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바라고, 바라고 믿고
 남북전쟁을 치른 링컨 대통령의 해묵은 성경이 아직도 보존되어 있다. 그런데 그의 손때가 검게 묻혀진 채 손가락으로 짓눌린 자국이 아직도 그대로 남겨진 성경 구절이 바로 시편 34편 4절이다.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전세가 불리했던 그 두렵고 암담했던 날 동안 그는 다윗처럼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는 확신과 모든 두려움에서 마침내 건져 주신다는 소망을 붙잡고 끝까지 버틴 것이다. 그것은 다윗이 그의 평생을 통하여 실험을 끝낸 확증인 것이다. (130.1)
 “내가 산 자의 땅에 있음이여

   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었도다.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시편 27편 13, 14절). (131.1)
 끝까지 살아서 여호와 하나님의 “튜브”(tub), 곧 선하심(우리말 성경에는 “은혜”)을 볼 것이라는 확신은 다윗을 끝까지 견디며 버티게 했다. 그렇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을 때에만 사람의 배신을 참을 수 있다. 믿을 수 있을 때만 바랄 수 있다. 바라는 것이 확실할 때만 끝까지 기다릴 수 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131.2)
 본향

 오옥자


 아득한 안개 숲 사이로

 푸른 골을 휘감은 새벽 정적이

 빛더미 속에 흩어진 벌.


 거적 걸침을 벗고

 살 몸의 흰 줄기를 따라 올라

 속속들이 여민 진실을 말하고

 찢기워진 숨을 가다듬다.


 태고의 방황과

 살이에 추악해진 마음마저

 부서지는 갈대의 울음처럼

 송두리째 빈 잔에 내뱉고,


 내 혼이 한없이 아파할 때

 작은 등불을 밝혀

 본향의 그 문을 두드리리라. (1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