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많은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공예가는 자신의 솜씨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렇다면, 느부갓네살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해서 특별히 나쁠것이 무엇인가? (65.1)
 낱말들 중에는 여러 가지 뜻으로 정의가 되는 것들이 있다. 애완 동물 사육사에게는 “고양이”가 털이 고운 조그마한 동물을 뜻하겠지만, 건설업자에게는 고양이 상표의 트랙터를 뜻할 것이다. (65.2)
 사전에는 자신의 일이나 업무에 느끼는 긍지는 “전적으로 유쾌한”, 하나의 “합리적인 자존심”이며 “정당한 만족감”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사전에는 “부당한 자기 존중”으로 정의된 다른 종류의 자부심, 이른바 교만이라는 단어도 있다. 느부갓네살이 품었던 자부심은 이 교만이었다. (65.3)
 성경은 가르치기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잠 16:18) 하나님은 교만을 미워하신다(잠 8:13)고 하였다. 하나님이 교만을 미워하시는 까닭은 우리가 자신을 과도히 높이면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을 과도히 낮추는 것이 되며 그에게 불친절히 행할 경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다니엘은 교만한 느부갓네살에게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속하소서”라고 간하였다(단 4:27). 성경은 또 이렇게 말한다: (65.4)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 6:8).
(65.5)
 교만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잘못된 감정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킨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 상황을 모두 못마땅히 여기시고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것들을 하신다. (65.6)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제 국민들에게 더욱 긍휼을 베풀도록 가르치고자 하셨을 때, 느부갓네살을 일부러 미치게 만든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창조주이시며 원천이시다. “우리가 그를 힘 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는 것이다(행 17:28). 하나님은 모든 개인을 필수 불가결한 생명 유지의 질서로 둘러싸고 있다. 느부갓네살의 경우에 하나님이 하실 필요가 있었던 모든 일은 생명을 유지시키는 요소 중 느부갓네살의 무시하려고 했던 일부 요소의 공급을 중단시키는 것이었다. 교만은 항상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하나님께 의존하는 존재임을 망각하게 한다. (65.7)
 어떤 목사가 거리를 걸어가다가 그의 교회의 고집스러운 한 신자를 만났다. 두 사람은 한 공지(空地)로 들어갔다. 그 곳은 그 신자가 수고한 보람으로 비옥한 채소밭으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65.8)
 목사는 이 신자에게 하나님께 대한 그의 의무를 깨우칠 생각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채소를 축복하셨습니다”라고 말을 건넸다. (65.9)
 그러나, 그 농부의 대답은, “당신은 하나님이 사용하고 계시던 당시의 이 땅의 모습을 보았다면 좋을 뻔했읍니다”였다. 목사의 말이나 농부의 말이 모두 일리가 있다. 농부가 열심히 풀을 뽑고 채소를 심지 않았으면 잡초가 우거졌을 것이다. (65.10)
 그러나, 하나님이 햇빛을 주시고 채소의 유전적 구조를 마련해 주지 않았던들 농부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것이다. (66.1)
 부부가 맞벌이를 할 경우에는 수입이 많은 쪽이 그만 못한 쪽을 무시하려는 마음이 생길 위험이 많다. 우리가 돈지갑을 열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의 마음에 들어 앉아 있는 느부갓네살을 향하여, 행여 네가 마음속으로라도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고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고 말씀하신다(신 8:18). 겸손이라는 것은 행복한 궁전뿐만 아니라,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 (66.2)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