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에 나타난 구원 시편 27편 승리하는 믿음
 「다윗의 시」 (232.1)
 시편 27편 (232.2)
 다윗의 이 시편은 살아 있는 믿음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다. 이같은 믿음은 하나님을 확신하고 신뢰하며(1~6, 13절) 또한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순종하는 믿음이다(7~12절). 이 시편은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두려워 아니하리로다” 라고 시작되는 시편 46편의 그것과 흡사한 믿음과 승리의 음조를 지니고 있다. 시편 27편에서 우리는 이처럼 신뢰하는 믿음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음을 보게 된다. (234.1)
 첫째로, 다윗은 자신을 죽음으로 위협하는 어떤 압도적인 대적을 만났을 때 하나님 안에 있는 요동치 않는 신뢰를 보여준다(1, 2절). 다음으로, 그는 자신의 승리에 대한 완전한 확신을 계속 공언한다(3절). 그는 자신의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할 것을 결심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 27편은 신앙인의 마음속에서 신뢰하는 믿음이 어떻게 번뇌하는 믿음으로 변하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극적인 본보기가 된다. 이 변화는 다윗이 처음 에는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하다가(1~6절) 하나님께 직접 말씀드리기 시작할 때(7~12절) 관찰할 수 있다. 하나님의 도움은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그분이 주시는 은혜의 결과인 것이다. 그것은 대체로 애통과 탄원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온다. (234.2)
 시편 27편은 다윗이 그릇되이 참소당하여 핍박까지 당하고 종내에는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회막으로부터 내어 쫓김을 받는 하나의 상황에서 비롯된 듯하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그가 취할 수 있는 애원의 근거—자신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도록 하나님을 움직이기 위하여—는 주목할 만하다. 그는 확신 가운데서 증거하고 있다. (235.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 27:1)
(235.2)
 이 가사는 보조 대구법이라는 시형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복음을 한층 더 강조해 주고 있다. 다윗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하나의 추상적 관념이나 철학적 공론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다윗의 생애 가운데서 구세주로 입중되셨다. 이같은 근거에서 다윗은 결국 그분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된다. (235.3)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 역사하실 때마다 히브리 인들은 이를 하나님께서 당신의 얼굴을 그들에게 비추신다는 말로 표현했다(민 6:24~26; 시 6:6, 97:1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실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앞서 가셔서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출 13:21) 하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적극적으로 구원하셨다.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 구름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출 14:24). (236.1)
 이 배경에 대한 그리스도의 말씀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불기둥이요 의의 태양이며 광명한 새벽별이시다(말 4:2; 계 22:16). (236.2)
 그리스도께서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이적으로 당신의 구원의 능력을 보이셨다(요 9:1~7). 성경에서 “빛”“구원”은 하나님에 관한 동일한 묘사이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라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다윗의 찬송을 완전한 의미에서 메시아적으로 부를 수 있다. 즉 그리스도는 나의 빛이요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이것이 바로 신약의 신론(神論)에 나타난 점진적인 계시이다. 그리스도는 야훼 하나님의 옆이나 아래에 계시는 또 하나의 다른 하나님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하나이시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본질적 합일체로 나타나셨다(마 28:18~20 참조). 신약에서 보여주는 이 이스라엘의 신앙은 바로 그리스도인 신앙의 특징이 된다. (236.3)
 다윗은 하나님을 자신의 생명의 “능력”으로 경험했다(1절). 그는 이것을 시편 18편에서 보다 완전하게 설명했는데 거기에서는 하나님을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2절)로 불렀다. 그는 비록 그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을지라도 자신의 생명이 하나님의 임재로 말미암아 보호되었다고 믿었다. 하나님께서는 노획한 짐승을 잡아먹듯 그를 삼키려 하는 모든 비난자들 로부터 그를 보호하셨다. 하나님 안에 있는 그의 소망은 쇠하지 않는다. (237.1)
“나의 대적 나의 원수 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시 27:2)
(237.2)
 그는 하나님께서 그 대적들의 오열(石列)을 감쪽같이 교란시키심으로 그들의 살인 음모를 방해하여 그들이 갑자기 넘어져 뒹굴도록 하실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다윗은 압살롬에 의해 주도된 왕좌에 대한 위협적 음모에서 살아 남았을 때, 역사 속에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되었다. “주께서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시 3:7). 결국 다윗은 자신의 보좌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다윗 계열의 신정 정치를 영원히 보호하실 것이라는 약속(삼상 7:12~16 참조)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내 살을 먹으”려는 자들은 실제로 다윗의 이름을 중상 모략하는 자들이다. 그는 자신의 원수들을 악을 토하는 “위증자”라 부르고 있다. (12절). 중상 모략은 사람이 행할 수 있는 가장 교활한 죄악에 속한다. 그것의 본질은 사단적이다. 예수께서는 사단에 관해 “저희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요 8:44)다고 말씀하셨다. (237.3)
 하나님 안에 있는 다윗의 믿음은 역경 가운데서 더욱 강하게 자라날 뿐이었다. (238.1)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시 27:3)
(238.2)
 사람이 과연 이보다 더 하나님을 신뢰하는 위대한 믿음을 나타낼 수 있을까? 다윗은 곤경의 때를 예견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을 확인하고 있다. 아물든, 다윗은 구척의 거인 블레셋의 골리앗에게 도전했을 때 이미 그 행동하는 믿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목동의 팔매와 시냇가에서 주운 돌맹이 몇 개만으로 감히 그와 더불어 싸우기까지 했던 것이다. 이 엄청난 영웅 앞에 서서 다윗은 이렇게 호통을 쳤다. (238.3)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삼상 17:45, 46).
(239.1)
 골리앗이 그의 창을 던지기 전에 다윗의 돌팔매에서 조약돌 하나가 그 블레셋 사람의 이마에 적중하여 그를 땅에 넘어뜨리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믿는 다윗의 믿음과 확신에 온전히 보상하신 것이다. 시편 27편은 우리가 아마겟돈 전쟁(계 16:13~16, 17:14)에서 적그리스도나 또는 마지막 응보의 날(롬 5:9 참조) 같은 고난의 날을 맞아야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에 이와 같이 보상해 주실 것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239.2)
 시편 27편을 마음과 입술에 지닌 사람이 어찌 패배를 당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안전하고자 하는 욕구만으로는 불 충분하다. 사람은 확신을 얻고 승리를 체험하기 위하여 다윗처럼 그것을 진지하게 구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239.3)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두른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시 27: 4~6)
(2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