십 개의 놋 기둥은 그리스도의 의를 상징하는 흰 세마포 벽에 함께 묶여 있으며, 성소 주위에 보호의 벽을 형성하며 서 있는 잘 훈련된 충성스런 수행원과 같았다. (161.2)
 이와 같이 사십팔 개의 널판은 기둥과 띠(bar · 가로지르는 막대기)에 의해서 견고한 열(列)로 함께 묶여 있었다. 그 널판들은 하늘의 인상을 지닌 채, “똑바로” 서 있는 또 하나의 보호의 벽을 형성했다(본서 화보, 널판, 빗장 참고). 왜 이렇게 이중으로 보호에 신중을 기해야 했는가? “하나님께서 이 일을 굳게 정하셨”(창 41:32, 신킹제임스역)기 때문에, 바로가 두 번 겹쳐 꾼 꿈과 같이 지시하신 것이 아니겠는가? 이 이중 보호와 같이 60과 48의 배수인 십사만 사천 인이, 영원한 성전에서 말하자면 이중 보호로 봉사하고 있는 것이다. 레위인이 고대 이스라엘의 교사로 일하며, 성소가 이동할 때 돌보며 봉사하도록 지상 성소 가까운 주변에 진을 쳤던 것과 같이, 십사만 사천 인도 이중 자격으로 봉사한다. 그들은 구속받은 이스라엘의 교사일 뿐 아니라 어린양이 가시는 곳마다 그분을 따르면서, 그분의 은총을 다른 세계에 증거 한다. (161.3)
 모서리 널판의 의미
 성소의 모서리 널판은 후에 건축된 성전의 모서리 돌과 같다. 그리스도께서는 “귀한 모퉁잇돌”(사 28:16, 킹제임스역)이 되셨다. “그분 안에서 모든 건물이 서로 꼭 맞게 뼈대를 이루어, 주 안에서 거룩한 전(臟)으로 자라가고, 그분 안에서 너희도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처로 함께 세워”(엡 2:19-22, 신킹제임스역)진다. 그분의 자녀들은 “궁궐 양식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잇돌 같게” (시 144:12, 신킹제임스역) 될 것이다. 이 모서리 널판의 특별한 목적은 모든 널판을 하나의 장막으로 서로 이어지게 하(출 26:24, 킹제임스역)는 것이었다. (161.4)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업은 그분의 모든 가족 구성원을 한 몸으로 맺어 주는 것이다. (162.1)
 시팀나무
 스미스 성경 사전은, 성소에 사용된 시팀나무(조각목)를 사막의 야생 아카시아, 즉 “불붙은 떨기”나무라고 말한다(출 3:2). 사실상 시내라는 말 자체는 세네, 즉 아카시아 덤불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시팀이라는 단어는 싯타의 복수 형태이며, 그 나무 자체는 싯타 나무라고 불렸다.3) 그것은 작은 가시나무로 특히 내구성이 강하며, 사용을 위해 준비하는 데는 많은 끈기 있는 노력을 요구하였기에 진귀한 가치가 있었다. 그 나무로 “널판들을 만들었”(출 36:20)다. 그 크기로 보아 각 널판은 작은 조각을 견고하게 접합하거나 혹은 어떤 방법으로 함께 고정하여 만들었을 것이다. (162.2)
 시팀나무는 백성들이 성소를 위하여 가져온 선물 중 하나였다. “무릇 섬기는 일에 소용되는 조각목이 있는 자는 가져왔”(출 35:24)다.4) 분명 이 값비싸고 아름다운 목재는 그것이 성소를 위하여 필요할 것임을 미리 아셨던 여호와의 은혜로 애굽에서 취한 전리품의 일부였을 것이다. (162.3)
 애굽에서 노예로 있는 동안, 이스라엘 족속 중 어떤 이는 애굽의 궁전과 성전을 위해 그와 같은 널판을 만드는 데 종사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가시를 없애고 깎아서 매끄럽게 하며 조각들을 함께 맞추는 일은, 우리의 육체적 본성에서 가시를 제거하는 일을 상징하기에 매우 적합하다. 우리는 자르고 깎고 닦는 일을 통하여 하늘 성전에 적합한 재목이 될 수 있다. 보기에 흉하고 거칠기 짝이 없는 나무를 다듬어 아름다운 성전의 재료로 삼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이다. 하나님께서는 가치가 없는 재료에 시간을 소비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달을때 이 얼마나 큰 용기가 되는가! 그분은 가시 속에 감추어진 그분의 모든 자녀들의 “영구적인 특성”“진귀한 가치”를 보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시를 제하시기 위해 인내로써 수고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하늘 성전의 자리에 적합해질 때까지, 열심히 깎고 광택을 내며 적합하게 만드신다.5) (162.4)
 금으로 덮인 조각된 널판
 이 널판에 천사의 모양이 조각되어 있었을까? 성경은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다. (162.5)
 그러나 브사렐이 성소 건축에서 중요한 직무를 하도록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었던 이유는, 다른 여러 재능들 가운데서도 “나무를 새기는” “여러 가지 정교한 일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 선천적인 재능 외에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성령을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출 35:31-33; 31:3, 5)를 주셨다. 만약 널판이 조각되지 않았다면, 조각된 것은 단지 분향단과 법궤의 일부뿐이었을 것이다. 솔로몬 성전에서 “전 안에 입힌 백향목에는 ∙∙∙ 아로새겼고”, “내외소 사면 벽에는 모두 그룹들 ∙∙∙ 형상을 아로새겼”(왕상 6:18, 29)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광야 성소를 안내서로 사용했기 때문에, 자연히 성소 널판도 그룹의 형태로 조각되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널판이 천사형태로 조각되고 그 후에 금으로 입혔든지 또는 널판의 금이 천장을 형성하고 있는 내부 덮개와 두 휘장에 수놓인 금 천사를 거울 표면과 같이 눈부시게 반사하였든지 간에, 교훈은 똑같다. 곧 그리스도는 금이요, 우리는 “나무”(고전 3:12)이다. 널판이 완전히 금(金)으로 덮인 것과 같이, 우리도 그분의 성전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기 전에 그분의 의(義)로 완전히 덮여야만 한다. (1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