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출애굽기 제 IV 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중에 거하심 (출애굽기 25-40) 제 10 장 하나님께서 성소와 제사장을 세우심 (출애굽기 25-31장)
 “진설병”(30절)은 여호와 하나님께 바치는 거룩한 떡으로 매 안식일마다 향과 함께 두었다. 한 주 지난 진설병은 제사장들이 먹었으며 향이 피워졌다(레 24:5-9). 이 진설병은 열두 개의 떡이 놓였는데 두 줄로 매 줄마다 유향과 함께 진열해 놓았다. (262.5)
 진설병의 정확한 의미는 성경에 자세한 기록이 없다. 분명한 사실은 진설병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가운데 거하심을 상징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영적, 육적인 음식을 통하여 축복하셨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 진설병을 하나님께 바침으로 이스라엘은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표할 수 있었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진설병을 분명히 기억하셨을 것이다(요 6:35). (263.1)
 등대는 성소의 남쪽에 놓았는데 제사장이 들어왔을 때 그의 왼편에 서 있었다. 금으로 만들어진 이 등대에 대한 치수는 주어지지 않았다. 등대는 가운데 한 개를 중심으로 일곱 개의 가지가 있었다. 이 가지들에는 불을 지피기 위한 등잔이 있는데 아몬드 꽃 모양을 하고 있었다. (263.2)
 등대에는 일곱 개의 등잔과 줄기, 밑받침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등잔에 불을 지펴 성소를 밝혔다. (263.3)
 아몬드 나무는 봄에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데 등잔에 등을 피우므로 등대가 꽃을 피우는 것처럼 보였다. 타오르는 등잔에는 많은 의미가 있었다.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이 빛은 시내 산에서의 타는 떨기나무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했던 불기둥을 회상시켰다. 이 등대의 빛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늘 돌보고 계심을 상징한다.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은 결코 어둠 가운데 놓이지 않을 것이다. (263.4)
 27:1-8에 등장하는 번제단은 여기서 생략하기로 하자. 왜냐하면 번제단이 성전의 뜰에 위치해 법궤, 진설병, 등대 등과 같이 하나님의 임재를 직접적으로 상징하는 것이 아니므로 차후에 다루었으면 한다. (263.5)
 번제단은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 놋으로 입혔다. 번제단은 크기가 가로 세로 7.5피트에 높이가 4.5피트였다. 박스 모양의 이 단은 위아래가 없었는데 단의 중간에 놋으로 만든 철망이 있었는데, 제물을 용이하게 태우는 효과와 타고 남은 재가 바닥으로 잘 빠지도록 만들었다. (263.6)
 번제단에는 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을 옮기는 그릇이 있었다. 재 통과 부삽은 재를 청소하는데 필요했으며 대야는 기름을 받았을 것이다. 갈고리는 제물을 다루는데 쓰였을 것이며 불을 옮기는 그릇은 불똥을 다루는데 쓰였다(Durham의 Exodus 375 참조). 이 모든 기구들을 놋으로 만들었다. (263.7)
 번제단과 기타 성소 밖의 기구들이 주로 놋으로 만들어진 반면에 성소 안의 기구들은 정금으로 만들었다.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기구일수록 더욱 많은 정금을 사용하였다. 성전의 모든 기구들은 이동이 가능했는데, 등대를 제외한 모든 기구들은 링이 있어 막대기를 끼워 이동시켰다. 법궤는 그런 점에서 매우 독특했는데 막대기를 절대 제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기구들도 막대기가 있었는데 이동을 하지 않을 때는 그것들을 제거하였다. (264.1)
 성막
 천막 형태의 성막(26장)은 가로가 30규빗, 세로가 10규빗, 높이가 10규빗(45피트×15피트×15피트) 이었다. 성소(30피트×15피트×15피트)와 지성소(15피트×15피트×15피트)는 휘장으로 구별되었다. 따라서 성막의 전체 면적은 대략 810입방 피트였다. 성막의 골격은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 은 받침 위에 세워 나무로 만든 대들보로 고정시켰다. 이 골격 위에 4겹의 앙장을 씌웠다. (264.2)
 앙장의 구조는 안쪽에서 바같 쪽으로 다음과 같았다. 첫번째 앙장은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을 수놓아 만들었다. 둘째 앙장은 염소 털로 만들어 첫번째 앙장을 덮을 수 있을 만큼 크게 만들어 덮었다. 셋째 앙장은 수양 가죽이었으며, 마지막 넷째 앙장은 해달 가죽이었다. 아마도 이 바같 쪽의 가죽은 폭풍우를 막을 수 있는 방수용이었을 것이다. (264.3)
 성소의 문을 가리는 데 장(帳)을 사용하였다.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는 데도 장을 사용하였는데 성소의 문을 가린 장과 동일한 재료를 사용하였다. 이 휘장에 여러 색깔로 정교하게 그룹들을 수놓았다. 이 장은 성막의 나머지처럼 양가죽과 해달 가죽으로 덮지 않았다. 이 휘장은 지성소에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 기둥 받침을 놋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여기서 또다시 지성소에서 멀어져 갈수록 값진 재료에서 그보다 낮은 재료로 떨어지는 재료의 등급을 엿 볼 수 있다. (264.4)
 성막의 뜰은(27:9-19) 가로가 150피트 세로가 75피트로 놋으로 만든 받침으로 나무 기둥을 세워 세마포 장을 만들었다. 세마포 장의 높이는 7.5피트였다. 따라서 성막의 높이가 15피트였기 때문에 비록 뜰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볼 수가 없었지만 부분적으로 외부에서 성막 안을 볼 수 있었다. (265.1)
 성전 뜰로 통하는 동쪽 문은 나머지 삼 면과 동일한 세마포로 덮었다. 양쪽 코너에서 문까지의 거리는 각각 22.5피트였다. 문 자체는 30피트였다. 휘장을 사용하여 문을 덮었는데 성소의 외부 휘장과 동일한 재료를 사용하였다. (265.2)
 성전 뜰에 관한 지시를 살펴 보면 매우 흥미롭다. 아침에 해가 뜨면 제사장들이 성소로 들어갔는데 해를 등지고 들어갔다. 태양을 숭배하는 자들이 하는 것처럼, 떠오르는 태양을 섬기자면 등을 돌려야 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265.3)
 결 론
 성막에 관한 자세한 기술을 반추해 볼 때 몇 가지 두드러진 점이 있다. (265.4)
 1. 성막 전체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성전 뜰을 포함해도 성막 전체가 교외의 평균 주택 규모이다. 성전 자체는 보통 가옥보다도 작다. 많은 수의 사람이 동시에 제사를 드리게 될 경우 분명히 성막 밖에 서 있었거나 무릎을 꿇고 있었을 것이다. (265.5)
 2. 모든 것이 이동 가능한 것이었다. 성막 건물 전체와 기구들은 이동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백성들과 함께 이동하시었다. (2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