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속의 예수 그리스도 제 1 부 창세기 속의 예수 그리스도 창세기 16장 그분은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는 구주이십니다
  (116.1)
 아브라함이 후손을 얻기 위해 애굽인 하갈을 첩으로 맞아들임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집 안에 갈등이 발생했다. 아멘의(믿음) 사람이 타협자가 되었다(창 15:6).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준 여종 애굽인 하갈은 하나님의 약속의 아들을 잉태한 것이 아니다.1 사라가 잉태한 하갈을 집에서 내쫓았지만, 하나님은 하갈을 불쌍히 여겨서 돌보아 주셨다. (116.2)
 여호와의 사자, 선재하신 그리스도.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창세기 16:10).
(116.3)
 여호와의 사자가 여주인 사라의 학대를 피해 도망가는 애굽 여인 하갈을 만나서 후손에 대한 약속으로 축복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여호와의 사자(מַלְאַךְ יְהוָה 말라크 야훼)는 구약에서 48회 등장하고 창세기에서는 16장에 네 번과 22장에 두 번 등장한다(창 16:7, 9-11; 22:11, 15). 그의 신분은 큰 흥미의 대상이 되는데 본 장에서 그는 하나님처럼 말하고 하갈은 그를 하나님으로 부른다(창 16:10, 13). 그는 하나님이시다.2 ‘전통적으로 기독교 해석자들은 천사의 등장을 성육신 전에 신적인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것으로(Christophany) 주장하였다.’3 창세기의 여호와의 사자는 위기의 절정에 다시 나타나신다(창 22:11, 15). (116.4)
 하갈은 아랍민족의 조상인 이스마엘을 낳았다. 이스마엘은 이슬람 종교에서 아브라함과 함께 선지자로 여겨진다. 후에 이스라엘과 아랍은 서로 원수였지만,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축복하셨다.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가 남북의 초강대 적국들인 애굽과 앗수르 사이에서 곤혹을 치룰 때도 하나님은 이 국가들을 축복에 포함시키셨다.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사 19:25). (117.1)
 잃은 자를 찾으시는 주님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창세기 16:7-8).
(117.2)
 ‘술’(שׁוּר)은 벽을 의미하며 애굽의 북쪽 국경지대를 수비하기 위해 쌓은 방어선들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4 탈굼에 의하면 술은 가나안 국경 지대의 도시 혹은 좀 더 그곳을 벗어난 곳인데 이것으로 미루어 하갈은 국경을 넘어 가나안을 떠나버릴 생각을 했던 것처럼 보인다.5 (117.3)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여호와의 사자가 애굽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있던 술 길 샘 곁에서 하갈을 만나 축복하였던 것처럼 예수님은 야곱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메시아 왕국의 복음을 전하시고 그녀를 진정한 하나님의 예배자가 되게 하셨다(요 4:5-7, 19-26).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고 하신 주님은 시돈 땅에 살고 있던 수로보니게 여인의 요청에 응하여 그 딸을 귀신의 고통스러운 지배에서 해방시키셨다(창 16:11; 막 7:27-30).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이방인을 개처럼 여기며 장벽을 쌓는 지역과 민족과 인종적 편견의 장벽을 무너뜨리고자 하셨다. 주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아버지께로 돌아오게 하셨다. 하나님은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신다(롬 3:29). (118.1)
 회복자 주님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창세기 16:9).
(118.2)
 하나님이 도망친 종을 주인에게로 회복시키셨다. 아브라함의 집에 돌아간 애굽인 하갈은 그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참 하나님을 배우고 경배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이슬람은 유대교와 기독교처럼 유일신적 종교이다. 이슬람은 아브람과 이스마엘과 예수님을 모하메드 보다 앞 선 예언자로 여긴다.6 이들은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무리에 속한다(요 10:16). (118.3)
 들으시는 주님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창세기 16:11).
(119.1)
 하나님의 들으심은 이스마엘의 이름 가운데 기념되었다. 이스마엘은 그가 하나님을 들을 것이다, 그가 하나님께 들은바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자, 주께서 들으신다,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뜻이다.7 구약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이 곤고한 중에 신음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구원의 길을 내신다(출 2:24; 3:7; 6:5). 우리는 들으시는 하나님을 모신 백성이다(왕상 8:31-35; 시 34:15; 벧전 3:12). 우리는 속사정을 아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기 때문에 중언부언하지 말고 하나님께 형편을 단순하게 말씀드리면 응답을 받는다(마 6:7-8; 요일 5:14). (119.2)
 주님은 치유와 전도와 교육 사업을 통해서 인류의 전인적 고통을 해결해 주기 위해 노력하셨다(마 4:23). 주님은 우리의 전인적 필요를 채워주길 원하신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3-14). 주님은 피조물의 탄식을 들으시고 온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실 것이다. 우리는 들으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인내하며 영광의 날을 기다릴 수 있다(롬 8:22-25). (119.3)
 두 어머니, 두 아들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창세기 16:6).
(120.1)
 갈라디아서 4:21-31은 하갈과 사라를 대조함으로 여종의 자녀에 속한 자와 자유한 자의 자녀에 속한 자를 비교한다.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출생했고 이삭은 약속의 자녀이다. 비유하자면 이삭처럼 하나님의 교회는 성령을 따라 난 자요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이을 자이다(갈 4:24).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 언약을, 사라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 예수님을 통한 새 언약을 대표한다(갈 4:26). (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