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에 나타난 구원 시편 24편 영광의 왕께 면류관을 !
 하나님을 뵘(Visio Dei)
 하나님께서는 신뢰와 성실의 정신으로 당신을 찾는 사람들 중에 영원히 거하시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바로 그분의 사랑의 신비이다. 창조주께서는 우리와 함께 살기 위해서 오셨다. 실제로 구세주 예수로서 우리에게 지금 오신 것이다. 그분께서는 처녀가 “임마누엘”을 낳을 것이라는 메시아적 약속을 성취하셨다(마 1:21~23. 사 7:14과 비교). 그분을 만난 사람들의 영혼에 영광이 가득 찼다. (224.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225.1)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요 14:9)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유대인들을 놀라게 하셨다. 그러나 바울은 창조주가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세주이심을 우리에게 확증해 주고 있다. (225.2)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 4:6).
(225.3)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중에 거하시겠다고 하신 이스라엘과의 약속(출 25:8)은 메시아의 백성 안에서 지금 성취되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는 그들 안에 계신다(갈 2:20). 이 사실이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끊임 없는 찬송이 울려 퍼지도록 해준다. (225.4)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4~19).
(225.5)
 그런 중에서 또한 그리스도의 백성들은 새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보좌와 더불어 하늘로부터 이 땅에 내려올 때 일어날 마지막 성취의 계시적 영광을 내다본다(계 21:2~4). (226.1)
 이와 같이 시편 24편은 창조시에 계셨고 이제는 메시아로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복주고 계시는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어린 무리를 보호하시기 위해 이제 오실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편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세 가지의 값진 축복을 제공해 준다. 우리를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온 생명(life from God), 메시아적 구원 가운데 있는 하나님 앞에 있는 생명(life before God), 그리고 장차 메시아적 구원의 성취에 나타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명(life with God)이 그것이다. (226.2)
 하나님 앞에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자들은 이 모든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인류의 대다수는 하나님과 당신의 메시아를 전혀 모르는 듯하다. 대부분이 그저 음식을 얻기 위해 뛰거나 생의 쾌락을 광적으로 추구한다. 소수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고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듯하다. 이 시편은 우리에게 천연계를 우선 하나님의 창조물로 보고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창조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하도록 권면하고 있다. 모든 것이 처음 있던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 우주가 질서와 능률을 갖는다는 것(시 8, 19편 참조), 이 사실들은 아마 우리를 놀라게 할 것이다. (226.3)
 생명의 근원을 하나의 사실적, 기계적 원칙으로 설명하는 것은 처음부터 비과학적이며 어리석은 일이다. 자연 과학 자체는 생명이란 오직 기존 생명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진화론자들조차도 그들의 이론이 지니는 커다란 문제점이 무생물에서 생물로 뛰어넘는 데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성경은 권위 있게 선언하고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세상의 놀라운 질서와 복잡성, 그리고 살아 있는 유기체들은 어쩔 수 없이 하나의 명철한 계획과 달관된 설계를 입증해 주고 있다. (227.1)
 “창조”를 믿음으로써만 우리는 인간이 하나의 도덕적 우주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창조주께서는 당신 자신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나타내셨다. 그분의 영과 기별이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분을 구하고 찾도록 이끄심이여(사 2:2~4 참조)! 창조주께서는 모든 사람을 이렇게 이끄셨다.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행 17:27). (227.2)
 그러나 하나님을 찾는 자가 누구인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하여 이 일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뤄지겠는가? 인간의 철학과 사상으로는 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 분의 아들 구세주 예수라는 방법으로 찾을 수 있다. 오직 그 종교만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하나님께로 인도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불안한 마음에 하늘의 쉼을 제공해 주신다. (227.3)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8, 29).
(228.1)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의 얼굴을 끊임없이 찾는 것이다(요 17:3). 그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참된 교제를 즐기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에 계실 때, 그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왕국에서 그분을 뵈옵게 될 궁극적인 성취를 위한 준비가 완료되는 것이다. (228.2)
 시편 24편에 나타난 하나님의 법궤의 엄숙한 이전은 하늘 새예루살렘에 있는 시온 성으로 향해 가신 그리스도의 승천과 세상의 왕으로서의 그분의 대관식에서 그 성취를 보았다고 할 수 있다(행 2:36; 엡 4:7~10). 화잇 부인께서 다음과 같이 이 문제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228.3)
 온 하늘은 구세주를 하늘 궁정으로 영접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승천하실 때에 그는 친히 길을 인도하셨는데 그의 부활시에 놓임을 받은 많은 포로들이 이제 그 뒤를 따랐다. 하늘 천사들은 찬송과 천국의 노래로 환호성을 올리며 즐거운 행렬에 가담하였다. (228.4)
 저희가 하나님의 도성에 가까이 이를 때에 수행하던 천사들이 다음과 같은 요구를 발한다. (229.1)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229.2)
 기다리던 파수군들은 즐거움으로 화답한다. (2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