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사무엘 상∙하 제 Ⅳ 부 다윗: 정상까지 올랐다가 내려옴 (삼하 2-12) 제 8 장 이스라엘에서 세력을 잡음 (삼하 2-6)
 보충 설명: 오벳에돔은 누구였는가?
 법궤의 이야기의 흥미있는 부분은 오벳에돔의 정체이다. 그는 가드 사람이었다-어느 가드인가?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다윗이 얼마간 지냈던 블레셋의 도시이다. 잇대의 수하에 있던 600명의 가드 사람들은 다윗의 가장 충성된 지지자였다(삼하 15:18-22). 다윗의 영향은, 아마도 법궤가 블레셋에 머물렀던 것과 합하여, 여러 블레셋 사람들을 개종시켜 여호와를 예배하게 했던 것 같다. (229.3)
 가드 사람은 레위 지파에게 배당된 이스라엘의 두 도시 중 하나의 거민일 수도 있다: 단 지역의 가드 림몬(수 19:45)이나 므낫세의 가드 림몬(수 21:25). 오벳에돔이라는 이름은 대상 26:4-8의 레위 지파의 고핫 족속 가운데에서도 나온다. (229.4)
 성경은 오벳에돔이 나온 가드가 어느 곳인지를 밝히지 않음으로, 이 질문은 다윗이 블레셋의 개심자와 이스라엘의 레위인들 중 어느 사람에게 법궤를 맡길 가능성이 더 큰가에 초점이 모아진다. 다윗이 그 법궤와 거리를 두고 싶은 생각에 급급해서 가장 가까운데 있는 집에 그 사람의 국적과 관계없이 법궤를 넘겨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쉽다! 정통적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보면, 블레셋 가드인이었다는 것은 더 무모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윗이 그곳과 연결되기 때문에 주석가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해석이다. 게다가, 예루살렘으로 법궤를 가져오려던 다윗의 첫 시도는 정통적 방법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그러나 다른 길을 택하여, 어떤 이들은 다윗의 기분을 감안할 때에 더 큰 화가 자기 백성에게 임하기보다는 원수에게 임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블레셋 사람의 집을 선호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230.1)
 요컨대, 양 주장을 위하여 좋은 논거를 제시할 수 있다. 성경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가지가 분명하다—이스라엘인이었든지, 블레셋 사람이었든지, 오벳에돔과 그의 집안은 법궤가 그들의 집에 머무른 복스러운 석 달의 기억을 오랫동안 간직했을 것이다. (230.2)
 사울의 딸(6:20-23)
 웃사의 사건은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데 있어서 일어난 불편한 일들 중 유일한 것이 아니었다. 저자는 법궤가 마침내 예루살렘으로 들어올 때의 다윗의 행동에 대한 미갈의 반응을 기록함으로 6장을 끝맺는다. 그녀가 창문으로 내다보고 있었는데, 한 마디로 그녀는 속이 느글거렸다. (230.3)
 그러나 미갈이 그 심중에 다윗을 “업신여기니라”(16절)는 언급을 한 후에, 저자는 다윗을 면죄하려는 듯이 경축의 장면으로 돌아간다. 6:17-19의 열성은 전염성이다: 다윗은 그가 준비한 장막 속으로 법궤를 가져왔다. 그는 제사를 드렸고, 백성들을 축복했으며, 군중 각 사람에게 선물을 주었다: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 한 덩이씩”(19절). 대단한 잔치였다! (230.4)
 그리고 다윗은 자기 집안 식구들을 축복하러 들어갔는데 웬걸 성난 미갈과 맞닥뜨려졌다: “이스라엘의 왕이 오늘날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날 그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20절). (231.1)
 다윗은 가시 돋힌 말로 응대하였다: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21절).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완전 나체로 춤을 추지 않았다는 점에 동의한다. 6:14에 의하면, 그는 “베 에봇”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절은 그가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다고 말하며, 16절은 그가 “뛰놀며 춤추는 것”을 언급한다. 아마도 면 에봇은 다윗의 몸을 다 가리지 못하였을 것이며, 가끔은 다윗이 의도한 것보다 더 많이, 미갈이 견딜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노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이 특별한 경우가 그의 행동을 정당화한다고 생각하였다. (231.2)
 미갈의 반응을 기록하는 대신에, 저자는 다윗을 변호한 것에 이어서 하나의 간단한 문장으로 끝을 맺었다: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으니라”(23절). (231.3)
 불쌍한 미갈. 정치가 아니라 사랑 때문에 그녀는 다윗에게 끌렸었다. 성경 자체가 그렇게 말한다(삼상 18:20). 그녀의 아버지 사울은 그녀의 사랑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였다. 어쩌면 그가 성공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성경은 미갈에 대한 다윗의 사랑을 기록하지 않고, 다만 그가 “왕의 사위 되는 것을 좋게 여기므로”(26절)라고 기록하기 때문이다. 다윗 신부의 몸값으로 요구된 블레셋 사람의 양피 100을 두 배로 불려서 드린 정열은 무엇을 뜻하는가? 정치에 대한 정열이었는가? 아니면, 참 사랑의 정열이었는가? 성경은 침묵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그의 딸 미갈도 그를 사랑하”는(삼상 18:28) 것을 알았다. 그녀는 참으로 사랑했다.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를 속이고 그의 면전에서 서슴지 않고 거짓말을 하면서라도 다윗을 보호하려고 했다(삼상 19:11-17). (231.4)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그녀를 가지고 정치놀음을 하지 않을 수 없어서, 다윗이 도피하는 동안에 그녀를 다른 남자 라이스의 아들 발디엘에게 시집보냈다(삼상 25:44). 그녀가 발디엘을 사랑했는가? 성경은 침묵한다. 그러나 성경은 발디엘이 그녀를 사랑했다고 말한다—사실이 꼭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다윗과 아브넬과 이스보셋이 미갈을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에 관하여 성경은 말한다: “이스보셋이 보내어 그 남편 라이스의 아들 발디엘에게서 취하매 그 남편이 저와 함께 오되 울며 발후림까지 따라 왔더니 아브넬이 저에게 돌아가라 하매 돌아가니라”(삼하 3:15, 16). (232.1)
 다윗이 미갈의 첫 사랑이었을 때, 그녀는 그의 첫 아내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녀를 일곱 번째 아내로 만들기 위해서 다윗은 그녀를 정말 위하는 남편에게서 빼앗아 왔다(비교 2-5절). 다윗의 삶은 넘쳤고 신났다—많은 전쟁과 많은 여인들. 그는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출 수 있었다(14절). 미갈이 창문에 서서 그것을 지켜보았다. 그녀가 “심중에 저를 업신여”긴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16절). 다윗이 그의 가족을 축복하기 위하여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 그녀가 멸시에 찬 말로 맞은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20절). 그리고 다윗이 가시 돋힌 말을 한 것도 놀랄 일이 아니었다(21, 22절). 가련한 미갈이었다.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으니라”(23절). (232.2)
 정치가라면, 미갈이 자식이 없었다는 것은 그녀에게 사울 집안의 이름으로 다윗의 보좌를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후손이 결코 없을 것을 뜻한다고 이해할 것이다. 다윗의 집안은 점점 더 강해져 간다. 사울의 집은 거의 사라졌다. (232.3)
 요약: 정상에 우뚝 선 다윗
 사무엘하 2-6장에서 한 걸음씩 다윗은 정상을 향하여 오른다. 첫째로, 유배된 무법자가 시글락에서 헤브론으로 돌아와 유다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는다. 그리고 기나긴 사울의 집안과의 줄다리기가 계속된다: 전장에서의 승리; 사울의 딸 미갈의 돌아옴; 아브넬과 이스보셋의 처참한 죽음. 마침내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는다. 새로운 수도, 블레셋에 대한 두 번의 승리, 예루살렘으로 법궤가 돌아와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껏 춤을 춤-모든 사람이 함께, 미갈만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이. (232.4)
 사무엘하 7장에서 우리는 선지자 나단에 의하여 전해지는 장황한 약속과 다윗의 감사의 기도를 듣게 된다. 그러나 미갈과 다윗 사이의 험한 말이 오간 것은 예루살렘에서 모든 일이 다 잘 되어 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비록 그 도성은 위대한 영광의 언저리에 있었지만. 그것은 현재 영광이 사라져버린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한다. (233.1)
 ■ 말씀을 적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