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보좌에 이르는 길 제 4 편 성소 제16장 하늘 성소로 들어가시는 그리스도
 유대인들, 특히 성전에서 봉사하는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구속자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세기 동안 희생 제사 의식에 참여하여 봉사해 왔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의식이 가리켜 온 바로 그분을 죽음에 처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에 대한 어떤 죄의식도 느끼지 않았다. “온 공회”(막 15:1), 즉 산헤드린은 그분을 유월절 전에 죽이도록 결정하였는데, “심문과 처형이 즉시 이루어지지 않으면 유월절 축제로 인하여 한 주일이 늦어질 것이”(시대의 소망, 703)기 때문이었다(본서 382쪽 참조). (135.1)
 승리의 비결
 이와 같이 가장 괴로운 상태에서, 어떻게 예수님은 죄를 범하지 않으시고 그렇게 완전하게 견딜 수가 있으셨는가? 그것은 그분께서 성경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 아닐까? 그분은 “억압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여도”, “어린양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가”(사 53:7, 킹제임스역)는 시각이 다가옴을 아셨기 때문에, 그분의 입을 열지 않으셨다. 그분은 유다가 “상당한 값”(슥 11:12, 13, 신킹제임스역)인 “은 삼십”에 배반할 것을 아셨다. 대제사장의 “시기”“간계”에 의하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 줄 것을 아셨다(시 69:4; 막 15:10; 마 27:18). 그분은 목마를 때에 마시도록 식초가 주어질 것을 알고 계셨다(시 69:21). 사실상 성경으로부터, 그분은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계셨다. 그러므로 그분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부당하게 고소당할 때, “주께서는 아무 대답도 ∙∙∙ 단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셨다(마 27:12, 14, 킹제임스역; 막 15:3, 5). (135.2)
 그분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아셨고(요 12:32, 33; 18:11), 또한 성경이 분명하게 성취될 것을 아셨다(마 26: 52-56; 요 13:18).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조용한 믿음과 하나님 안에 있는 굳건한 신뢰로, 아무런 저항 없이 박해자들에게 자신을 복종시키셨다. 그분이 당했던 모든 일은 그대와 나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다. “자기 앞에 놓인 기쁨(영혼 구원을 보는 기쁨)으로 인하여 (그분께서는) 십자가를 견디사 그 수치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히 12:2, 신킹제임스역)셨다. 그분은 우리의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히 2:10, 17)이 되셔서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하게 되셨다. 그분은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히 4:14, 15; 2:18, 킹제임스역)시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셔서,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돕는 분이 되신다. (135.3)
 예수님께서 죽으신 이유는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병사가 악인들의 죽음을 재촉하기 위하여 왔을 때, 그분은 이미 돌아가셨다(요 19:33). 그분께서는 심장이 찢어짐으로 죽으셨는데, “훼방이 내 마음을 상하게 하”(시 69:20)리라는 그분에 대한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6) (136.1)
 우리가 시험과 환난의 시간을 눈앞에 두고 있을지라도, 만일 성경을 방패로 삼으며, 날마다 예수님의 모본을 따른다면, 결국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롬 8:35~39)게 될 것이다.7) (136.2)
 참된 유월절 양 예수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이신 참된 유월절 양, 예수님께서는 니산월 14일 제삼 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막 15:25), 제구 시, 즉 오후 세 시에 돌아가셨다(출 12:6; 막 15:33-37). 문자 그대로 “두 저녁 사이”인 오후 세 시와 석양 사이의 유월절 양으로, “사건에 있어서뿐 아니라 그 시기에 있어서도”(각 시대의 대쟁투, 399) 완전하게 예언을 성취하셨다. ‘다 이루었다!’는 큰 부르짖음이 그리스도의 입술에서 나왔을 때에,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있었다. 그때는 저녁 제사를 드릴 시간이었다.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양을 잡기 위하여 끌고 왔다 ∙∙∙ . 땅은 떨며 흔들렸다 ∙∙∙ . 성전 안의 휘장이 소리를 내면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져, 한때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했던 곳이 군중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열려 제쳐졌다(마 27:50, 51) ∙∙∙ . 지상 성소의 일부인 지성소는 더 이상 거룩한 장소가 아니었다 ∙∙∙ . 모형이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으로 원형과 마주쳤다”(시대의 소망, 756, 757). 그들은 성전의 지도자들로서 이 모든 것을 목격했음에도, 영적 안목이 폐쇄되어 있었으므로, 이런 현상이 성전 봉사의 마지막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진실로 “소경 된 인도자”(마 23:13~16)였다. (136.3)
 예수께서는 그분의 피를 가지고, “인류의 해방 문서”(치료봉사, 90)에 조인하셨고, “사탄의 멸망을 알리는 종”(각 시대의 대쟁투, 503)이 울려 퍼졌다. 그분의 죽음은, 유월절이 바로 그 순간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고전 5:7)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하늘의 선포였다. 그 시각부터 유월절의 “의의는 끝”(시대의 소망, 723; 부조와 선지자, 539)났고, 그것의 준수는 단지 텅빈 형식이었으며, 익살극에 지나지 않았다. 의식적인 법에 포함된 모든 제사 제도는 사라져 버렸으며,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드셨던 유월절은 진실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마지막 유월절이었다. (136.4)
 의식 안식일이 폐지됨
 이것과 관련해서 매년의 의식적인 절기 “안식일”과 그분의 영원한 법인 십계명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 사이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전자의 경우 매년 일곱 번이 있었으며, 후자는 일 년에 쉰두 번이 있고, 지금도 매주에 한 번씩 있다. 전자의 각각의 안식일은 일 년에 한 번씩 오기 때문에 “절기 안식일”이라고 부르며, 후자는 매주의 일곱째 날에 해당되기 때문에 “매주 안식일”이라고 불렀다. 매주 안식일은 창조의 기념일이다(창 2:1~3; 출 20:8~11). 그날은 절기 안식일의 희생과 같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가리키는 표상이 아니었다. 그날은 일곱 개의 “절기 안식일”과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8) 후자인 절기 안식일은 “여호와의 안식일 외의”(레 23:38) 것이었다. 그것들은 모두 레위기 23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다. (137.1)
— 유월절 안식일 : 성회의 첫날과 마지막 날이 안식일이다(레 23:4~8).
— 오순절 안식일 : 유월절 다음 날부터 오십 일째 되는 날이다(레 23:15, 21).
— 대속죄일 안식일 : 대속죄일의 가까움을 알리는 칠월 첫째 날에 나팔을 부는 날(레 23:24, 25)과 제십 일이 되는 날인 대속죄일이 이 안식일에 속한다.
— 장막절 안식일 : 장막절의 첫날과 마지막 날이 안식일이다(레 23:34-39).
(137.2)
 이 모든 날은 다 같이 “안식일”이라고 불렸다. 각각의 명령과 관련해서 “그 첫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 “너희의 쉴 안식일이라”(레 23:7, 8, 32)고 하셨기 때문이다. (137.3)
 이 목록을 보면 제칠일 안식일은 항상 주일 중 일곱 번째 날에 왔다. 반면에 이 절기 안식일은 일주일 중 정기적인 어느 날에 오는 것이 아니라 12월 25일이라든지 7월 14일 같은 어떤 사람의 생일날과 같이, 그달의 어떤 날에 왔다. 절기 “안식일” 이 정규적인 주 안식일과 일치되는 것은 칠 년 중에 한 번 정도이며, 이날은 안식일이 겹쳐 있기 때문에, “큰 날”(an highday, 요 19:31)이라고 불렸다. (137.4)
 많은 신실하고 한결같은 그리스도인들은 매주 안식일, 곧 “넷째 계명의 안식일”(출 20:10)이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배워 왔다. 그리고 주일중 첫째 날에 그분의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여, 그 후부터 일요일이 신약 시대의 매주 안식일이 되었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137.5)
 그러나 성경 어느 곳에서도 이 가정된 변경에 대한 권위 있는 진술을 찾을 수가 없다. 이 사실에 매우 주의해야 하는데, 이것은 일종의 “마귀의 궤계”(교활한 속임수, 엡 6:11)로, 사람들을 하나님의 영원한 법에 순종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138.1)
 연중 절기와 관련하여 준수된 “안식일”은 그리스도의 갈바리 희생을 예시했던 의식법의 일부였다. 따라서 그분의 죽음으로 원형을 충족시켰을 때, 그것들은 자동적으로 끝나게 되었다. 이것들이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히어서” 폐지되어 버린 “안식일”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법의 일부인 넷째 계명의 안식일은 그렇지 않으며, 결코 끝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거룩한 도성의 문들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가는 자들과 마침내 새 땅에서 영원한 가정을 가질 모든 자들에 의하여 영원토록 준수될 것이다(계 22:14; 사 66:23). (138.2)
 참된 요제 예수
 안식일이 다가옴에 따라(눅 23:54), 예수님의 시체는 십자가에서 내려져 요셉의 새 무덤에 안치되었다(요 19:38-42). 거기서 그분께서는 신성한 안식일을 평온하게 쉬셨다. 그분의 박해자들과 살인자들은 그들의 교활한 계획을 이루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안치되신 동안, 그들은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린 유월절을 경축하면서 “큰 날”이라고 떠들어 댔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났을 때, “여호와 ∙∙∙ 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여!”(출 15:1, 21)라고 노래하면서 큰 기쁨의 날을 맞았듯이, 그리스도께서 “구속사업에서” 벗어나 쉬셨을때, “온 하늘은 구주의 승리에 개가를 불렀다”(시대의 소망, 769. 758). “승리의 함성이 온 하늘과 모든 세계에 울려 퍼졌다”(부조와 선지자. 70). (138.3)
 아빕월 16일(본서 382쪽 참조), 일요일의 이른 “새벽에”, 여인들이 예수님의 몸에 기름을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가지고 무덤으로 갔다. 그러나 그분은 그곳에 계시지 않았다.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천사)이 곁에 섰는”(눅 24:4)데, 그중 한사람은 무덤의 무거운 돌을 굴려 낸 가브리엘 천사로, 그들에게 그분이 살아나셨음을 말해 주었다(마 28:1~6; 시대의 소망, 780). 여인들은 곧바로 이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하였다. 천사의 눈부신 빛 때문에 죽은 사람처럼 쓰러졌던 군사들은 회복하자마자, 바로 대제사장들에게로 가서 일어난 모든 일을 말하였다. 제사장들은 떨었고, 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마 28:11-15; 시대의 소망, 782)고 말하도록 매수하였다. 참으로 그들이 두려워하던 일이 닥쳐왔으며, 군인들을 매수하여 속인 그들의 마지막 잘못은 그들이 범한 첫 번째 잘못보다 더 악질적인 것이었다(마 27:62-66). (13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