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요한계시록 제16장 땅에서 온 짐승
 반면에 구약이 보여 주듯이, 우상은 생명이 없다(시 135:15-17). 그래서 땅 짐승은 여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곧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그 우상을 살리는 것이다. 여기서 우상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흙으로 빚으신 후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산 사람이 되게 하셨다고 하는 창세기 2:7을 흉내내는 것이다. 이와 같이 땅 짐승은 바다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그것이 살아나게 한다. 대중적인 경배를 위한 그 우상의 요구를 강제로 시행하기 위하여 기만적인 기적과 정치적 권력을 사용함으로써 땅 짐승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바다 짐승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것에 충성하도록 설득할 것이다. (218.1)
 이 모든 광경은, 느부갓네살 왕이 그의 나라의 백성에게 자기가 세운 금 신상에 경배하도록 명령하면서 만약게 어기면 사형에 처하겠다는 위협을 하는 다니엘 3장을 반영하고 있다. 다니엘 시대에 왕이 법령을 내려 금 신상에게 경배할 것을 강요한 것과 같이, 마지막 때에도 대중적인 경배를 하라는 요구가 민간 세력의 지지를 받아 온 세상이 바다 짐승을 경배하도록 강요할 것이다. (218.2)
 여기서 요한계시록 13장은 개신교 국가인 미합중국(Unites States of America)이 바다 짐승의 치명적인 상처를 낫게 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적시(摘示)하고 있다. 그것은, 사탄이 중세 동안에 사용한종교—정치적 체제가 세계 역사의 마지막 날에도 다시 일어나서 세상 사람들의 예배와 양심을 지배할 것임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 이 예언은 마지막 때에 중세의 비관용[종교의 자유를 허락지 않는] 정책이 재현될 것을 가리킨다(계 13:15). 양과 같은 짐승은 바다 짐승과 한 편이 되어 종교적인 연합체를 이루어 서유럽과 동반구에서 중세 그리스도교의 특징을 이루었던 제도를 강요할 것이다. 땅 짐승의 영향은 전 세계적으로 미칠 것이다. (218.3)
 짐승의 표 (13:16-17)
 이 제도가 가하는 압박에 굴복하는 사람들은 짐승의 이름이 새겨진 표를 그들의 오른손이나 이마에 받게 될 것이다(계 13:16). 인간 사회에 모든 계층이 짐승의 표를 받으라는 명령을 받을 것이다.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은 그 짐승에게 소속되고 그것에게 경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짐승의 표(標)는 하나님의 인(印)의 반대 개념(antithesis)이다. 하나님의 인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을 증명하는 것처럼 짐승의 표는 그것에게 속하여 그것에게 경배하는 사람들을 증명한다. (219.1)
 인을 치는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임재를 의미하는 반면에(엡 1:13-14; 4:30), 짐승의 표는 성령의 역사를 위조하는 것이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은 이 종교 체계에 가입되어 그들의 마음과 생각으로 그 짐승을 영영 섬기게 된다. 어떤 사람은 자진하여, 또 어떤 사람은 마지못해 그것을 섬긴다. (219.2)
 짐승의 표를 오른손이나 이마에 받는 것은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그들의 손과 이마에 기호(記號)로 붙이라고 지시한 신명기 6:8을 상기시킨다. 이 지시를 유대인들은 문자적으로 받아들여 그들이 하나님께 속하여 순종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하여 경문(經文, phylacteries)을 차고 다녔다.1 (참고 신 6:8; 11:18; 마 23:5—역자 삽입). 이것은 이마에 표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율법을 그분의 백성의 마음과 행위에 새기는 일과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반대로, 오른손이나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거절하고,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짐승에 대한 순종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219.3)
 요한계시록은 최후의 위기 때에 중심 되는 문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그분께 경배하고 순종하는 것임을 보여 준다(계 14:12). 온 세상은 두 무리—하나님께 경배하는 자들과 짐승을 경배하는 자들—로 나뉠 것이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자들의 특성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계 12:17; 14:12), 짐승에게 경배하는 자들의 특성은 하나님의 계명 지키기를 거절하는 것이다. (219.4)
 요한계시록은 십계명의 처음 네 계명—인간이 하나님과 경배에 대하여 가지는 관계에 관한 것—은 최후의 위기 때에 하나님께 대한 충성의 표준이 될 것이다. 마지막 때의 사탄의 활동들은 요한계시록에서 이 네 개의 계명들에 대한 잘 계획된 공격으로 묘사되어 있다. (220.1)
• 바다 짐승이 자신을 경배할 것을 요구하는 것(계 13:15)은 첫째 계명에 대한 정면 공격이다. 첫째 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3).
• 땅 짐승이 바다 짐승의 우상을 세워 사람들이 그 우상을 경배하게 하는 것(계 13:14-15)은 둘째 계명에 대한 정면 공격이다. 둘째 계명: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출 20:4-5).
• 짐승이 하나님께 대하여 신성 모독의 말을 하고 그분의 이름과 장막을 비방하는 것(계 13:5-6)은 셋째 계명에 대한 정면 공격이다. 셋째 계명: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출 20:7).
• 짐승의 표(계 13:16-17)는 넷째 계명에 대한 정면 공격이다. 넷째 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
(220.2)
 요한계시록 14:6-12은 특별히 안식일[넷째] 계명이 인간의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순종의 리트머스 시험지(litmustest)가 될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2 짐승에게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기보다는 참하나님께 경배하고 순종하라는 세 천사의 기별의 호소는 넷째 계명 즉 안식일 계명과 관련된 것이다(계 14:7; 14:9). 성경에서 안식일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하나님께 드리는 올바른 경배[예배]와 연관된다. 안식일이 하나님의 충성된 백성의 순종을 나타내는 뚜렷한 표징이듯이(참고 출 31:12-17; 겔 20:12, 20). 짐승의 표는 짐승에 대한 순종의 표징이다. 그러므로 짐승의 표는 하나님의 계명을 인간의 계명으로 대치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가장 뚜렷한 증거는 제7일인 하나님의 안식일을 인간이 제정한 안식일, 즉 주일 중 제1일인 일요일로 대신한 것이다. (220.3)
 그러나 단순히 일요일을 지키는 것 자체가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예배드리는 날을 선택하는 일에 포함된 문제들에 대하여 명확하게 이해하고도 일요일을 지키기를 고집하면 그때 비로소 일요일을 지키는 것이 “짐승의 표”가 된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짐승의 표를 받는 의미를 잘 이해하면서도, 안식일 대신 일요일을 지킬 때이다.3 그러한 때는 아직 미래에 있다. 현재로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어떤 개인이나 단체가 짐승의 표를 받았다고 꼬리표를 붙여서는 안된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어떤 개인을 참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일요일을 지키는 것이 어떤 개인을 복음에서 제외되게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짐승의 표가 큰 문제점이 될 때가 오고 있다. 그때가 되면, 세상에 사는 사람들 각자가 하나님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그분을 대적할 것인지에 대하여 자신의 입장을 택해야할 것이다. (221.1)
 요한계시록은 짐승의 표가 어떤 형태일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정확하게 적용될 것인지는 설명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예언이 성취되기 이전에는 그 내용을 자세히 알 수 없듯이, 짐승의 표도 그것이 성취될 때에야 온전히 이해할수 있다는 것이다. 짐승의 표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눈에 보이는 표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므로, 우리는 그것이 최종적으로 성취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엘렌 화잇은 짐승의 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아직도 [그것에 대하여]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없으며, 그 두루마리가 펼쳐질 때까지는 다 깨닫지도 못할 것이다.”4 (221.2)
 요한계시록 13:17은 마지막 때의 드라마의 절정에는 그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제적 제재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세상 사람들은 마귀의 활동으로 인하여 기만을 당할 것이다(계 16:13-14). 그 짐승에게 경배하기를 거절하는 것은 불충성의 행위로 취급되어 사형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사탄이 이 세계의 유일한 소유자가 되고자 하는 오랜 열망의 결과이다. 그러나 이 열망은 이 세계에 대한 그의 통치권을 인정하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는 한 실현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나리오는 권능과 영광가운데 오시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끝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의 삼위일체와 그들의 세력들을 패배시키시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들을 옹호하시며 그들의 영원한 본향으로 데려가실 것이다. (221.3)
 666이라는 수 (계 13:18)
 요한계시록 13장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독자들이 짐승의 수인 666을 풀어 보라는 부탁과 함께 끝난다. 이 숫자를 풀기 위해서는 특별한 지혜와 총명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말하는 지혜는 빛나는 지적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역사로 받는 영적 분별력을 가리킨다.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여”(잠 2:6; 참고 단 2:21)라고 솔로몬은 기록하였다. 야고보는 우리가 하나님께 지혜를구하면,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그것을 후히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약 1:5). (222.1)
 요한계시록 13:18의 지혜와 명철에 대한 언급은 분명히 다니엘 12장을 가리킨다. 여기서 다니엘은 그가 하나님의 백성이 당할 박해에 대하여 기술한 부분을 그것이 개봉될 세상 끝날까지 봉함하라는 명을 받는다. 지혜 있는 자는 그 예언들을 깨달을 것이고,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단 12:10). (222.2)
 요한계시록 13:18은 위에서 읽은 다니엘서의 말씀을 상기시킨다.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백성이 짐승의 기만적인 성품을 잘 식별하고, 마지막 때의 기만으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지혜가 필요하다(계 17:9을 보라). 그러나 이러한 지혜를 갖지 못한 자들은 마지막 때의 기만의 희생자가 될 것이다(참고 살후 2:10-12; 계 13:8). (222.3)
 비카리우스 필리이 데이 (Vicarius Hlii Dei)
 그리스도교 역사를 통하여 666이란 수의 배후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한 많은 시도가 있었다. 인기를 끈 한 가지 방법은 게마트리아(gematria)라는 것인데, 이것은 알파벳(alphabet)의 글자들을 숫자로 연결시키는 방법이다. 오늘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아라비아 숫자가 발명되기 전에는 히브리어, 그리스어, 로마[라틴]어 등의 글자들이 수치(數値)를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A는 1 을 나타내고, B는 2를, C는 3을 나타내는 방법이다. 이러한 게마트리아를 이용하여 한 개인의 이름이나 칭호의 수치를 모두 합하여 666이란 수를 산출하였다. 그 결과, 다수의 상이한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각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666이란 숫자를 거의 모두 자기들의 시대에 적용했다. (2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