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를 통한 속량과 재회 제 20 장 영원한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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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량의 목적은 재 연합이다. 재회가 없다면 속량의 피는 헛 되이 부어졌다. 우리들을 위하여 그의 생명의 무한한 댓가를 지불하신 그 한분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사 53:11)라고 하셨다. 요한복음 17장은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로 가시기 바로 전에 하신 기도를 기록하였다. 그는 다락방에서 제자들을 만나 그들의 발을 씻기셨고 그의 희생의 상징들을 그들에게 주신바 되었다. 식탁을 둘러모인 그들에게 그가 하늘로 가셨다가 다시 오셔서 그들과 함께 영원히 사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루살렘 거리를 통과하며, 유월절 달빛 아래 기드론 골짜기로 내려 갔다. 암흑의 세력과 최후의 투쟁을 위해 동산으로 들어가시기 전에 그는 잠깐 걸음을 멈추고 선택한 몇사람씩 작은 단위로 하여 그의 주변에 모아 두고 기도하시는 중에 그의 마음을 쏟았다. 요한 복음 17장 24절에 그 기도의 절정에 이르러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니다”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단 한 사람을 위한것이 아니라 그의 모든 제자들을 위하여 탄원하셨다. 그의 눈은 미래의 어두운 휘장을 꿰뚫었다. 그리고 아담의 모든 자녀들의 생의 역사를 훑어보셨다. 그는 모든 괴로움에 시달리는 영혼의 무거운 짐과 슬픔을 느끼셨다. 그 때문에 그는 그의 제자들을 포함하여 세상 마지막까지 따르는 그의 모든 추종자들을 위해 열열히 기도하셨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하심을 보아 그리스도의 기도는 우리들도 포함된 것이 확실하다.”(4T 529, 530) (129.1)
 구속받은 모든 군대들 중에는 복사판이 없다. 하나님은 매경우의 단 한사람이 “필요”됨으로 그는 한 존재—나를 잃어 버릴 수가 없다. 그 때문에 그는 이 세상에 오셨다. 그는 나를 구원하시려 오셨다. 그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그는 나를 원하셨다. 그리고 이것은 마치 이 세상에서 오직 나 혼자 있었던 것과 같이 분명한 진리이다. (130.1)
 그는 나를 위해 오셨다. 그는 나를 사랑하신다. 그는 그의 친구로 나를 원하신다. 그는 내가 양이 목자를 따르고 아이가 아버지를 따름 같이 할 뿐만 아니라 역시 그는 나와 함께 앉아서 서로 상담하기를 원하신다. 내가 그에 대하여 무엇을 생각하고, 그가 하신 일의 무슨 방도를 생각하는 것을 알기를 원하신다. 그가 나를 기쁘시게 하고 그가 그렇게 하신 것을 내가 그에게 말할때 또한 그를 기쁘시게 한다. 그가 나의 타오르는 얼굴과 기뻐하는 마음을 보실때 나를 향하신 놀라운 역사를 더욱 더욱 설명하심으로 그는 영원을 통한 그의 가슴에 기쁨을 가져 오게 될 것이다. 나는 그와 더불어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여행한다. 우주 안에서 아무도 그를 기쁘시게 할 수 없는 나의 반응과 응답이 그를 유쾌하게 할 것이다. 그는 무한한 “요구들”을 가지고 계신다. 그는 나를 “필요로” 하신다. 그리고 그는 나 구하기 위해 값을 지불한 댓가를 생각하신다. (130.2)
 플리다에서 한 여아가 유괴 당했다. 그리고 몸값을 치뤘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을 되돌려 받기 위해 50만 달라를 지불했다. 그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몇주일 후 그녀의 친구중 몇몇이 그녀를 방문키 위해 왔다고 가정해 생각해 보자. 그들중 하나가 “바바라, 너의 아버님은 확실히 너를 귀중하다고 생각하신다. 그렇지!” 하고 말했다. 만약 그때 그녀가 그녀의 머리를 숙이면서 말하기를 “모르겠어요. 때때로 의심스래 생각됩니다”라고 했다면 이상하지 않겠는가? (130.3)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에 대하여 그런식으로 이야기 하는 것을 들어보았는가? 미혹된 것이 있는가? 예수님은 그대를 그의 친구로 삼기를 원하신다. 그가 그대를 위해 속량의 값을 지불하신 것은 그대를 너무나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모든값 전부이다. 그가 그의 생명을 내어 주신 것은 그대를 너무나 원하셨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원하시는것을 가지실 것인가? 그에게서 떠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그가 그대를 위해 개인적으로 기도 하시는 것을 다시 들어보라. “아버지여 내게 주신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해 주소서” 왜 그는 나를 그와 함께 있기를 원하시는가? 저들과 함께 사랑의 기쁨을 즐기시기 때문이다. 그대는 때로 사랑하는 이와 떨어져 살아 본 일이 있는가? 만일 그대가 이별의 슬픔을 나눠보았다면 그대는 가장 사랑하는이가 멀리 떠나 있을때 사랑하는 이가 어디 있는 그것을 생각할 수만 있어도 가장 행복한 것임을 시인할 것이다. 그대는 예수님이 그대를 그와 같은 형태로 생각하고 계심을 아는가? (131.1)
 그의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는 곳에서 일어나 겟세마네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 가셨고 그의 얼굴에서 피땀이 쏟아지기 까지 고통하셨다. 밤중에 폭도들이 그를 서둘러 법정으로 끌고 갔다. 그는 제사장과 관원들 앞에서 일곱번이나 심문을 당하셨다. 두번 채찍에 맛으셨다. 그리고는 그를 갈바리로 끌고가 하늘과 땅 사이에 높이 달았다. 암흑 가운데서 사단은 그를 시험하여 그가 만일 죽으면 다시는 살지 못할 것이라는 무서운 시험으로 나를 위해 죽으시고 앞서가신 그의 영혼에 괴로움을 주었다. 어두움이 그에게도 몰려들어 희망의 번갯불이 반짝였다. 그리고 뻗어 나갔다. 그러나 그의 사랑의 불은 더욱 더욱 강하게 불타 올랐다. 그는 나를 위해 죽기로 결심했다. 그는 나를 위해 죽기로 결심했다. 비록 그것이 영원한 죽음을 의미한다 할지라도. (131.2)
 드디어 죽음의 순간이 왔다. 친구들은 그를 무덤에 눕혔다. 주일중 첫날 이른 아침에 강한 천사가 공중에서 내려와서 돌을 굴렸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당신의 아버지가 부르시니 나아오소서” 하고 소리쳤다. 그는 그 부름에 응답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보좌로 가는 도상에 가엾게 울고 있는 마리아를 위로하시가 위해 잠깐 멈추셨다. 그 여자는 살아나신 주님임을 알아채고 그의 다리를 껴 안고 경배하려 했으나 주님은 “마리아여 그리 하지 말라. 내가 아직 내 아버지를 가 뵙지 못했다. 가서 형제들에게 내가 아버지께로 간다고 말해다오.” 마리아는 부푼 마음으로 기쁜 소식을 전하려고 달려갔다. 그리고 예수님은 저 위에 있는 보좌로 올라가셨다(3SP 202,203을 보라). (132.1)
 천사들은 그를 환영하기 위해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물리쳤다. 그는 마리아의 경배이상의 어떤 경배를 용인 할 수 없으셨다. 그는 그의 마음에 무엇인가를 가지고 계셨다. 그는 30여 년간 이별했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들어 가셨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품속에 안기며 그의 집으로 돌아온 환영의 기쁨에 앞서 그는 한가지 요구사항을 가지셨다. “아버지여 내가 누리는것 같이 저들도 당신이 내게 주신 자도 내가 아버지와 함께 있는것 같이 저들도 있게 해 주십시요. 나는 죽었습니다. 나는 값을 지불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내가 돌아오기 전에 내 친구들을 데려와 나와 같이 있도록 확인해 주시길 원합니다.” 그리고 그는 나와 그대를 생각하고, 계셨다. (132.2)
 아버지의 마음은 아들의 마음을 긍정하셨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의 기도를 응답하시고 그를 포옹했다. 그대와 나를 집에 데려다 그와 함께 있도록 확인해 주셨다. 즉시 예수님은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셔서 저녁때에 그의 제자들을 만나셨다. 그의 제자들과 40 일을 교제 하신 후에 감람산으로 가셔서 복음선포의 사명을 위임하시고 축복을 빌어 주셨다. (132.3)
 다시 그는 그의 하늘을 향한 도상에 오르셨다(DA 833,834). 이때는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으로 하늘 성소에 공식적 취임식을 하시는 계기여서 온 우주의 대표들이 모여 들었다. 그가 도성을 향해 접근하실때 하늘 천사들이 찬양하며 호위를 하였다. (133.1)
 “문들아 열릴찌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신다.” 도전은 다시 왔다. “누가 영광의 왕이뇨?” 존귀로 모시는 이들이 답변하기를 “만군의 주가 영광의 왕이시라” 다시 천사들이 그를 경배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물리쳤다. 그는 그의 아버지를 뵙기를 원하셨다. 그리고 타락하지 않은 온 세계의 대표들 앞에서 “내가 저 타락한 세상에서 내 친구들을 데려와 나와 같이 있을 수 있습니까? 아버지여, 내게 주신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해 주십시요”하고 다시 간구하셨다. 예수님은 그의 요구, 나를 데려다가 그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시겠다는 아버지의 보증이 없이는 보좌를 받으시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내가 거기에 그와 함께 있기를 원하신다. 아버지는 내가 거기에 있기를 원하신다. 모든 하늘은 내가 거기에 있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위에 있는 성전에 중보의 일을 행하시려 들어가셨다. 그대는 그가 거기서 무엇에 관한 기도를 하시는지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그가 아버지께 탄원하는 기도를 제시 하시는 것을 듣기를 원하는가? 엘렌 지. 화잇은 요한 복음 17장의 기도는 “구세주께서 휘장안으로 가져 가신 중보에 관한 공과이다” “하늘성소 안에서의 그의 봉사의 예증”이다라고 말한다(5BC 1145). 그리고 무엇이 절정적인 요구이었는가? “아버지여 내게 주신자도 나 있는곳에 나와 함께 있게해 주십시요”라는 기도이었다. (133.2)
 지금 앞을 바라보라. 고통의 때가 오고 있다. 재앙이 쏟아진다. 사형선고가 선포된다. 성도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고통을 당하고 있다. 밤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오리온의 열린 공간을 통하여 들려온다. 성도들아 “하늘을 쳐다보고, 시선을 고착시켜라. 하나님의 영광을 보라. 그의 보좌에 앉은 인자를 보라. 그의 신성의 모양 가운데 겸비의 표를 식별한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그의 입술로 부터 요구하는 말씀은 ‘내게 주신자도 나 있는 곳에 저들도 있게 하여 주옵소서’(GC 636)하는 그것이다. (133.3)
 이것이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 앞서 하신 기도이다. 그것이 그를 갈바리에서의 최대의 희생의 시간을 갖도록 그를 움직였던 것이다. 그것은 부활의 아침에 그의 생각을 충만케 했다. 그것은 승천하실 때에 그의 마음의 부담이었다. 그것은 그의 중보 사업을 통하여 그의 기도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돌아오시기 바로 전에 주어지는 최후의 초청이다. 그는 우리가 그와 함께 있기를 원하신다. 그대와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그대는 그가 우리를 데려다 거기 있게 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속량은 재 연합을 가져올 것인가? 그렇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히 있게 될 것이다. (134.1)
재 회
나 있는 곳에 저들도 있겠네
우리 주님 겟세마네 앞서 드린 그 기도
아직도 그 가슴엔 가장 큰 염원
아직도 그 탄원은 열열한 부담일세

오 가장 사랑하는 자를 만나려고
동경하는 사랑을 느끼라
더 이상 경박한 길목에서 빈둥거리지 말라
죄의 즐김이나 두려움에서 돌아서서
죄의 아픔이 그 가슴에 들어가서
사이를 내게 된 죄가 한이네
그러나 그의 보혈로서 끝내 버릴 것
위하여 기도한 모든 죄 도말 하셨네

오 그의 기도는 응답되었네
진정 아멘 합시다
우리는 그와 함께 있겠네
그가 다시 오시면!

- W.D.F -
(135.1)
 예언의 신 약자

 AA—사도행적

 BC—재림교 성경주석

 COL—실물교훈

 CD—음식물에 관한 권면

 EW—초기 문집

 Ed—교육

 Ev—전도법

 GC—대쟁투

 PT—현대 진리

 RH—대총회 지남

 SM—가려뽑은 기별

 SP—예언의 신

 SC—정로의 계단

 T—교회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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