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궁극적인 인식을 갖기보다는, 이 부유한 사업가들은
“자랑하고 뽐낸다”—문자적으로, 그들은 그들의 거만함을 자랑한다(
16절).
자랑하다(
kauchaomai)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긍정적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칭의의 결과 중 하나로, 바울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자랑한다”(
롬 5:2). 하지만 여기 야고보서에서 자랑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이 아니라 교만(
alazoneia)이다. 교만이라는 단어는 흥미로운 어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방랑하는 사기꾼(초기 미국과 다른 비서방 세계의
“주술사”의 병행어)과 관련된다. Paul Cedar는 주장한다:
“이 사기꾼은 치료법이 아닌 치료법을 제공한다; 그는 할 수 없는 것들을 자랑한다”(89). 하지만 야고보서의 상인들은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 알고 있으며, 그들의 목표가 확실하다고 확신하였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그들은
“비현실적인 가공의 세계에서 방황하며, 그들이 그곳에서 발견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있었다”(Tasker, 104). 야고보는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4:16)고 말한다.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