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요한계시록 제16장 땅에서 온 짐승
 17세기에 독일의 고전학자 안드레아스 헬비히(Andreas Helwig)는 666이란 숫자의 수치를 라틴어 비카리우스 필리이 데이(vicarius filii dei)라는 제명(題名)에다 적용했다. 이것을 영어로 옮기면 “Vicar of the Son of God” (“하나님의 아들의 대리자”)인데, 교황권(papacy)의 칭호일 것으로 추측했다. 유라이아 스미쓰(Uriah Smith)는 그의 요한계시록 주석을 통하여 이 견해를 재림교인들 사이에 널리 퍼트렸고, 나아가서는 교황의 왕관(crown)에 이 칭호가 새겨져 있다는 주장까지 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엘렌 화잇이 그녀의 저술들에서 요한계시록의 짐승과 그것의 수를 교황권이라고 분명히 밝히기는 했지만,5 666이란 수를 해석하기 위하여 Vicarius Filii Dei를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6 (223.2)
 비카리우스 필리이 데이라는 라틴어 구절을 666에 적용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어떤 사람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교황의 삼층관(三層冠. tiara) 또는 주교관(miter)에 이 문구가 적혀 있다는 문서화된 증거가 없다. 과거에 몇 교황이 이따금 Vicarius Filii Dei 라고 일컬어지기는 했지만 이것이 교황의 공식 칭호였다는 증거는 없다. (223.3)
 둘째, 요한계시록에는 어디에서도 게마트리아(gematria)가 숫자 계산의 방법으로 사용된 적이 없다. 요한계시록에서 숫자는 언제나 상징적 의미로 쓰였다. 예를 들면, 이어지는 문단(계 14:1)에서 144,000인은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기술되었는데. 이것은 수학적 계산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의 영적 이해를 요구한다. (223.4)
 셋째, 성경 본문은 짐승의 수[666]가 어떤 언어로 기록되었는지를 명시하지 않았다. 요한계시록에서 이름이 특별한 의미를 가질 때는 언제나 “히브리어”(9:11; 16:16) 또는 “헬라어[그리스어]”(9:11)라고 명시되어 있다. 라틴어는 요한계시록에 사용되지 않았고, 666을 라틴어로 풀어야 한다는 지시도 없다. 만약 짐승의 이름의 의미를 글자들의 수치를 사용함으로써 풀어야 한다면, 이 책에 있는 다른 모든 경우들에서와 마찬가지로 그 언어가 명시되었을 것이다. (224.1)
 넷째, 요한계시록 13장은 666이란 수는 마지막 때에 국한하여 적용되어야 하고 그 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준다. 그 수는,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후에 그리고 어린양 같은 짐승이 땅에 거하는 자들로 하여금 바다 짐승의 표를 받게 하는 기간에 있던 바다 짐승의 수로 밝혀져 있다. 그리고 바다 짐승의 표는 그것의 이름과 수로 되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 수의 의미를 밝혀냄으로써 그 짐승의 진정한 본질을 깨달아 그것에게 기만당하는 일을 피하라는 권고를 받는다. 666이란 숫자를 어떤 역사적 인물이나 중세의 라틴어 제명 “비카리우스 필리이 데이”에 적용하는 것은, 그 짐승에게 경배하는 자들이 짐승의 표를 받게 되는 마지막 때에는 맞지 않는다. (224.2)
 666이란 수(數)의 의미
 그러면 666이란 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요한계시록은 666이 “사람의 수”(13:18)라고 정의하였다. 그리스어 아리쓰모스 안쓰로푸(arithmos anthrōpou)는 “사람의 수” 또는 “인간의 숫자”라고 번역할 수 있다. 여기서는 “인간의 숫자”를 의미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21:17에 나오는 메트론 안쓰로푸(metron antrōpou)가 “사람의 측량”을 뜻하는 것과 비슷하다. 요한계시록 13장의 짐승은 마지막 때에 나타날 어떤 개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장(13장) 전체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종교—정치적 체계를 말하고 있다. (224.3)
 666을 이해하는 최선의 방법은 영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성경에서 7은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나타내는 신성한 숫자이다. 7에서 하나가 부족한 6은 하나님의 완전하심에 못 미치는 인간을 가리킨다. 이것은 인간이 7일로 된 주일(週日)의 충만함에 하루가 빠지는 제6일에 창조되었다는 사실에 기초한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창조자와 구속자로 인정함으로 7이라는 수에 이를 때에만 비로소 그의 존재 목적에 도달한다. (225.1)
 이와 같이 666은 하나님을 떠나 있는 인간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이해는 열왕기상 10:14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이 성경절은 성경에서 요한계시록을 제외하고 666을 언급한 희귀한 본문들 중의 하나이다.7 이 본문에는 “솔로몬의 세입금[매년 수입]의 무게가 금 666달란트”였다고 기록되어 있다[금 1달란트는 34.2킬로그램이다.—역자주]. 솔로몬 왕은 한때 하나님께 충성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런 기록이 있은 직후에 그는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의 궁전에 금을 쌓기 시작했고, 병거(兵車)와 마병을 증가시켰으며, 또 많은 이방 여인들을 후궁으로 들여왔다. 이것은 이스라엘왕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지시, 즉 “왕은 병마(兵馬)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지 말게 할 것이니, ∙∙∙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지 않게 할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금과 은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신 17:16-17)라는 지시를 분명히 위반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율법을 주신 목적은 이스라엘 왕들이 교만하지 않고, 그의 형제들 위에 자기를 높이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신 17:20). (225.2)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음으로 솔로몬 왕은 하나님에게서 완전히 돌아섰고, 교만과 오만에 도취되어, 이방신들의 우상을 섬김으로 그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었다. 이리하여 666은 솔로몬이 하나님을 떠나서 이룬 모든 성공과 업적의 총화(總和)를 나타냈다. 솔로몬은 자기의 모든 성취와 번영의 공로를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자신에게 돌렸다. 심지어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세운 성전도 자기의 교만과 오만의 표지(標激)가 되었다. (225.3)
 구약 배경에 비춰보면, 요한계시록 13장의 짐승의 수는 하나님에게서 돌아서 사탄을 섬기는 인간의 체제를 가리킨다. 그와 같은 체제, 곧 반역적인 이 체제는 하나님을 대항하고, 자신을 하나님 위에 높이며, 하나님의 칭호와 대권을 주장하고 나선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 대신에 자기를 경배할 것을 요구한다(계 13:6-8; 참고 살후 2:4).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짐승의 체제는, 솔로몬과 같이 한때는 하나님께 충성하였으나 결국 하나님을 떠나버린 배도한 교회를 가리키는 것임이 확실하다. 마지막 때에 이 체제는 솔로몬과도 같이 사람들을 하나님에게서 떠나 사탄의 편으로 이끌 것이며, 하나님께 충성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을 박해할 것이다(계 13:15). (226.1)
 바벨론의 수(數)
 666이 양 같은 땅 짐승과 용과 연관을 가진 바다 짐승을 가리킨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666이란 숫자는 6을 세 번 반복한 것인데, 그리스어로 헥사코시오이 헥세콘타 헥스(hexakosioi hexēkonta hex)”로 표현되었다. 이 삼중으로 된 6(hex, 헥스)은 사탄의 삼위 연합체(triune league)—용, 바다 짐승, 땅 짐승—가 요한계시록 1:4-6에 명시된 하나님의 삼위일체(Trinity of God)의 위조품임을 밝혀준다. 이 사탄의 삼인조는, 구약 시대의 고대 바벨론—하나님의 종교를 반대하고 세계를 지배하려고 하는 지상의 세력—의 이름을 따서 “바벨론”이라 일컫는 말세의 종교 체제를 형성한다. 바벨론은 그 시작으로부터 하나님을 대항하는 무신(無神)의 세력의 화신(化身)으로 등장했다. 이사야 14:12-14에서 바벨론의 왕은 루시퍼 (Lucifer)와 그의 행위의 상징이다. (226.2)
 666의 의미는 6이 바벨론의 수라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고대 바벨론의 계산법은 수들을 6과 60으로 나누고 분류하는 60진법(sexagesimal system)에 기초하였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각도를 재거나(90도, 180도, 360도) 시간을 잴 때(60초, 60분, 24시간), 바벨론식 측정법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바벨론에서 6이란 수는 종교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6은 바벨론 만신전(萬神殿, pamheon)의 주신(主神)들의 수였다. 이것은 느부갓네살 왕의 금 신상의 높이가 왜 60규빗이었고, 너비가 왜 6규빗이었는지를 설명해준다(단 3:1). (226.3)
 요한계시록 13:14-18에 나오는 언어는 다니엘 3장을 반향(反響)하고 있다. 다니엘 3장에서 느부갓네살왕은 신상 건립, 6이라는 수, 신상에게 경배함, 사형의 위협, 전국적인 범위 등을 통하여 백성에게 우상숭배를 강요하였다(단 3:1-6). 이와 같이 다니엘 3장요한계시록 13:14-18의 배경인 것이 분명하다. 요한계시록 13장다니엘 3장의 이야기가 마지막 때에 전 세계적인 규모로 반복될 것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 사람들은 우상에게 경배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227.1)
 이것이 요한계시록에서 바벨론의 수—반역한 인간의 수—인 666의 신학적 의미를 풀어 주는 배경이다. 이 수는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사탄의 편에 서서, 일찍이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그 짐승에게 경배하도록 유인하는 마지막 때의 체제를 가리킨다.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들은, 고대의 바벨론처럼 자신을 하나님보다 높이 올리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취하려고 하는 그 체제의 편에 서게 된다(참고 살후 2:3-4). (227.2)
 그러나 이 체제는 하나님을 가장(假裝)하지만 신적(神的) 특성에 다다르지 못한 인간의 제도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이 체제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기별은 구약 시대에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던 두로의 왕에게 주셨던 기별과 동일하다. “너는 ∙∙∙ 사람일 뿐이요. 신이 아니라”(겔 28:9). 이러한 마지막 때의 적(敵)그리스도의 세력과 체제를 분간하는 데는 지적인 영리함과 계산이 아니라 신령한 지혜와 식별력이 필요하다. (2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