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요한계시록 제18장 마지막 일곱 재앙
 둘째. 이 마지막 재앙에는 형벌(刑罰)의 목적이 있다(계 15:1; 16:2). 이 재앙은 사탄의 삼위일체를 따르고 하나님의 백성을 해하기로 선택한 자들에게 내려진다. 이제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경험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6:9-11에는 순교당한 성도들이 “우리 피를 갚아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려 하시나이까?”라고 부르짖으면서 그들을 신원(伸冤)해 줄 것을 호소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들의 부르짖음은 온 역사를 통하여 고통을 받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의 끊임없는 탄원을 대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잠시만 더 기다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의 기도에 대한 부분적인 응답이 일곱 나팔의 심판과 함께 왔다. 이제는 마지막 일곱 재앙이 내려짐으로써 그들의 기도는 궁극적으로 응답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은 옹호를 받는다. (249.3)
 셋째, 이 마지막 일곱 재앙에는 반역적인 인류가 자기들의 선택과 행동의 결과를 깨닫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 요한계시록 13장에서 세상 사람들은 바벨론, 즉 그들을 거짓된 약속과 희망으로 미혹한 사탄의 삼위일체를 따르기로 선택하였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으로부터 그분의 보호를 거두셨을 때—파멸시키는 바람을 놓아주는 상징으로 묘사된 바와 같이(계 7:1)—, 마지막 일곱 재앙이 내려져서 온 땅을 황폐시켰다. 이제 그 사람들은 그들의 선택의 결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를 최후의 요점(要點)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249.4)
 애굽에 내려졌던 재앙들과 같이, 마지막 일곱 재앙도 복음을 거절하고 사탄의 삼위일체를 따르기로 선택한 자들의 마음의 강퍅(剛愎)함을 드러내도록 의도되었다(참고 출 7:1-5). 두 번째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분명한 경고(계 14:9-11)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원해서 사탄의 삼위일체를 따르고 짐승의 표를 받기로 선택하였다. 이 마지막 재앙들이 아무리 혹독할지라도, 이 사람들을 회개하도록 움직이지는 못한다. 애굽의 재앙들이 하나씩 더해 감에 따라 바로와 그의 관리들의 마음을 점점 더 강퍅하게 했듯이. 사탄의 삼위일체를 경배하는 자들에게 내려지는 마지막 일곱 재앙도 그들의 마음을 강퍅케 하여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에 대한 증오를 더욱 더 크게 한다(16:9-11). (250.1)
 문자적인 것인가, 상징적인 것인가?
 여기서 한 중요하고 어려운 질문이 제기된다. 그것은 이 재앙들은 실질적인 것인가, 아니면 상징적인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우리들이 알게 된 것은 요한계시록의 언어가 상징적이라는 것이다. 인을 떼는 것이나 나팔을 부는 것을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마지막 일곱 재앙의 경우에 있어서는 상황이 달라 보인다. 처음 다섯 재앙은 심한 육체적 고통과 고난을 일으켜 사람들이 하나님을 저주하게 한다는 사실은 이 재앙들이 문자적인 것임을 보여 준다(계 16:8-11). 이것은 요한계시록 7:16에서 확인되는데. 이 본문은 144,000인이 다시는 굶주리지 않고, 목마르지도 않으며, 뜨거운 해나 아무 열기에도 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모든 것들은 마지막 일곱 개의 문자적인 재앙이 주는 시련들이다. (250.2)
 아마겟돈 전쟁으로 이어지는 여섯째 재앙에 이르면, 그 언어가 분명히 상징적이고 영적이다. 그런데 마지막 때의 바벨론이 무너지는 것에 관하여 말하는 일곱째 재앙의 언어는 문자적인 의미와 상징적인 의미를 혼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250.3)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점은 마지막 일곱 재앙은 아직 성취되지 않은 예언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예언은 그것이 성취된 이후에야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문자적이든 상징적이든 간에, 마지막 일곱 재앙은 사탄의 삼위일체가 고난당하는 인류를 도와주기에 무능함을 폭로할 것이며. 하나님과 그분의 정부의 정당성을 입증할 것이다. (251.1)
 승리한 성도들 (15:1-4)
 천사들이 짐승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일곱 재앙을 붓기 전에, 막간의 장면이 펼쳐지는데, 이것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고 그것의 표를 받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들이 유리 바다와 같은 넓은 곳에 서 있는 것을 묘사한다(계 15:2-4). 그들은 그 손에 거문고를 잡고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251.2)
 여기 나오는 구속받은 자들은 요한계시록 14:1-5에 나오는 자들과 동일한 무리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앞에서 그들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복음을 거절하고 사단의 삼위일체 편에 선 자들과는 대조적으로), 여기서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자들로 나타난다(짐승에게 경배하는 자들은 마지막 일곱 재앙의 상해를 겨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마지막 일곱 재앙이 출애굽 때에 애굽인들을 쳤던 재앙들과 비슷하게 묘사되어 있으므로, 승리한 성도들이, 위대한 승리를 경축하고 그들의 위대한 구원에 대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홍해 가의 이스라엘처럼 묘사한 것은 아주 적절한 일이다. (251.3)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마지막 일곱 재앙이 내리는 동안에 하나님의 백성이 하늘에 있을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이 지상에 있다가 권세와 영광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러 공중으로 끌려 올라갈 것이다(살전 4:13-17). 그들은 재앙들이 주는 상해로부터 보호를 받기는 하지만, 요한계시록 7:16이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은 그들이 재앙의 시련들이 계속되는 동안에 어느 정도의 굶주림과 목마름과 뜨거운 해의 열기로 고생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재앙들이 내리기 전에,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이 어려운 시기 동안에도 그들에게 가까이 계실 것이라는 확증을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팔레스타인의 혹심한 기근 동안에도 엘리야를 돌봐주신 것처럼 그분의 백성을 돌봐주실 것이다(왕상 17).1 (251.4)
 처음 다섯 재앙(계 16:1-11)
 그리스도의 중보의 사역이 끝남과 함께, 하나님의 백성을 인(印) 치는 일은 끝나고, 편을 바꿀 수 있는 기회의 문은 영원히 닫힌다. 이제까지 잡혀 있던 바람들은 풀려나서 불게 되고, 마지막 일곱 재앙이 이 땅 위에 부어진다. (252.1)
 성경절 : 요한계시록 16:1-11

 (252.2)
 전에 중재의 사역이 이루어지던 곳인 하늘의 성전에서 한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명령하기를 사탄의 삼위일체에 가담하고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에게 재앙을 쏟으라고 한다(계 16:1). 이 음성은 압박을 받는 성도들이 기도를 드리는 성소에서 들려온다(8:4). 그 기도가 바야흐로 응답되는 순간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충성된 백성을 옹호하시고, 그들을 상해하는 자들에게 그분의 의로운 심판을 내리실 시간이 당도한 것이다. (253.1)
 첫째 천사가 그의 대접을 땅에 쏟으니,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났다. 이 질병은 전신에 나는 지독히 아프고 고칠 수 없는 종기로 기록되었다(신 28:35; 욥 2:7). 이런 종기의 재앙은 출애굽 때에 애굽인들에게도 내렸다(출 9:10-11). 이 재앙을 받는 자들은 오직 짐승의 표를 받고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뿐이다. 이와 같이 첫째 재앙은 셋째 천사의 기별에 담긴 다음의 경고를 이행하는 것이다.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계 14:9-10).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사람들은 이 재앙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253.2)
 둘째 천사가 그의 대접을 바다에 쏟으니 바다의 물이 죽은 사람의 피와 같이 변한다. 바다 속의 모든 생물이 죽는다. 셋째 천사는 그의 대접을 강과 물의 근원에다 쏟는다. 땅에 있는 모든 물이 즉시 피로 변한다. 마실 물이 없으면, 반역한 인류는 생존할 수가 없다. (253.3)
 이 재앙이 내려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다(계 16:6)고 하였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제단에서 한 음성이 나서 말하기를 “그러하옵니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16:7)라고 말했다. 이 제단은 다섯째 인을 뗄 때에 언급된 번제단이며, 그 아래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자신들을 신원(伸冤)해 주시고 그들을 억압하는 자들을 심판해 달라고 기도하던 제단이다(계 6:10). 이제 그 제단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들의 기도가 마침내 이 재앙들을 통해서 응답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이 억압자들을 심판하기 시작하시는 것을 확인한다. 마침내 정의가 실현된다. (253.4)
 넷째 천사는 그의 대접을 해에다 쏟는다. 강열한 햇빛이 사람들을 뜨겁게 달구어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안겨 준다. 하지만 그 견딜 수 없는 고통도 그들을 회개시키지는 못한다. 아무것도 그들의 행위를 변화시킬 수 없다. 그들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마음은 강퍅해져 있다. 오히려 그들은 이런 재앙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하고 비방하며, 회개하기를 거절한다. 이런 행동을 하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짐승의 발자취를 따라간다(계 13:6). (254.1)
 처음 네 가지의 재앙들은 지상의 인구 전체에게 영향을 주는 반면에, 다섯째 재앙은 짐승의 보좌를 쳐서, 지상에 완전한 암흑을 가져온다. 이 재앙은 온 땅을 심한 암흑 속에 빠뜨린 애굽의 아홉째 재앙을 반영한다(출 10:21-23). 바다에서 나온 짐승에게 보좌를 위임하고 권세를 부여하는 자는 사탄이다(계 13:2). 땅에서 온 짐승의 지지를 받으면서, 그 바다 짐승은 세상에 대하여 그의 권력을 행사하고, 온 세계의 사람들이 사탄의 삼위일체의 편에 서도록 미혹하고 강요한다. 그러나 사탄이 준 권좌(權座)도 이 재앙들의 힘을 이겨낼 수가 없다. (2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