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사무엘 상∙하 제 Ⅳ 부 다윗: 정상까지 올랐다가 내려옴 (삼하 2-12) 제 8 장 이스라엘에서 세력을 잡음 (삼하 2-6)
 그러나 다윗이 점령했을 때 그 도시는 어떠했는가? 그리고 이스라엘이 개종자를 여호와 섬기는 일에 수용했는지에 관한 얼마나 많은 성서적 증거가 있는가? 법전은 매우 까다로웠다. 모압과 암몬은 “십 대뿐 아니라”(신 23:3-6) 공동체에 들어올 수 없게 하였다.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진멸하라는 명령이 있었다(비교 신 20:17; 7:1, 2) 그러나 역사적 대사와 어떤 족보의 기록은 훨씬 개방적이다. (224.1)
 모압 여인 룻은 가장 잘 알려진 예외이다. 그녀의 시어머니 나오미의 종교로의 개종에 대한 생생한 진술은 너무도 분명하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 1:16). 그녀는 왕의 족보에 들었다(룻 4:16-22). 그리고 마태가 기록한 예수의 족보에도 올랐다(마 1:5). 다른 예외는 르호보암의 어머니 암몬 여인 나아마(왕상 14:31)로서 솔로몬의 700명의 아내 중 유일하게 이름이 거론된 경우이다. 여리고의 기생 라합(수 6:25)은 또 다른 유명한 예외이며, 마태복음의 예수의 족보에 들어 있다(마 1:5). (224.2)
 예루살렘과 그 유산에 관하여 에스겔은 매우 퉁명스럽다: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비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미는 헷 사람이라”(겔 16:3). 붓질 한 번에 에스겔은 신명기 20:17의 표적 민족들 중의 첫 세 이름을 다 건드렸다: 가나안, 아모리, 헷! 이들은 예루살렘의 백성이었다. 그리고 다윗이 그 원주민을 진멸했다는 기록이 없다. 분명히 많은 이들이 여호와를 경배하게 되었을 것이다. (224.3)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나서 그의 원수들을 노략하러 나가기 전에 저자는 다윗의 예루살렘에서의 다수의 활동을 엮어서 제시한다. 첫째로, 다윗이 그 성에서 자리를 잡고 그 성을 건축한 것을 말한 후에 저자는 요약한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5:10). 둘째로, 두로와 히람의 도움으로 다윗의 왕궁을 건축하는 것을 간단히 묘사하고, 다른 요약적 진술로 결론을 낸다: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을 삼으신 것과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아니라”(12절). 마지막으로, 저자는 “다윗이 헤브론에서 올라온 후에 예루살렘에서 처첩들을 더 취하였으므로 아들과 딸들이 다윗에게서 나니”라고 말한다(13절). 이전 헤브론의 명단(3:2-5)과는 대조적으로 어머니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채 자녀들의 이름이 열거되었다. 이 둘째 목록에서는 오직 솔로몬만이 왕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었다. (224.4)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언약궤를 가져와 자리잡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 일을 하기 전에, 성경은 두 차례에 걸친 블레셋의 패전을 기록한다. 마침내 그들이 다윗이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잡으려고 나온다. 성경은 다윗이 여호와와 직접적인 교통을 한 것으로 전하며, 블레셋을 어떻게 공격해야 할 것인지 구체적인 지시를 받았다고 전한다(5:19, 23, 24). (225.1)
 흥미있는 것은, 첫째 전투 후에, 블레셋 사람들이 “사람들이 그 우상들을 버렸으므로 다윗과 그 종자들이 치”(21절)웠던 것이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두 번 격파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언약궤를 가져갔듯이(삼상 4:1-11), 이스라엘도 그대로 갚아서, 블레셋을 두 번 파하고 블레셋의 우상을 가져왔다. 다윗과 그의 부하 600명이 블레셋 왕 아기스의 충성된 신민으로 블레셋 가운데 살았듯이, 가드 사람 잇대와 가드의 블레셋 사람 600명이 이스라엘 왕 다윗의 충성된 신민으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산다(삼하 15:18). (225.2)
 한가지 마지막 상징은 아마도 의도적인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언약궤를 잃었던 전투에서 30,000의 전사자가 발생했다는 것을 주목하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삼상 4:10). 마치 그것을 속죄하는 듯,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의 존귀한 처소로 들여오기 시작했을 때, 그는 30,000명의 선택된 인원을 동원하였다(6:1). 분명히 이 날은 기회의 날이었고, 다윗과 그의 백성을 위한 멋진 날이었다. (225.3)
 죽음을 불러오고 복을 불러오는 언약궤(6:1-19)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들여오는 일은 다윗이 권좌에 오르는 마지막 단계였고, 사무엘하 7장의 나단의 언약의 말씀과 그것에 대한 다윗의 반응의 기도를 들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으로의 여행에서 불길한 일이 생겼는데 그것은 웃사의 사건이다. 웃사는 손을 내밀어 법궤를 만졌을 때에 죽었다. 성경은 그의 죽음에 하나님이 직접 개입한 것으로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곳에서 치시니”(6:7). 그 기쁨의 행진이 경악 속에 멈추어졌다. 다윗은 그 일을 3개월간 포기하였다(11절). (226.1)
 이 사건은 비록 “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심각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경건한 사람들이 남용하기 쉬운 내용은 “소가 비틀거렸기 때문이라”이다. 이 구실은 웃사가 도우려고 했다는 인상을 남기지만, 신의 무서운 손에 의해 맞고 쓰러졌다고 하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마음의 동기보다는 외적 순종이 하나님께는 더 중요하다고 하는 식으로 풀이한다. (226.2)
 그 반대의 사상 즉 하나님은 마음의 동기를 외부적 행동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사상을 구약에서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놀라운 사건은 아람의 문둥병자 나아만의 이야기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유일성을 방금 고백하였다: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왕하 5:15). 그러나 나아만은 아람에서의 그의 공적 의무가 이방신 림몬의 당에 들어가 거기서 허리를 굽혀야 할 것을 요구하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문제를 엘리사에게 설명한 후 말하였다: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이에 대하여 엘리사는 대답하였다: “너는 평안히 가라”(18, 19절). (226.3)
 법궤 자체에 관하여도, 여호와께서는 죄인들을 다루실 때 놀라우리만큼 자제하셨다. 분명히 악한 홉니와 비느하스가 거룩한 법궤를 취급했을 때, 그들은 죽어 마땅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해를 당하지 아니 하였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을 죽였다(삼상 4:1-11). (227.1)
 웃사의 경우만 하더라도, 성경은 웃사가 죽어야 할 심오한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아마도, 사무엘하 6:7의 히브리어의 난해함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아무 이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새국제역」은 6:7의 이 난해한 구절을 “웃사의 잘못함”이라고 번역했고, 「새개정표준역」은 그 번역을 역대상 13:10의 평행절의 더 직선적인 번역에 맞추었는데, 「새국제역」은 그 평행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웃사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만일 역대기가 히브리어 본문을 바로 보존하였더라면, 그 이야기는 웃사의 죄된 혹은 패역한 동기에 관하여는 아무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단지 법궤에 손을 대었을 뿐이다. (227.2)
 웃사의 동기가 참으로 순결하였고 그의 유일한 죄는 금지된 성물을 만지는 것뿐이었다는 것이 가능한 말인가? 그런 해석을 배제할 수 없다. 그와 연결하여, 나는 웃사의 죽음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먼저 공동체를 위한 것이었다. 웃사의 영원한 운명과는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오기 전의 최근의 역사를 보자: 악한 홉니와 비느하스에 의하여 취급되었고, 그것은 이스라엘을 블레셋의 손에서 구원하지 못한 볼 만한 실패작이 되었다(삼상 4:1-11). 그것은 블레셋 사람 중에서 7개월을 지냈다. 아무리 조심하고 아무리 양심적으로 해도, 그것 주위에 있으면 위험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삼상 5). (227.3)
 그러나 법궤가 블레셋 중에서는 살아 있고, 이스라엘에서는 죽어 있으라는 법이 있는가? 분명히, 블레셋 사람들이 그것을 돌려주었을 때, 법궤는 이스라엘에서 교만의 죄에 대하여 죽음을 불러왔다(삼상 6:19, 20). 그리고 법궤는 기럇여야림으로 가서 백성들이 영적 필요를 깨닫고 사무엘의 지도하에 쇄신에 참여할 때까지(2-17절) 거기서 “20년 동안을 오래” 있었다(삼상 7:2). 그러나 그 쇄신 속에서도, 법궤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그것은 기럇여아림(삼하 6:2에 의하면 유다의 바알라라고 불리었다)에 머물러 있었고,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궤를 가져오려고 간 곳이 바로 그 장소였다. (227.4)
 사무엘상 7:1사무엘하 6:1 사이에, 즉 법궤가 기럇여야림에 도착한 날부터 다윗이 그것을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려고 시도한 날까지, 법궤가 언급된 유일한 곳은 사무엘상 14:18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진영에서 제사장 아히야와 함께 있었다는 간단한 설명이다. 그러나 「70인역」에서는 이 언급이 없는데, 왜냐하면 법궤가 에봇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올 때에(비정통적인 방법으로 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가시지 않은 많은 질문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예배 속에서 법궤가 중요한가? 여호와께서 아직도 그의 거룩한 법궤와 함께 하시는가? 법궤와 이스라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볼 때, 웃사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참으로 살아 계시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것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분이심을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228.1)
 그러나 여호와께서 부정적으로 이스라엘의 관심을 끄셨다면, 사람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일으키는 능력을 보이셨다면, 이제는 긍정적인 것으로 돌아서서, 용기와 희망을 주는 그분의 선하심을 나타내셨다. 다윗은 분노와 두려움을 나타내면서, 법궤를 가드 사람 오벳에돔의 집에 맡겼다. 그리고 푸념하였다: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 오리요”(9절). 법궤가 도착하였을 때의 오벳에돔의 반응을 알 길이 없다. 웃사에게 일어난 일을 알고서 그가 크게 기뻐하지 않았을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왕이 “선물”을 가져 왔는데, 이 가여운 가드 사람이 어찌 하겠는가? (228.2)
 그러나 여호와의 선하심이 임했다. 그가 오벳에돔의 집안과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11절). 폴친은 신명기부터 열왕기하의 끝까지 이르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가드 사람 오벳에돔의 집은 문자적으로, 가족적으로, 종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여호와께서 축복하셨다고 하는 유일한 집이다”(Polzin, David, 65)라고 해석한다. 우리는 그 “축복”이 무엇인지 모른다-아는 것은 그 축복이 너무 눈에 띄고 풍성해서 다윗이 그 소식을 듣고는 다시 시도해 보고자 했다는 것이다(12절). 이번에는 규칙을 따랐다. 법궤는 무사히 예루살렘으로 왔고, 바벨론 유수까지 중요한 물건으로 견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228.3)
 웃사와 법궤의 이야기는 섬뜩한 것이다. 성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시대에,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 것이 실제적이며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구성에서 활동하신다는 것을 불타는 가시덤불과 시내 산의 연기와 더불어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동시에, 웃사에게 내렸던 심판 후에 오벳에돔에게 축복이 내렸듯이 이 이야기는 상하게 하신 하나님이 치료도 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229.1)
 그러나 웃사의 이야기가 중요한 만큼, 놀라운 하나님의 개입은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이상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균형을 위하여, 성경은 법궤에 임하셨던 하나님은 마음의 종교를 외적인 종교와 바꾸지 않으실 것을 분명히 하였다. 선지자 미가는 말한다: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힘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새개정표준역」). (2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