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들아 열릴찌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신다.” 도전은 다시 왔다.
“누가 영광의 왕이뇨?” 존귀로 모시는 이들이 답변하기를
“만군의 주가 영광의 왕이시라” 다시 천사들이 그를 경배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물리쳤다. 그는 그의 아버지를 뵙기를 원하셨다. 그리고 타락하지 않은 온 세계의 대표들 앞에서
“내가 저 타락한 세상에서 내 친구들을 데려와 나와 같이 있을 수 있습니까? 아버지여, 내게 주신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해 주십시요”하고 다시 간구하셨다. 예수님은 그의 요구, 나를 데려다가 그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시겠다는 아버지의 보증이 없이는 보좌를 받으시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내가 거기에 그와 함께 있기를 원하신다. 아버지는 내가 거기에 있기를 원하신다. 모든 하늘은 내가 거기에 있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위에 있는 성전에 중보의 일을 행하시려 들어가셨다. 그대는 그가 거기서 무엇에 관한 기도를 하시는지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그가 아버지께 탄원하는 기도를 제시 하시는 것을 듣기를 원하는가? 엘렌 지. 화잇은
요한 복음 17장의 기도는
“구세주께서 휘장안으로 가져 가신 중보에 관한 공과이다” “하늘성소 안에서의 그의 봉사의 예증”이다라고 말한다(5BC 1145). 그리고 무엇이 절정적인 요구이었는가?
“아버지여 내게 주신자도 나 있는곳에 나와 함께 있게해 주십시요”라는 기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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