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야고보서 제IV부 긴장 (4:1-5:6) 9. 경제적 긴장 (4:13-5:6)
 부자들에 대한 이처럼 날카로운 독설 중에, 야고보는 그들에게 “울고 통곡하라”(5:1)고 말한다. 통곡하라(ololuzō)는 단어는 의성어 즉, 소리에서 의미를 따온 말이다. William Barclay는 그 의미가 단순히 “통곡하는 것” 이상의 뜻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비명을 지르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자들의 엄청난 공포를 묘사한다”(115). (204.1)
 울며 통곡하라는 단어는 구약 선지자들의 기록에서 발견되는 운명적 명령의 메아리이며, 심판의 날 즉 “주의 날”“여호와의 날”과 함께 더 많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바벨론에 대한 신탁에서, 이사야는 기록하기를: “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사 13:6; 또한 15:3의 모압에 대한 그의 신탁을 보라; 슥 11:2과 비교하라). (204.2)
 야고보서 문장에서 수사학적인 단어들은 구약시대 선지자들과 이전의 묵시 문학과 병행을 이룰 뿐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의 반향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예가 누가에 의해 기록된 예수님의 “평지”(눅 6:17)에서의 설교이다. 이 설교에서(마태복음의 산성설교와는 달리), 예수께서는 축복뿐 아니라 저주도 말씀하시는데, 그 첫 번째가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24절)이다. (204.3)
 부자들을 향한 야고보와 예수님의 저주가 있은 수십 년 후에, 계시록의 묵시 문학은 그 기별의 경제적인 측면을 강조하기 위하여 비슷한 저주를 활용한다. 계시자는 땅의 왕들과 상고들이 바벨론의 사치를 함께 나누며 그녀를 위해 울며 애통하며 말하기를,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계 18:10; 9-24절과 비교하라)고 예언한다. (204.4)
 선자자들, 묵시 문학가들, 예수님, 그리고 야고보의 글들은 대부분이 부자들에게 감명을 주기 위한 의도가 아니었음을 우리는 주목해야만 한다. 많은 경우에 그들은 저자의 청중에 끼지도 못하였다. 그러므로 야고보의 진술도 부자들에게 회개의 요청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고통받는 가난한 자들에게 목표를 맞추었다. 그들은 부자들의 압제로 인한 시련을 견디고 있는 자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말을 해주려 하였다. 이들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을 압제한 자들에게 최후의 심판이 분명히 임할 것임을 확신케 되었다. (205.1)
 사치한 생활의 죄
 야고보는 부자들이 두 가지의 죄를 짓고 있다고 이해한다: 첫째는 사치스러운 생활이요 둘째는 압제이다. 첫째는 5:2, 3, 5에서 다루고 있다. 둘째는 4절6절에서 논의한다. 사치스러운 생활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구절들은 축적되어져 온 값비싼 물품들을 이야기하며, 이 모든 부유함의 상징물들은 무가치한 것임을 주장한다. 이 부유함들은 어느 날 부자들을 탄핵하는 증거물이 될 것이며 그들을 향한 심판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205.2)
 성경의 여러 곳에서, 이런 사치스런 생활은 비난받는다. 아모스 선지자는 그의 웅변적인 탄핵으로 유명했다. 그는 매우 강조하여 울부짖기를,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안일한 자여....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른다”(암 6:1-7). (205.3)
 누가는, 신약의 다른 어떤 기자보다 더, 사치스러운 생활약식의 죗됨에 대한 예수님의 관심을 강조한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눅 16:19-31)가 바로 그중 한 예이다. 비유가 부자에 대한 묘사로 시작된 사실은-“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눅 16:19)-이 생활 양식이 이야기의 중심 주제임을 나타내고 있다. 나사로가 그의 고통에 몸부림치며 구걸하는 동안 부자는 그 같은 방탕의 생활을 살아왔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런 삶의 유형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부자는 나사로와 나누기를 거절했기 때문에 이는 정말 사실이었다. (205.4)
 비록 예수님의 마태복음에서의 말씀이 야고보의 마음 한편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마 6:19), 야고보는 누가복음에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눅 12:33)라고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처럼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206.1)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말씀이 야고보의 마음에 있었다 할지라도, 중심에는 그를 둘러싼 실제적 상황이 있었다. 1세기의 부자들은 많은 의복을 소유했으며, 의복을 축적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다. 예를 들어, 사치스러운 한 사람은 5,000벌의 외투를 집에 가지고 있었다(Maynard—Reid, “Poor and Rich,” 225)! 전형적인 부자들은 의복뿐 아니라 양탄자와 모든 종류의 가구들도 그들의 집에 쌓아놓고 있었을 것이다. 야고보에게는 이 모든 부의 표징들이 무가치하다. (206.2)
 그의 탄핵에서, 야고보는 부자들에게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5:2, 3)라고 말한다. 여기서 야고보가 완료 시제, 즉 헬라어 시제 가운데 과거에 일어난 것이 현재까지 그 결과가 계속되는 것을 사용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하지만, 야고보가 알려진 것을 “예언적 완료”로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더 그럴듯해 보인다. 선지자는 그의 “이상” 속에서 사건들이 이미 실현된 것처럼 바라본다. 심판은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이미 현재인 것처럼 묘사될 수 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부자들에 대한 임박한 최후의 저주를 확신 있게 묘사한다. (206.3)
 그가 묘사하는 심판은 5절에서 더욱더 생생해진다: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Alex Motyer는 “그 그림은 두려울 정도로 생생하다. 그들은 마치 생각 없는 야수들 같아서, 그들의 풍요로운 목초는 날마다 무성해지며, 시간마다 살이 쪄가며, 날마다 시간마다의 부주의한 사실들로 인해 도살장과 도살자들만 더 가까이 데려오게 한다. 오직 마른 짐승들만 그날에 안전하다; 살찐 것 그 자체로 이미 칼이 준비되어진다”(168). (206.4)
 압제의 죄
 1세기 부자들의 사치스러운 삶에 대한 그의 공격에 이어, 야고보는 이제 압제받고 착취받는 가난한 농부들의 소송을 다루고 있다(4절). 고대 시대나 현대 시대나 농부들—소작인, 계절농장 노동자, 농장 노동자 등—은 가장 많이 착취받는 사람들이 되어왔다. 야고보의 관심은 그런 노동자들에게 정직한 임금을 주지 않는 것이 중심이다. 1950년대 성서적 주석가인 Lehman Strauss의 야고보서에 대한 의견은 통찰력이 있다: “오랫동안 정착되지 못한 노사간의 논쟁 속에 내 자신이 참여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막대한 재산을 더 축적하기 위해 최소 임금보다도 더 작게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어떤 고용주들의 정당치 못한 관습에 대항하여 어떤 노조 위원장도 이보다 더 심각하고 엄하게 주장할 수는 없다고 나는 단순하게 말했을 것이다.... 그 같은 관습은 하나님에 의해 ‘기만’이라 분류되어지는 것이다”(187). (207.1)
 이 기만은 기만을 가하는 사람들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부르짖음을 일으킨다! 그 부르짖음은 아벨의 피의 울음(창 4:10)과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창 18:20, 21)을 연상시킨다. 야고보서의 부유한 지주들은, 아벨의 피와 같이, 뿌려진 땅으로부터 복수의 부르짖음이 있는 죄를 지은 것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그 울음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과도 병행한다. 이 경우에, 여호와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창 18:20, 21)고 말씀하신다. (207.2)
 소돔과 고모라의 죄와 같이(“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겔 16:49), 부유한 지주들의 죄는 야고보에게 있어서 최종적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들은 너무나 극악하여, 그들에게 부당하게 취급받은 가난한 자들의 울부짖음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나 “만군의 주”(Sabaoth)의 귀에까지 이르렀다. 이 표현은 구약에서 하나님에 대한 가장 위엄 있는 칭호 중 하나이다. “만군의 주”로서 그분은 우주의 주재-별, 천사, 그분의 모든 영역에 대한 명령자이셨다(시 103:20-22을 보라). 이 칭호는 위엄뿐만 아니라 초월성도 강조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최고의 통치자이시며, 모든 존재의 창조자이시다. 이는 그분의 최고의 전능하심에 주목하게 한다. 이 최고의 통치자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들으시며 그분의 가장 낮은 자들이며 가장 중요하지 않는 피조물까지라도 불경건한 압제자로부터 보호하실 것이다. (208.1)
 Lehman Strauss는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이 압제받는 동안 결코 멍하니 서 계시지 않으신다. 야고보가 마음에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는 하나님께서 학대받는 자들 편이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음은 확실하다.... 하나님께서는 잔인하고 압제적인 모든 행동을 고려하신다.... 압제자들의 무기력한 희생자들을 위로하자. 하나님은 흥미 없는 방관자가 아니시다”(188)라고 다시 한번 주장한다. 착취받는 노동자는 이스라엘 노예들에게 군림했던 애굽의 십장들에 의한 압제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으로부터 또한 용기를 얻을 수 있다: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출 3:7, 8)자 하노라. 같은 방법으로 시편 기자는 기도자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의 시구를 노래한다: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시 18:6). (208.2)
 여기서 야고보가 주장하는 특별한 문제는 부유한 지주의 들판에서 곡식을 거두는 일꾼의 삯을 주지 않는 것이다. 품삯을 주는 일에 태만한 것에 대한 금지 명령은 모세의 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명기 4:14, 15에서 우리는 이 규칙을 발견한다,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의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진 후까지 끌지 말라 이는 그가 빈궁하므로 마음에 품삯을 사모함이라 두렵건대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면 죄가 네게로 돌아갈까 하노라”(레 19:13; 말 3:5을 보라). 이런 지침들은 랍비 문서에서도 확증된다. 예를 들어, 바벨로니아 탈무드에서 우리는 “누구든지 고용한 노동자의 임금을 지불하기를 지체하는 자는 아래의 다섯 개의 금지명령과 하나의 단언적 금언에 대해 범죄하는 것이다: 너는 너의 이웃을 압제하지 말라. 그에게서 빼앗지도 말라. 너는 고용된 가난한 종을 압제하지 말라. 고용된 그의 임금을 밤이 맞도록 네가 가지고 있지 말라. 너는 그의 임금을 그 일한 날에 줄지니라; 해가 지기까지 그것을 가지고 있지 말지니라”(Maynard-Reid, “Poor and Rich,” 228)라는 대목을 읽는다. 야고보처럼, Jesus ben Sirach의 중간시대 지혜 문학서에서는 모세의 명령과 랍비의 교훈보다 더 심각한데, 피고용인에게 임금을 지불하는 것을 거절함은 살인하는 것이라고 진술한다. 그 전반적인 문맥은 통찰력이 있다: “궁핍한 자의 빵은 가난한 자의 생명인데, 그것을 그들에게서 빼앗는 자는 누구든지 살인하는 자이다. 이웃의 삶을 앗아가는 것은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다; 피고용인의 임금을 착취하는 것은 피를 흘리는 것이다”(Sir. 34:25-27; 약 5:6을 보라). (209.1)
 나는 야고보가 이 구절들에서 주장하는 상황들에 대하여 다른 곳에서도 광범위하게 저술한다. 나는 그곳에서 경제적인 정세를 지배하며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는 대지주들의 광범위한 문제는 야고보 시대의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B.C. 4년에서 A.D. 65년까지 살았던 로마 저술가 Seneca는 대지주가 “이웃의 것을 돈을 주고 포기하게 하거나 그에게 불익을 줌으로 그를 축출시킴으로 재산을 쌓아간다”(Maynard-Reid, “Poor and Rich,” 229)고 기록했다. (20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