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사무엘 상∙하 제 Ⅳ 부 다윗: 정상까지 올랐다가 내려옴 (삼하 2-12) 제 8 장 이스라엘에서 세력을 잡음 (삼하 2-6)
 요압의 보복 살인은 다윗을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하였다. 그는 아브넬의 죽음으로 인해 큰 손해나 큰 이익을 보게 되어 있었다. 만일 사울의 지지자들이 아브넬의 죽음 배후에 다윗이 있었다고 판단하면, 합치는 문제는 끝장이다. 그러나 아브넬도 완강하고 고집이 셀 수도 있었다. 다윗은 아브넬이 사라지면 왕국을 세우는 일이 훨씬 간단해 질 것이라고 생각하였는가? (219.2)
 다윗은 아브넬의 죽음을 항변했는데, 너무 지나친 감이 있다. 첫째로, 그는 자기와 자기의 나라는 이 일에 무죄하다고 선언하면서, 아브넬의 피가 “요압의 머리와 그 아비의 온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랐다(28, 29절). 그리고 그는 요압에게 지속적인 저주를 선언하였다: “요압의 집에서 백탁병자(白濁病者)나 문둥병자나 지팡이를 의지하는 자나 칼에 죽는 자나 양식이 결핍한 자가 끊어지지 아니할지로다”(29절). (219.3)
 다윗은 모든 사람이, 요압을 포함하여,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띠고 아브넬 앞에서 애통하라”고 명령하였다(31절). 다윗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울면서, 아브넬을 위한 애가를 부르면서, 해가 질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고 서약하는 모습을 잘 볼 수 있었다. (220.1)
 그것이 통했다. 사무엘하의 저자는 “이날에야 온 백성과 온 이스라엘이 넬의 아들 아브넬을 죽인 것이 왕의 한 바가 아닌 줄을 아니라”(37절)고 말한다. (220.2)
 그러나 다윗에 관한 한, 이 이야기의 두 가지가 마음에 걸린다. 첫째로, 만일 요압이 아브넬을 죽인 것이 잘못이었다면, 요압은 죽어야 마땅했다. 훗날 다윗은 그의 아들 계승자 솔로몬에게 아브넬을 암살한 요압에게 복수하라고 했다: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왕상 2:6). 열왕기상에서 다윗은 전쟁에서 아브넬이 아사헬을 죽인 것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선언하였다. 그것은 “평화시에 전쟁 때처럼” 피를 흘린 요압을 살인자로 만드는 것이었다. 솔로몬이 다윗의 명령을 수행했을 때에, 그는 요압의 다른 죄목을 들었다. 즉, 그가 다윗이 모르는 중에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왕상 2:32; 비교 삼하 3:26). (220.3)
 그것은 난관이었다. 다윗이 너무 약해져서 자기도 모르는 중에 혹은 동의한 중에 자기의 부하들이 그렇게 난폭한 짓을 하는 것을 막지 못하였다는 말인가? 아니면, 다윗은 다시 이중성을 나타내는가? 겉으로는 슬픔을, 그러나 속으로는 사울의 집안이 사라지니 기뻐하는가?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 사울을 죽였다고 주장하던 아말렉 사람을 가차없이 처형하였다(1:15, 16). 그리고 곧 이스보셋을 죽인 두 사람들을 처형할 것이다. 그들이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건드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의인을 그 집 침상 위에서 죽인” 때문이었다(4:11). 그것은 아브넬을 위한 다윗의 애가와 매우 흡사하다: “네 손이 결박되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착고에 채이지 아니하였거늘”(3:34). 그러나 다윗은 요압을 내버려두었다. 그는 심지어 군대장관직을 계속하게 하였다. (220.4)
 이 경우에 있어서의 다윗의 불규칙한 공정성은 아브넬의 암살 이야기에 붙인 저자의 결론을 더욱 의미있게 한다. 그는 다윗이 자기의 말로 자신을 정죄하게 한다: “내가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 되었으나 오늘날 약하여서 스루야의 아들인 이 사람들을 제어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 대로 갚으실지로다”(39절). (221.1)
 참으로 약해빠졌다. 이상적인 왕을 찬양하는 고전적 왕의 시인 시편 72편의 시작은 왕의 첫째 의무를 분명히 진술하고 있다: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그러나 다윗은 스루야의 아들들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정의를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하였다. (221.2)
 그리고 그것은 이 모든 사건의 둘째 문제를 끌어낸다. 즉 백성들이 왕이 하는 일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저자는 다윗이 아브넬에 대한 슬픔을 표현하는 것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온 백성이 보고 기뻐하며, 왕이 무슨 일을 하든지 무리가 다 기뻐하”였다(3:36). 무슨 일을 하든지? 백성들아, 다시 생각하라. 어쩌면 이것이 이스라엘과 그들의 왕이 유배를 당한 이유이며, 성전이 폐허가 된 까닭이리라. (221.3)
 사울의 집안에서부터 온 마지막 위협(4:1-5:5)
 아브넬이 사라진 후, 이스보셋의 암살은 내리막길이었다. 사무엘하의 저자는 이 이야기를 섬뜩한 말로 시작한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아브넬의 헤브론에서 죽었다 함을 듣고 손맥이 풀렸고 온 이스라엘이 놀라니라”(1절). 이런 괴로운 환경 속에서 이스보셋의 신복, 즉 “군장”(2절)들이 사울의 아들을 이런 비참한 지경에서 나오게 하는 임무를 자청하였다. (221.4)
 그러나 이 두 사람 바아나와 레갑이 이스보셋의 머리를 가지고 헤브론에 왔을 때에, 다윗은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 주 되신 왕의 원수를 사울과 그의 자손에게 갚으셨나이다”(8절)라는 말을 좋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윗은 그들의 처형을 명했다. 그들의 손발은 잘리고, 몸은 헤브론 연못가에 매달았다. 이스보셋의 머리는 아브넬의 묘에 안장되었다(12절). (221.5)
 사울의 집안의 다른 사람이 남아 있었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었다. 이스보셋의 암살의 장면을 설정하면서 사무엘하의 저자는 요나단의 절름발이 아들을 소개하고 그가 절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4절). 므비보셋도 사울의 보좌를 주장할 수 있는 후보자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듯하다. 압살롬의 반란 동안 사울의 종 시바는 다윗에게 므비보셋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고자질한다. “예루살렘에 있는데 저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비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라고 말했다(16:3). (222.1)
 그러나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정권을 잡자 므비보셋은 고뇌와 열정으로 시바의 주장을 부인한다(19:24-30). 그러나 저자가 아브넬에 대한 이스보셋의 비난을 인정하거나 부인하는 사심 없는 증거를 대지 않는 것처럼, 그는 므비보셋에 대한 시바의 비난을 인정하거나 부인하는 사심 없는 증거를 대지 않는다. 이 두 경우에 우리는 고발당하는 사람들의 항변만을 들을 수 있다. (222.2)
 제5장은 이스라엘의 온 지파가 헤브론 다윗에게로 나와서 그들의 왕이 되어 달라고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과 맹약(언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 부어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세웠다”(3절). 다윗은 이제 세 번째 기름부음을 받는다: 선지자 사무엘에 의하여(삼상 16:13), 유다의 장로들에 의하여(삼하 2:4); 마지막으로 온 이스라엘의 장로들에 의하여(5:3). (222.3)
 성경은 그중 아무 기름부음도 다윗을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만들기에 충분하였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울은 물론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였다. 그러나 사무엘하는 그의 아들 이스보셋을 위하여 그런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다윗이 이스보셋의 암살자들을 처형했을 때에, 그의 비난은 그들이 무죄한 자를 죽였다는 것이지, 그들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해롭게 했다는 것은 아니었다(4:11). 다윗을 뒤이은 왕들을 위하여, 적어도 시편에서는 그 명칭은 표준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역사서와 선지서에서는, 후기의 왕들을 위하여 그 명칭이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적인 기름 붓는 예식이 간간이 보고될 뿐이다. 구약의 이야기 속에서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의 경외감은 대부분 사울에 대한 다윗의 말 속에서 나타난다. (222.4)
 그러나 기름부음의 의례를 다 알아낼 수 없다 하더라도 다윗이 이제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요, 온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사울이 악한 목적을 추구할 때에도 사울을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극히 존중하는 다윗의 태도는 그가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된 후에 그 지위를 너무 높게 생각하게 할 유혹거리를 제공하지 않았는지를 질문해 보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다윗 자신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사울에게 존경을 표한 것은 잘한 일이었지만, 그도 자기의 행동과 상관없이 그런 동일한 존경을 기대하였는가? 이것은 권세를 받은 인간에게 있어서 성가신 문제다. 다시 말해서, 직위에 대한 존중은 쉽게 권세를 남용하는 방종이 되는 것이다. (223.1)
 다윗 성(5:6-25)
 다윗의 권세 사용에 관한 더 긴박한 문제들은 뒤에 나온다. 지금 그는 그의 나라를 세우려고 착수하였으며, 능력과 재주로 그 일을 이루었다. 중요한 움직임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그것을 수도로 삼는 일이었다. 이 일을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쉽게 해 내었다(5:6, 7). 그때까지, 예루살렘과 그곳의 여부스 족속은 “자유” 이방 도시로 다윗의 집안이나 사울의 집안과 연계 없이 지냈다. 그리하여 그 성은 양편에게 모두 매력적인 곳이었다. 그들을 하나로 묶기 좋게 할 공통분모가 될 후보지였다. (223.2)
 선지자 나단과 제사장 사독 등 다윗의 치세 하에서 지도층을 이루는 여러 인물들이 이 이야기 속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런 인물들의 갑작스런 등장은 여부스 원주민들을 여호와 숭배로 “교화”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알쏭달쏭한 문제를 제시한다. 성경의 기록에 보면, 예루살렘에서의 “참” 하나님 경배는 아브라함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창 14:19-24). 살렘(예루살렘의 다른 이름) 왕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리면서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천지의 주재”와 동일시하였다(창 14:22). 그러므로 예루살렘에서 여호와를 섬긴 선례가 있는 것이다. (2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