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보좌에 이르는 길 제 4 편 성소 제17장 성소로 들어가는 그리스도인
 

 성소를 위한 준비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는 놋 번제단에 못 박혔다. 우리는 그 번제단 위에 모든 그릇된 습관과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멀리 떠나게 했던 모든 것을 올려놓고, 번제단의 불로 완전하게 태워 버렸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분의 사업을 위해 모든 시간과 재능, 즉 우리의 존재와 소유, 이후에 소유하게 될 모든 것과 소망하던 모든 것을 헌신하였다. 우리의 모든 것은 구주를 위한 봉사에 바쳐졌다. 우리는 물두멍에서 정결하여졌으며, 과거의 죄를 물속에 장사시키고, 새로운 생활을 살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였다. 지상 성소의 성소로 나아가는 지금, 우리는 믿음의 창시자이자 완성자이신 그리스도를 항상 바라보아야 한다(히 12:2, 신킹제임스역).1)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께서 부활하시고 하늘 성소의 성소로 들어가신 후,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신 것처럼, 그분을 따르는 우리는 지상에 있는 성소로 들어가면서, 초기 그리스도인 신자들에게 주어진 베드로의 권면을 듣게 된다. 그러므로 “회개하여 ∙∙∙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행 2:38)라. 우리의 경험이 “요한의 침례”, “회개의 침례”를 받았으나,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행 19:2~5)고 말한 자들과 같이 되지 않도록 하자. (153.1)
 그 다음으로 우리는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빌 3:13, 14)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목표인 하나님의 보좌에 이르는 길을 향한 또 하나의 나아가는 발걸음이다. 이 길에서 우리는 홀로 걷지 않는데, 이는 그분의 약속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볼지어다. 내가 ∙∙∙ 너희와 항상(언제나, 모팻) 함께 있으리라”(마 28:20).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히 13:5).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는 것이다(마 16:24). (153.2)
“내가 고난을 만날지라도
내가 심하게 유혹을 받을지라도
나는 당신이 유혹받았던 것을
   기억하며
당신을 따르기를 기뻐합니다.”

           -James Lawson -

 (153.3)
 푯대를 향하여 좇아감
 푯대를 향하여 좇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빌 3:14) 이는 우리가 이제 하나님의 군대에 입대한 그분의 군사들임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대적하는 사탄과의 평생 전쟁에 자원한 그분의 군사들이다. 이 전쟁에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엡 6:12)한 것이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우리는 “마귀의 궤계(교활한 속임수, 웹스터)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기 위하여, 모팻),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엡 6:11)어야 한다.2) (154.1)
 이 싸움에서는 일반적인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총과 폭탄 대신에, 우리의 구원의 대장께서는 모든 군사에게 전신갑주를 제공하여 주신다. 그 전신갑주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중요한 모든 부분을 완전하게 보호하여, 대적 마귀의 “교활한 속임수”에 대항하여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도록”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154.2)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안정’, 모팻)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火筋)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엡 6:14-18)
(154.3)
 전신갑주를 취하여 무장하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자. 전쟁에서 결코 패한 경험이 없는 우리의 강력한 대장이신 “예수를 (항상) 바라보자”(히 12:1, 2). (154.4)
 이와 같이 완전무장을 갖춤으로 우리는 하늘에 있는 것처럼 생활하게 된다(빌 3:20).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기 때문이며(미국개역성서), “우리가 하늘의 자유로운 시민이”기 때문이다(웨이머스). “우리는 하늘의 시민이며”(모팻), “우리가 소속한 왕국은 하늘에 있다”(이십 세기). (154.5)
 전진, 언제나 전진이 우리의 표어가 되어야 한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눅 9:62)는 말씀을 기억하자.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 어찌하여 다시 악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갈 4:9) 모팻은 이것을 “너희는 어찌하여 약하고 천한 초등 영으로 돌아서려 하느냐? 어찌하여 너희는 다시 그들의 노예가 되기를 원하느냐?”라고 묘사한다. “썩어져 가는 ∙∙∙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엡 4:22),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 1:27).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155.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道)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히 6:1, 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 .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엡 4:27-32). 우리의 발을 이 원칙 위에 굳건히 놓는다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들어가셨던 하늘 성소의 성소 표상인 성소로 들어갈 준비가 된 것이다. (155.2)
 문에서
 정결함을 받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은 우리는, 이제 성소의 입구인 문으로 나아간다. 이 문은 모두 왕실의 색깔로된, “청색, 자색, 홍색”의 세마포 휘장이다. 이 휘장에는 빛나는 금으로 그룹이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다. 예수님께서 하늘 성소의 성소의 “영원한 문”(시 24:7)으로 접근하실 때에 그분을 영접했던 천사들의 “그림자” 또는 “모형”이 수놓아져 있는 것이다. (155.3)
 문과 그 기둥의 상징
 휘장 문은 시팀나무로 만들어 순금으로 완전히 감싼, 다섯개의 기둥에 걸려 있었다(출 26:37). 예수님께서는 “나는 양의 문이라”고 하시면서,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10:7, 1)라고 하셨다. 다른 곳에서처럼 기둥의 재료인 나무는 인성을 나타낸다. 금은 신성을 나타내며, “참으로 전능자께서 네 금이 되”(욥 22:25, 난외주)신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무가 금 안에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숨는다면, 우리 또한 그분의 성전 기둥이 될 수 있을 것이다(계 3:12). (155.4)
 왜 성소의 휘장 문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정문처럼 네 개의 기둥이 아닌 다섯 개의 기둥에 걸려 있는가? 어떤 하나의 상징이 그분을 완전하게 나타낸다고 할 수 없으며, 각 상징은 그리스도의 품성과 사업의 특별한 목적을 나타내고 있다.

 (155.5)
 기둥의 수가 다섯이며, 아마 동일한 이유로 문이 그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벽의 널판도 다섯 개의 띠(막대)로 한데 결합되어 있었다. 어떤 저자는 이 기둥이 그리스도의 다섯 가지 품성과 이름, 즉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사 9:6)을 나타낸다고 말한다.3) 만일 그의 말이 맞다면 그것들이 전능자를 상징하는 순금으로 되어 있음은 얼마나 적절한가. 어떤 다른 저자는 놋이 고통을 통하여 얻어진 승리를 나타내는 것처럼, 이 기둥을 고정하던 다섯 개의 놋 받침은, 예수께서 갈바리에서 몸에 다섯 곳의 상처를 입으시고, 하늘의 성소로 올라가셨음을 상징한다고 제안한다(시 22:16; 요 19:34). 이 놋 받침은 우리가 성소에 들어가기에 앞서 일어나는, 우리의 지상 투쟁에 알맞은 상징이며 승리의 상징이다. 뜰 안의 모든 기물이 놋으로 만들어진 것같이, 우리가 문에 있는 이 놋 받침을 넘어 들어갈때, 우리는 세상적인 것을 갈망하던 옛 경험의 과거 자국들을 뒤로하고 떠나게 된다. 만약 우리가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유 1:24)는 그분을 의지하면,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 굳세게”선다면, 우리는 결코 더 이상 “종의 멍에를 매지”(갈 5:1) 않을 것이다.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세상의 욕망을 이기게 될 것이다. (156.1)
 성소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