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적 언약신학 제 11 장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완성된 언약
 비록 약간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과 함께 구원과 성화의 동행을 경험하기는 했지만,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가 하나의 실패라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특별히 다윗 언약은 BC 586년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당하면서 다윗 왕가가 끝났을 때 중단된 것처럼 보인다(렘 39:1-10; 겔 21:25-27).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열방 중에 흩어지게 된 것을 언약의 저주 탓으로 여겼다. 그것은 완고한 언약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분기시켰다(렘 18:9-12; 왕하 17:35-41; 대하 36:15-21). (184.1)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도 제2성전기의 유대교의 부족을 드러냈다. 그의 기별은 하나님의 언약을 새롭게 하고 다른 “저주”를 막기 위하여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선지 엘리야”를 이스라엘에 다시 보낸다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마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언약의 약속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축복하기 위하여 무조건적 언약의 약속을 하신다는 개념을 반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84.2)
 반면에, 로벗슨(O. Palmer Robertson)은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의 사랑을 인정하였다. “구속사에서 언약의 저주를 실행하는 것은 아브라함 모세 다윗을 통하여 집행된 언약의 형태보다 좀 더 오래 지속되는 효과를 지닌 어떤 새로운 형태의 언약 집행에 대한 필요를 생생하게 해 준다.”1 이 견해는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 즉 그가 “창세 전에”(엡 1:4; 딤후 1:9; 계 13:8) 거룩한 아들과 함께 하신 언약의 궁극적인 실현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주장한다. 하나님의 종의 구속적인 자기희생을 통하여 “그의 손으로 야훼의 뜻을 성취”(사 53:10) 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왕국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이다. 이 거룩한 계획이 하나님의 “돌 나라”의 도래(단 2:44, 45)와 인간을 다스릴 존귀한 왕권을 받으시는 “인자같은 이”(7:13-14, 27)에 대한 다니엘서의 계시에 극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185.1)
 회복과 완성에 대한 확신
 이스라엘과 맺은 구속하는 은혜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은 예수께서 그의 희생적 죽음을 기념하여 성만찬 예식을 제정하실 때에 극적으로 진전되었다. 그러나 죄 용서의 새 언약은 메시아 시대에는 아직 영광의 절정에 이르지 않았다. 예수 자신은 완성될 미래의 시대를 기대하셨다.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 26:29; 눅 22:16). (185.2)
 이 새로운 약속은 기독교 교회는 자기도취에 빠진 이 세상에서는 결코 안식을 얻지 못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온전한 기독교 신앙은 지상에 회복될 낙원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함께 완전히 교제하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오직 그 때에 하나님의 모든 언약은 영광스러운 완성을 보게 될 것이며 거룩한 목적은 성취될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오직 새 예루살렘에서 백성들이 창조주와 온전히 “하나가 될 것”을 약속하고 있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계 21:3). (185.3)
 이사야는 어떻게 모든 인간 사회가 하나님과 또 서로서로 조화를 이룰 것인지에 대해 묘사하였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9). 그는 다윗 가의 왕 메시아가 마침내 둘째 아담으로서 회복된 낙원에서 짐승들 사이에 평화롭게 거닐 것을 내다보았다. (186.1)
 천연계와의 이상적인 조화에 대한 묘사에서 이사야는 원 창조 기사에서 빌려온 색(창 2:19-20)으로 미래를 채색한다. 그는 심지어 이러한 “표상학적” 연결을 명료하게 진술한다. “대저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 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움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사 51:3). (186.2)
 이사야는 아담과 하와와 맺은 에덴 언약의 구속받은 인류를 위해 좀 더 높은 차원의 친밀함으로 회복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다른 선지자들도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을 위한 이러한 희망을 피력하였다(겔 36:35; 암 9:11; 미 4:8).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다윗의 아들인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통한 창조 언약의 회복을 강조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모든 언약을 이 나눌 수 없는 이스라엘의 한 희망에 연합시켰다. (186.3)
 이 “이스라엘의 희망”은 예수의 사도들에 의해 반복되었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호소하였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행 3:19-21). (186.4)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그가 심문을 받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행 26:6; 23:6; 28:19-20과 비교)이라고 증언하였다. (187.1)
 이 약속들은 그들의 문자적 성취가 어떠하든지 간에 그보다 무한히 더 큰 방식으로 실현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고전 2:9; 사 64:4과 비교)던 것이기 때문이다. (187.2)
 창조주는 그의 피조물을 구원하시기로 맹세하신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 21:5). 바울이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나니”(고후 1:20)라고 선언한 것처럼 하나님의 언약의 영광스러운 완성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보장되었다. 하나님의 모든 언약을 그렇게 그리스도 중심으로 완성된다는 것이 요한계시록에 묘사되어 있다. (187.3)
 그리스도가 다윗 언약을 완성함
 요한계시록은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이스라엘 하나님의 진전된 계시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에 앉으신 이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그는 최고 통치자요 우주의 심판자로서 유일하신 하나님의 신분에 동참한다(3:21; 5:13; 22:3). (187.4)
 바우캠(R. Bauckham)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께서 거룩한 신성에 포함되는 것은 하늘에 올라 거룩한 보좌를 함께 나누는 사실에 있었다”2고 설명하였다. 겸손한 메시아가 하늘 보좌에 오르셨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나타내는 통치권과 권위를 부여받았다는 사실이 요한계시록 4장5장“보좌 이상”에 그림처럼 묘사되어 있다. 하늘 장로들 중 하나가 요한에게 말한다.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계 5:5). (187.5)
 이 말들 속에서 아브라함의 언약과 다윗의 언약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하나의 완성된 실체로 통합된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어린 양에 관한 그의 묵시에서 요한은 오순절 이후 사도가 선포한 것을 다윗 왕에게 한 메시아 약속의 성취로 확인하였다(사 52:13; 시 110:1; 행 2:33; 5:31 참조). (188.1)
 특별히 승천하신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왕권과 심판 권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요한의 묘사는 의미심장하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며 시작과 끝이라”(하나님의 경우는 계 1:8; 21:6; 그리스도의 경우는 1:17; 22:13; 사 44:6; 18:12 참조). 이사야의 예언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이 세 가지 칭호는 요한 계시록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그리스도 두 분 모두에게 해당된다. 바 우캠은 이 거룩한 칭호에 대해 바르게 설명해 준다. (188.2)
그것은 한 분 하나님의 독특하고 영원한 주권을 표현한다. 그분은 만물의 창조주로서 그들보다 먼저 계시고 역사의 주인으로서 만물을 그 종말론적 성취로 이끄신다 ∙∙∙ .하나님은 만물의 처음일뿐만 아니라 마지막이요, 끝이요, 오메가이시다. 그 때는 요한계시록 전체가 향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오심과 함께 그의 나라가 오는 때이다.3
(188.3)
 언약 문서로서의 요한계시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