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속의 예수 그리스도 제 1 부 창세기 속의 예수 그리스도 창세기 15장 그분은 우리의 의이십니다
  (106.1)
 창세기 15장은 신약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논리적 기초로 삼고 있는 매우 중요한 장이다(창 15:6). 여호와께서 후손(창 15:1-6)과 땅(창 15:7-21)에 대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다. (106.2)
 아브라함이 본 환상의 주인공 예수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창세기 15:1).
(106.3)
 성경에서 최초로 아브라함은 선지자, ‘나비’(נָבִיא)라고 불려졌는데(창 20:7) 그 근거가 본 장에 나온다. 그는 환상을 보았고(비교, 민 24:4, 16, 발람) 먼 미래에 관한 말씀을 들었다(창 15:13-16). 그리고 예언문학의 전형적인 시작 형태인 ‘여호와의 말씀이 아브라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라는 구절로 아브라함에게 주신 여호와의 말씀이 소개된다.1(창 15:1, 4. 비교, 삼상 15:10; 왕상 12:22; 렘 34:12; 겔 1:3). 아브라함에게 주신 기별은 후손과 땅에 대한 것인데, 이 주제는 이스라엘 민족의 탄생과 가나안 점령이라는 미래적 성취를 넘어서서 나중에 선지자들에 의해 메시아와 메시아 왕국으로 확장되었다. (106.4)
 뭇별처럼 무수한 후손, 오직 한 사람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세기 15:4-5).
(107.1)
 아브라함은 씨(후손)에 대해 하나님께 질문했다(창 15:2-3). 그 씨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뭇별처럼 무수한 이스라엘 백성의 출현을 넘어서 여자의 후손으로 뱀(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메시아의 오심으로 완성된다(창 15:5). (107.2)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 3:16).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탄생하셨다(마 1:1; 눅 3:34). 믿음으로 말미암아 교회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다(롬 4:12, 16; 갈 3:7, 9, 14). (107.3)
 아브라함의 믿음,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세기 15:6).
(107.4)
 믿음. 본절은 신약에 세 번 등장한다(롬 4:3; 갈 3:6; 약 2:23). ‘믿다’(הֶאֱמִי 헤에민)를 뜻하는 말이 성경에 처음으로 등장했으며 그 파생어는 아멘(אָמַן)이다.2 (107.5)
 의. ‘의롭다’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어근 cDq(צדק 짜데크)는 두가지 측면으로 이해된다. 첫째, 사법적인 측면에서 규범 혹은 표준에 일치하는 것이다. 지정된 규범에 일치하는가의 여부에 따라 상벌이 따른다. 이의 반대적 개념은 자비, 긍휼, 구원이다. 둘째,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것으로 cDq(צדק 짜데크)를 구출, 구원과 동일시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개입이다.3 인간에게 적용할 경우에 의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갖는 올바른 관계,’ ‘하나님과 그분의 계명들에 대해 올바른 종교적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4 (108.1)
 밀접한 관계. cDq(צדק 짜데크)와 ´mn(אָמַן 아만)이 함께 사용되었을 경우는 관계가 잘 성립되어 믿을 수 있는 상황을 특별히 강조한다.5 창세기 15:6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지극히 돈독한 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창세기 14장에서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네 왕과 더불어 싸워 이기긴 했지만 국제적인 분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기 때문에 두려움 가운데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구원을 갖고 오셨다. 그 어떤 강대 세력과의 연합과도 비교할 수 없는 천지의 주재이시며 대적을 그의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지극히 큰 상급으로 자처하셨다(창 14:19-20; 창 15:1). 하나님 안에 현재와 미래의 안전과 번영이 존재한다. 하나님 안에 하늘의 뭇 별처럼 많은 후손과 그 민족이 거할 땅이 있다. 모든 축복이 하나님 안에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존재를 걸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은 언약의 축복을 그 심중에 담고 계시며 축복을 성취하기 위해 언약의 모든 부담을 일방적으로 떠맡으신 하나님을 믿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 4:20-22). (108.2)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하나님께서 이토록 당신 자신을 걸고 보증하시는데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는 것 외에 다른 어떤 선택을 할 수 있겠는가! 아무 것도 성취되지 않았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 하나님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최고의 기쁨으로 부여하실 수 있는 최고의 인정은 아브라함을 ‘의롭다!’—나와 한 짝이다, 나의 친구이다—라고 선포하시는 것이다. (109.1)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해 아브라함은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준다. 아브라함은 어떤 보상을 받을 만한 공로를 전혀 세우지 않았다. 창세기 15장 전에 아브라함은 아내를 누이라고 하고 지역 전쟁에 개입하는 등 신앙적으로 의문시되는 사람이었다. 그의 선행을 꼽는다면 부르심에 순종한 것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순종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의 표현이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롬 4:2). (109.2)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하나님은 의롭게 여길만한 공로로 인정하셨다. ‘나는 ∙∙∙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 상급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사카르’(שָׂכָר)의 어근(שׂכר)은 기본적인 의미가 보답하다, 보상하다이다. 칠십인역은 노동의 대가인 임금, 급료를 의미하는 ‘미스도스’(μισθός)로 일관되게 번역하였다.6 아브라함은 전쟁에 대한 보상으로 소돔 왕에게서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취하지 않았다(창 14:23). 그는 멜기세덱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받은 것으로 만족하였다.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하나님은 공로로 인정하시고 그 보상을 하셨다. 하나님이 큰 민족을 주실 것이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4-5). (109.3)
 아브라함은 무할례자로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할례자는 물론 무할례자로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자들에게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모본이 된다.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롬 4:11-12). (110.1)
 쪼갠 짐승의 교훈, 홀로 언약 성취를 위해 저주를 짊어지신 예수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창세기 15:17-18).
(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