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막 7:31-37
 이방인 땅에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치유(治適)해 주신 예수님께서 다시 갈릴리 호수 쪽으로 오시고자 두로에서 북쪽 지방인 시돈으로 가셨다. 그리고 다시 남쪽의 갈릴리 지역으로 내려와 요단강 맞은 편에 있는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하여 드디어 갈릴리 호수에 이르렀다. 학자들은 짧은 구절(막 7:31)로 표현된 이 여행이 적어도 8개월은 걸렸을 것이라 한다. (123.1)
 예수님께서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할 때에 그 지역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분을 기다렸다는 듯이 대환영을 하며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데가볼리는 가다라의 사귀 들린 자가 고침을 받았던 곳이고 귀신이 돼지떼에 들어가 이천 마리를 바다속에 몰살시켰던 곳이다. 그 때에 그곳 사람들은 자기들도 그와 같은 화를 당할까바 예수님에게 그 지역에서 떠나 달라고 강권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 떠나신후 곧 후회하고 그곳에 다시 오셨으면 하는 바람이 점진적으로 일어났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들 지역에 다시 오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무리들이 물밀듯이 몰려 든 것이다. 절뚝발이, 불구자, 소경, 벙어리, 기타 온갖 병든 자들이 치유받으러 그곳에 왔다. 예수님께서 일일이 안수하며 치유의 능력을 나타냈을 때에 기적이 일어나 소경이 보고, 벙어리가 말하며, 절뚝발이가 완치됐고, 온갖 불구자가 온전하게 되었다. 이를 목격(目擊)한 사람들은 기이히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마 15:29-31). 주님께서는 육신적으로 매우 피곤하셨지만 계속 가르치며 치유의 봉사를 행하셨다. (123.2)
 그 때에 여러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 자를 데리고 와서 주님 앞에 세웠다. (124.1)
 “주님, 이 불쌍한 사람을 안수하여 주십시오.” (124.2)
 어눌한 자란, 잘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더듬는 언어 장애자를 말한다. 그는 “주님”“즈즈즈즈- 주주주주우-우님”하며 심하게 더듬어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으며 자기의 입장도 잘 표현하지 못했다. 사실 그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치유를 부탁하는 말도 알아듣지 못했다. 청력이 없었고 음향에 아무런 반응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아니하시고 일단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 한적한 곳으로 가셨다. 그에게 동정과 부드러움을 보이시므로 개인적인 사랑의 배려를 하신 것이다. (124.3)
 예수님은 먼저 치유를 위해 당신의 손가락을 귀멀고 어눌한 자의 양 귀에 넣었다 뺐다. 그리고 손에 침을 뱉어 어눌한 자의 혀에 대시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셨다. 진리를 마음대로 듣지 못하고 하나님을 마음대로 찬양하지 못하는 그 불쌍한 자를 보시고 탄식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종종 기도하실 때에 얼굴을 하늘로 향하셨다.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실 때에 하늘을 향하여 얼굴을 들고 축사하셨고(막 6:41), 나사로를 부활시킬 때도 그러하셨다(요 11:41). 또한 제자들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드릴 때도 얼굴을 위로 향하고 기도하셨다(요 17:1). (124.4)
 기도를 마치신 주님께서는 귀먹고 어눌한 자에게 명령하셨다. (124.5)
 “에바다.” (124.6)
 이는 열리라는 뜻의 아람어이다. 귀와 혀에게 열리라고 명령을 내리신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사람의 귀와 혀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게 아닌가! 마치 비행기를 타고 상공을 오를 때에 귀가 멍하다가 뻥 뚫리는 것같이 그 청각장애자의 귀도 뻥하고 열려 분명히 듣게 됐으며, 혀의 맺힌 것이 풀려 더듬는 것이 없어지면서 유창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실로 놀라운 즉각적인 기적이었다. 그리하여 분명한 말로 주님께 사례하였다. (125.1)
 “오, 주님 감사합니다.” (125.2)
 기적을 확인한 사람들이 놀라 소리쳤다. (125.3)
 “그가 다 잘 하였도다. 귀머거리도 듣게 하고 벙어리도 말하게 한다.” (125.4)
 “이를 아무에게라도 이르지 말라” (125.5)
 그러나 놀라운 소식이라 잠적해 버리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저희에게 경계했으나 경계할수록 저희가 더욱 널리 전파하였기 때문이다. (125.6)
 오늘의 치병 사건도 중보적 성격을 띠고 있다. 본인의 믿음이나 간구로 치유의 은총을 받은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요청으로 된 것이다. 우리 주위에 불쌍한 환자가 있다면 그들을 주님께 데려가는 중보의 간구를 드릴 것이다. 오늘날도 주님은 본인의 믿음뿐만 아니라 간구하는 자의 자비한 마음과 믿음을 보시고 치유의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이다. (125.7)
 그러면 귀먹고 어눌한 자가 어떤 방법으로 고침을 받았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사실 그가 고침을 받은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자신의 믿음으로 예수님앞에 나온 것이 아니라 누가 가자고 할 때 따라온 것이다. 오늘날도 누구의 인도로 나오든 예수님 앞에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계기가 돼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125.8)
 이 환자를 예수님께 데려오는데 주동적 역할을 한 자는 아마 오래 전에 이곳에서 귀신들려 짐승처럼 울부짖다 고침을 받았던 그 광인(狂人)이었을 것이다. 자기가 체험한 예수를 전했고 예수님께 가보자 하며 데려 왔을 것이다. 오늘날도 믿음으로 사람을 주님 앞에 데려 오면 데려온 자의 믿음을 보시고 주님께서 역사하실 것이다. (125.9)
 우리는 오늘의 기적 사건에서 몇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 예수님께서 귀먹고 어눌한 자를 고치실 때 공개적으로 하지 않고 한쪽으로 데려가서 고치셨다. 불쌍한 자의 손을 잡고 한적한 곳으로 데려가시는 주님의 모습에서 그분의 사랑과 친절을 느낄 수 있다. 우리도 불쌍한 사람을 도울 때 떠벌리지 말고 주님처럼 보이지 않는 데서 선을 행하도록 해야겠다. (126.1)
 둘째, 귀먹어 잘 듣지 못하고 어눌하여 말을 잘 못하는 이 불쌍한 사람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들을 수 있는 청각(聽覺)을 주셨음을 감사해야 하며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 능력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한다. (1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