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마태복음 제 III 부 왕의 고난, 죽음, 그리고 부활 (16:21-28:20) 9. 십자가의 생명: 왕국 시민권의 자격 요건 (18:1-20:34)
 16장에서, 우리는 자신의 다가오는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수의 첫 번째 명백한 통보와 그 통보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을 발견하였다. 17장은 제자들의 준비되지 못함에 대한 두 가지 전조(前兆)와 아울러, 궁극적 승리에 대한 보증과 미리 맛봄으로서의 변형산 사건을 크게 다루었다. (225.1)
 저 준비되지 못함은 18:1-20:34을 위한 무대를 놓는데, 여기서 예수께서는 겸손함과 용서(18:1-35), 이혼(19:1-12), 자만의 불충분성(19:16-27), 은혜의 “불공정한” 성격(19:28-20:16),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그 왕국의 성격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20:17-34)이라는 사실에 관한 중요한 가르침을 그의 제자들에게 풍성하게 마련해 주신다. 18:1-20:34의 여러 가르침들은 왕국의 시민이 되는 자격들 혹은 바꾸어 말해서 십자가의 생애를 사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225.2)
 복음서 이야기에서 한 의미심장한 변화가 19:1에서 일어나다. 이곳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갈릴리를 떠나 유대로 가신다는 말씀을 읽는다. 저 여행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여행이 될 것이다. 그처럼 예수께서 18:1-20:34(이 장에서 다룸)과 21:1-25:46(다음의 두 장에서 다룸)에서 그의 제자들에게 남기기를 원하시는 가르침들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225.3)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애에서 가장 큰 상처를 받게 될 사건을 위해 그들이 아직 준비되지 못했음을 아신다. 그러므로 그는 저 사건과, 그 사건에 곧 뒤이어 그들이 담당해야 할 책임들, 이 두 가지 모두를 위해 그들을 준비시키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실 필요가 있다. 결국, 몇 주라는 짧은 기간 내에 제자들은 그의 교회의 지도자들이 될 것이다. (225.4)
 ■ 말씀에 들어감
 18:1-19:15까지 적어도 두 번을 읽으라. 그 다음에는 그대의 마태복음 노트에 다음의 문제들과 질문들을 풀어보려고 노력해 보라. (226.1)
 1. 18장의 개요를 적으라. 그런 다음, 짧은 문단들로 각 부분의 주요한 가르침들을 요약하라. 그 장을 하나로 묶고 있는 주제들을 논하라. (226.2)
 2. 18:21에서 베드로의 질문과 18:23에서 시작하는 그 비유의 관계를 설명하라. 우리는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는가? 그 점에 관하여 여러 성경 번역판들을 비교하라. 18장에 따르면, “우리가 얼마나 용서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우리의 답변이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내는가? 성구사전을 사용하여 마태복음에서 용서에 관한 예수의 다른 권면을 찾아보라. 그 교훈이 우리가 지금 다루고 있는 구절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226.3)
 3. 19:1-12에 주어진 이혼에 관한 그의 권면에서 예수께서 제시하시는 요점들을 요약하라. 그대의 관주들을 사용하여 예수께서 19:3의 쟁점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계시는 곳을 마태복음의 또 다른 곳에서 찾아 읽으라. 19:4, 5에 언급된 말씀들은 구약 어느 곳에서 인용한 말들인가? 5절의 마지막 말씀들(“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은 그 논증에 대해서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가? 일부다처에 관한 성경의 다소 혼란시키는 듯한 가르침에 대해서 이 구절은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가? (226.4)
 ■ 말씀을 탐구함
 18장에서 우리는 첫째 복음서에 실린 그리스도의 가르침 강연 중 네 번째 것에 이르게 되었다. 이 강연은 왕국에서의 개인적 관계를 취급하며, 그리스도인 윤리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혀 주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한다. (227.1)
 10장(제자도에 관한 설교)이 그 왕국의 외부지향적인(선교적인) 방향 설정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반하여, 18장은 내적인 관계들—교회들을 성공이나 실패로 만들어 버리는 교인들 사이의 관계들—에 할애된 가르침들을 수집한 것이다. 이혼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19:1-12)이 이 장에 포함된 이유는 그것 또한 그 왕국에서의 내적인 윤리적 관계들을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18:1-19:12까지 이어지는 부분 전체는 십자가에 비추어 본 그리스도인 생활로 볼 수 있다. (227.2)
 십자가에 비추어 본 위대함
 마태복음 18장은 어린이들과 작은 자들을 다룸으로 시작된다. 1절에서 5절은 위대함에, 6-9절은 실족케 하는 것에, 그리고 10-14절은 잃은 양에 초점을 맞춘다. 열네 절은 어린이들과 소자들을 뜻하는 두 헬라어로 인해 한 부분으로 결속되어 있으며, 실제 어린이들로부터 6절“중요치 않은” 신자들(“소자들”)로 교묘하게 논의를 이동시키고 있다. (227.3)
 그 구절은 제자들을 대단히 당황하게 만드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마가는 18:1의 질문 이전에 제자들이 누가 가장 크냐에 관하여 노상에서 “다투었다”고 우리에게 말해준다(막 9:33, 34). 아마도 그 논쟁을 촉발시킨 것은 16:17에서 예수께서 베드로를 축복하신 것이었지만, 더 깊은 차원에서, 그 문제는 죄 된 인간의 마음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위대하게 되겠다는 이기적 욕망은 이 세상의 엄청난 성취들과 그 중대한 죄들에게 연료를 공급한다. 군계일학(群鷄一鶴)이 되고, 우월하게 되고, 사람들이 쳐다보고 “나”를 존경하도록 만들려는 갈망은 하나님께 대한 사람들의 큰 반역의 한 부분이다. 그것은 또한 하늘에서 루시퍼(Lucifer)의 죄의 근원이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사 14:13, 14). 우리는 마태복음 16:24을 다루면서 우리 자신의 신이 되려는 갈망이 죄의 토대를 형성하고 있음을 보았다. 우리는 또한 그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십자가—즉, 우리의 자아의 죽음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중생의 경험이라는 것을 주목한 바 있다. (227.4)
 2-5절에서 예수께서는 왕국에서 가장 큰 자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일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우리는 어린이들이 옛적에는 별로 중요치 않았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는 세상의 지혜를 뒤엎으시고 참된 위대함은 성취들과 세상적인 약아빠짐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겸비와 투명성에서 발견된다고 제시하신다. 바로 이런 겸비함이 그 왕국에 들어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자격 요건이다. (228.1)
 불행히도, 예수의 교훈들 중 다수가 그러했듯이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이 교훈이 제자들의 마음속에 깊이 박히지 못했다. 마태복음 20:20-28은 요한과 야고보가 그들의 어머님과 더불어 왕국에서 제일 좋은 자리들을 차지하기 위해 여전히 공작을 벌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누가는 제자들이 십자가로 가는 노상에서 그들 중 누가 가장 크냐고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고 우리에게 말해준다(눅 22:24). 죄의 뿌리의 깊이와 가장 중요한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는 것에 대한 인간의 혐오는 이와 같은 것이다. (228.2)
 그 구절의 논조와 주제는 6절에서 바뀐다. 그 논조는 약속에서 경고로 이동하는 반면에 주제는 겸비로부터 그리스도인 생애를 살아가는 과정에서 “별 볼일 없는” 신자들을 실족케 만드는 일의 심각성으로 이동한다. 8절9절에서 그 경고 논조는 남아 있지만, 그것은 이제는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228.3)
 6-9절의 전반적인 기별은 연약한 그리스도인을 타락하도록 인도하느니보다는 차라리 연자 맷돌을 자신의 목에 달고 물에 빠져 죽은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손과 발이 그를 죄로 인도하도록 허락하느니보다는 차라리 그것들을 잘라 버리는 것이 더 낫다. (2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