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야고보서 제IV부 긴장 (4:1-5:6) 9. 경제적 긴장 (4:13-5:6)
 이 단락에서, 야고보는 그의 공동체 안에 있는 긴장에 관한 그의 관심들을 계속 강조한다. 그러나 싸움, 다툼, 시기 등과 같은 문제 대신에, 그는 그의 마음과 매우 밀접한 주제인, 가난함과 부함에 대한 문제로 돌아온다. 여기서 그는 이전에 말했던 것을 요약하고 강화한다. 그가 경제적인 문제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목적은, 항상 그랬듯이, 고통받는 공동체에게 위안을 주며 동시에 부자들에 대한 마지막 심판을 자세히 설명한다. (195.1)
 야고보서의 특별한 언급을 위해 세 부류의 부자들이 선발되어진다. 2:6, 7에서 그들은 재정가요 은행가이다. 여기 4:13-17에서 그들은 상인이며, 5:1-6에서 그들은 부유한 농부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부류들이 구분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만 한다. 그 행동들은 동일한 개인이나 무리들의 다른 기능들이다. 하지만 이 마지막 격정 속에서, 야고보는 그들 존재의 상이한 두 개의 영역의 관점으로부터 부자들을 공격한다. 그들은 이 영역들 속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그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이것이 야고보가 그들을 공격하며 대항하는 이유이다. (195.2)
 그의 진술의 첫 부분에서(4:13-17), 그는 누구에 대한 관심도 없이—하나님에 대해서건 가난한 자에 대해서건, 언제나 사업의 이득을 얻고자하는 재정가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두 번째 부분에서(5:1-6), 그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 부유한 농부들과 대지주들을 비난한다. 야고보가 경제적으로 소외된 자들에게 참으라고 훈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경제적으로 힘있는 자들을 탄핵한 후에 비로소 가능하다(7절). (195.3)
 ■ 말씀에 들어감
 문단의 일체감을 갖기 위해 4:13-5:6을 통독하라. 그리고 아래의 질문과 과제를 하기 전에 주의 깊게 4:13-17을 다시 읽으라. (196.1)
 1. 마태복음 25:14-30의 달란트 비유를 읽으라. 그 비유와 야고보서의 이 구절과 비슷한 점은 무엇인가? 서로 다른 것은 무엇인가? 하나는 부정적이고 다른 하나는 긍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설명하라. (196.2)
 2. 누가복음 12:16-21의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읽으라. 그 비유와 야고보서 4:13-17의 기별과의 병행되는 부분을 발견했다면 적어 보라. (196.3)
 3. 물질적인 것들에 대하여 걱정하는 것에 관한 예수님의 산상설교를 읽으라(마 6:25-34). 예수님의 말씀과 야고보의 관심뿐만 아니라 위에 언급된 두 비유와 연관되는 바를 목록으로 작성하라. (196.4)
 ■ 말씀을 탐구함
 평소와 같은 장사
 야고보서 4:13에서 부자에 대한 저자의 결정적인 공격이 시작된다. 그가 그들에게 말하는 방법은 그가 어떤 친분도 가지려는 의도가 없음을 보여준다. 처음 두 단어, age nun(“이제 들으라”로 NIV에 번역됨)은 우호적인 말씨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와 5:1에서 반복된 이 단어는 구약의 선지자들의 비난적인 문체에서 공격을 위한 신호이다. (야고보가 의도한 퉁명스러운 것보다.) 부드러운 번역을 제안하는 성서 해석가들은 수신자들이 1세기의 야심 있고, 근실한 소상인들이며, 그들은 용감하게 무역가로 여행함으로 그들의 미래 경영을 계획하고 있는 자들이라 이해한다. 야고보가 그들의 계획과 이익을 위한 그들의 욕망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들의 계획과 심의 속에 먼저 하나님을 두지 않는 사실을 반대하는 것이라 제안한다. (196.5)
 하지만 본문과 그 문맥을 주의 깊게 읽어 보면 야고보의 설교는 그의 상황과 환경의 사회경제적 실재에 기초하고 있음이 확실해 보인다. 그의 공격은 상인들, 상업적 모사들, 사업가들의 큰 상업적 사업들에 포함된 것들에 맞추어진다. 그들은 거만한 유형들이다. 야고보가 그들의 활동들과 계획들을 기술적으로 자세히 설명하는 방법은, 우리가 가서 ... 유하며 ... 장사하여 ... 이를 보리라는 일년의 과정을 언급함으로서 이 견해를 증명한다. 이들은 그들이 원하는 곳에 가서, 그들이 원하는 만큼 유하며, 그들이 원하는 것을 했던 사업가들이었다. 그들은 예루살렘이나 안디옥 혹은 팔레스타인의 어느 작은 도시의 작은 상점주인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크고 부유한 무역가들이었다. (197.1)
 야고보의 공격을 더욱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이 구절에서 언급한 그 같은 목적의 1세기의 여행을 이해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본인의 1981년 논문인 “야고보서의 가난함과 부함”(193-218)에서, 나는 이것을 길게 검토하여 논하였다. 나는 그 시대가 여행가들, 특히 사업에 종사하는 자들에게는 평온한 시절이었음을 주장했다. 로마의 평화 (Pax Romana)가 지중해 주변의 세계에 형성되어, 여행과 사업을 쉽고 안전하게 만들었다. 광산, 채석장, 제련소, 음식 공장 등이 지어짐으로 교역이 증가했다. 물론 이것은 무역과 교역을 촉진하고 강화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착취의 수준이나 범위도 늘어났다. 탐욕스럽고 거만한 상인들은 도시에서 도시로, 항구에서 항구로 쉽게 갈수 있었고, 그곳에서 최신의 활동들로 번영하여, 일반적으로 가난한 서민을 희생시켜 자신들을 위한 더 많은 부를 쌓아나갔다. (197.2)
 Joachim Jeremias는 그의 책 예수 시대의 예루살렘에서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은 지중해 지역의 대도시들만큼 국제적인 상업활동이 활발했던 곳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자본주들은 언제나 예루살렘에게 매혹을 느꼈다. 그런 자본주의자들 중에는 부유하게 자란 세리들, 도매업자들이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도 포함되었다. 상인들은 교역을 위한 매혹적인 시장으로 예루살렘을 굉장히 동경하였다. 제사장뿐 아니라, 심지어 대제사장까지도 광범위한 상업활동에 종사하였다(Jerusalem, 27-31, 49, 71). 부의 축적은 목표였으며, 이런 사업가들은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필요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것이었다. (198.1)
 1세기 그레코로만 세계, 특히 팔레스타인의 사회․역사적 서술은 기민한 기업가들이 원료를 입수하는 것에 신속했으며 그들의 목적지에 상품을 가지고 가서 파는 것에 매우 용이했음을 보여준다. 이 정보는 이들 자신만만한 상인들의 말: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4:13)에 대한 야고보의 기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한다. (198.2)
 야고보는 그들의 거만함에 대해 반응하면서 명확하게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14절)라고 진술함으로서 그런 뻔뻔스러운 확신을 정죄한다. 야고보의 말은, 비록 더 강하지만,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 27:1)라고 말한 고대의 현자의 말과 병행된다. (198.3)
 더욱 현저한 평행구절은 누가복음 12:16-21에 기록된 예수님의 어리석은 부자에 대한 비유이다. 가장 풍자적인 예수님의 비유로 예수님과 야고보 시대 동안의 거만하고 뻔뻔한 상업주의적 기업가들과 행동들에 대한 전형적인 예이다. 이 어리석은 부자는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눅 12:18, 19)고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없이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것이며, 그 정점에는 오만함이 있다. 약간 유사한 경향으로 Jesus ben Sirach은 한 사람에 대해 말하는데 “근면과 자기 부정을 통하여 부자가 된 자, 그에게 이것이 보상으로 주어졌는데, 그가 가로되 ‘내가 쉼을 찾았고 이제 내 물건들로 잔치를 베풀리라!’ 하는도다. 그는 그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남겨두고 죽는 그때가 얼마나 길 것인지에 대하여는 알지 못한다”(Sir. 11:18, 19). 또한 다른 외경서에서도, “불의하게 은과 금을 취득하며 ... [그들의] 부함은 지속되지 않을 것이며 ... 그들에게서 신속히 올라갈 것이다”(에녹1서 97:8-10; Maynard-Reid, “Poor and Rich,” 219에서 인용)라고 그런 자들에게 저주가 선포된다. (198.4)
 야고보는, 윗 구절의 저자들처럼, 그 당시의 무역가들을 가장 정직한 사업가로 바라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야고보의 언어는 더 강력하다. 그의 age nun, “이제 들으라”5:1만큼 강력한 것이다. 그에게 이들 상인들은, 1세기 팔레스타인의 모든 상인들처럼(“Poor and Rich”에서 이 상황에 대한 나의 광범위한 서술을 살펴보라), 파렴치하고, 불의하며, 거만하고, 압제적인 자들로 이해된다. 그것이 그들의 거만함, 그들의 교묘함, 운과 기술을 자랑하는 것에 대해 비난받는 이유이다. 하지만 그 같은 기교적이고, 거만하고, 교묘한 모든 것은 아무 쓸데없는 것이다. 야고보가 1:10, 11에서 말했던 것처럼, 그런 부류로 추락한 자들은 뜨거운 바람에 쇠잔해지는 꽃과 같은 존재이다. 여기서 그는 말하기를, 그들은 잠깐 보이다 없어질 안개와 같다고 한다. (199.1)
 안개와 같은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