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징조를 ‘큰 죄악성’으로 보는 해석은 노아 시대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창 6:5) 보셨다고 진술하는 창세기 6:5로 되돌아가도록 만든다. 그러나 창세기 6:5는 하나님의 시각에서 본 것이라는 점을 주목하라. 마태복음 24:37-39는 인간적 관점에서 본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그 본문은 시대의 끝 가까이에 사는 생활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눈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먹고 마시고 결혼하는 것은 정상적인 활동들이다. 그것들을 비정상으로 만드는 것은 노아 시대의 부절제와 재림 직전에 있을 것으로 암시된 것들뿐이다. 그러나 교회 내의 사람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심할 나위 없이 재림 직전의 삶의 이상(異常)보다는 그 정상(正常)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삶은 예기치 않을 때 밀어닥칠 저 위대한 재림의 때까지는 여느 때처럼 계속 이어질 것처럼 보일 것이다. (287.4)
 그 해석은 재림을 도적의 침입에 비유하고 있는 그런 구절들과 멋지게 일치한다(예컨대, 살전 5:2를 보라). 그 해석은 또한 구원받은 자들과 잃어버린 바 된 자들이 갑자기 분리될 것을 가리키는 40절41절과도 조화된다. (288.1)
 어떤 사람들은 40절41절에서 그들의 비밀 휴거 가르침을 도출해 내지만, 그 문맥은 은밀한 어떤 것을 전혀 암시조차 하지 않는다. 그와 그의 천사들이 나팔 소리와 함께 강림하시게 되는 그리스도의 강림의 때에는 모든 사람이 보고들을 수 있을 것이다(30, 31, 27절). 그때에, 성도들은 끌어 올려져 공중에서 그리스도를 만날 것이지만(살전 4:16, 17), 악인들은 그의 영광의 광채로 말미암아 멸망을 당할 것이다(살후 2:8). 휴거(携去, rapture, 들려 올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밀 휴거는 없을 것이다. (288.2)
 24:37-41의 요점은 재림의 절대적인 확실성과 불시성(不時性)이다. 성도들이나 악한 자들도 그 사건이 정확하게 어느 순간에 있을지는 예견할 수 없다. 둘 모두 다소간 그 정확한 타이밍에 대해서는 놀랄 것이지만, 참된 신자들은 징조들을 말씀하시면서 주신 예수의 권면으로 말미암아 적어도 경계 수위를 높여 왔었다. 그러나 그들은 끊임없이 깨어 예비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우리가 24:42-25:46에서 발견하는 다섯 비유의 기별이다. (288.3)
 그러나 그 비유들로 향하기 전에, 우리는 1-41절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들을 요약해 본다. 마이클 그린(Green, 232, 233)이 요약한 마태복음 24장의 교훈들은 큰 도움이 된다. 첫째로, 그리스도의 재림은 확실할 뿐 아니라 인격적(personal)일 것이라고 그는 논한다. (289.1)
 둘째, 역사는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의미하지도 무작위적이거나 영원하지 않다. 그것은 또한 끝없는 순환(循環)도 아니다. “진정한 시작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끝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우리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것이다.” (289.2)
 셋째, 그리스도의 재림은 악에 대한 선의 승리, 인간의 반역과 우주적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의 승리를 가리킨다. (289.3)
 넷째, 재림은 회복을 가져다준다. “오로지 선(善)만이 거하는, 새 창조,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을 것이다”(벧후 3:11-13; 계 21:1-5 참고). (289.4)
 다섯째, 예수의 재림은 심판과 분리를 가리킨다. 어떤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어떤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다(40, 41절). 그때는 마음의 은밀한 생각들과 내부의 품성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질 때가 될 것이다. (289.5)
 여섯째, 그리스도의 재림은 결정적일 것이다. 시대의 끝을 가르면서, 그것은 그 왕국의 충만함을 가져다 줄 것이다. 회개와 변화를 위한 시간은 영원히 지나갔을 것이다. (289.6)
 일곱째, 재림은 하늘에 번쩍이는 번갯불처럼 갑작스럽고 예기치 못한 것이 될 것이다(27절). “그것은 유의하지 않는 세상에게는 청천 벽력처럼 다가올 것이다.” (289.7)
 마지막으로, 예수의 재림은 아버지 하나님만 아시는 때에 이르러올 것이다(36절). 성육신 상태에 계신 예수조차도 그 때를 알지 못하셨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지상 역사를 언제 종결시키는 것이 최선이 될지를 아신다. 그러는 동안에,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구주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어려움 가운데서도 신실해야 하며(13절), 경성(警醒)해야 한다(42절). (289.8)
 이제 우리는 ‘경성’의 주제로 향할 것이다. 예수의 확실한 재림에 비추어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마땅한가? (289.9)
 ■ 말씀에 들어감
 24:42-25:46을 두 번을 읽으라. 그러고 나서 다음의 문제들을 생각해 보라. (290.1)
 1. 이 부분은 다섯 개의 비유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것은 마태복음 24:42-44에서 발견된다. 그 비유에서 배울 교훈(들)을 몇 문장으로 요약하라. 그런 다음 24:1-42와 그 비유와의 관계를 기술하라. (290.2)
 2. 45-51절은 두 번째 비유를 담고 있다. 이것은 첫 번째 비유와 비슷하지만, 우리의 이해를 돕는 몇 개의 요소들을 덧붙이고 있다. 이 비유가 이바지하고 있는 새로운 요소들을 나열하라. (290.3)
 3. 세 번째 비유는 열 처녀의 비유이다(25:1-13). 이 이야기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들을 열거하라. (290.4)
 4. 넷째 것은 달란트의 비유이다(25:14-30). 이 비유의 가르침은 열 처녀의 비유에는 없는 여러 요소들을 덧붙여 준다. 그런 요소들을 일일이 열거하고 예수의 강림을 기다리는 동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아는 데 있어서 그것들이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설명하라. (2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