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에 나타난 구원 시편 24편 영광의 왕께 면류관을 !
 시편 24편은 시온을 이 땅 위의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로 제막시키는 데 사용하기 위하여 특별히 만들어진 듯하다. 언약의 백성들은 이 의전 행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임재하심을 실제로 경험하였다. (220.1)
 하나님을 찾는 자들
 시편 24편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이 영화로운 절정에 앞서서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이 두 부분 모두 이스라엘의 위대하신 왕께 경배하기 위해 성전에 들어오기를 원 하는 자들의 조건과 자질을 다루고 있다. 시편 24편 3~6 절에 나오는 예배자들의 자격은 15장에 언급된 성전 예배 참여를 위한 도덕적 필수 요건과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시편 15편에서처럼 주로 레위 합창대로 대표되는, 금방 당도한 순례자들이 황급히 질문을 던진다. (220.2)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시 24:3) (220.3)
 다른 합창대가 화답한다. (220.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시 24:4~6)
(221.1)
 거만하고 고의적인 죄를 행한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구하도록 허락되지 않았다. 허락된 자들은 오직 자신들의 죄를 회개한 자들로서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며 하나님만 섬기기를 원하는 자들, 오직 하나님을 “찾는 자”들,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 들이었다. 이것은 곧 브니엘에서 하나님과 겨룬 야곱의 씨름을 가리키고 있는데 거기에서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내었던 것이다. (221.2)
 그리하여 야곱은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창 32:30) 하여 그 곳을 브니엘이라 불렀다. (221.3)
 참 신앙의 기초
 시편 24편은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조물주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야훼 예배가 생기게 된 근본 이유이다. (221.4)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시 24:1, 2)
(222.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부족신(部族神)이 아니다. 그분께서 세상을 당신의 창조적 언어와 의지로 존재케 하셨으므로 세상은 그분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최고 통치자가 되신다. 인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은 모든 국가와 민족의 경배와 찬양을 요구하실 수 있는 그분의 권리를 함축하고 있다. 창조력과 통치력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222.2)
 시편 24편은 지구가 하계의 바다 속에 박힌 기둥 위에 세워졌다고 가르치는 고대 동방의 세계관에 사용되었던 용어로써 이 세상을 설명하고 있다(삼상 2:8; 출 20:4; 창 1:7, 7:12). 시편 기자는 그것의 역사적 실체를 그 자신 스스로 탐구하지 아니하고 단지 당시의 신화적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은 야훼 하나님의 인지(人智)를 초월한 위엄과 창조의 능력에 대한 자신의 충성된 경애심을 이런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른 찬양의 시는 이 창조의 동기를 한층 더 상세하게 마무리하고 있다. (222.3)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대저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 위에 크신 왕이시로다
땅의 깊은 곳이 그 위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곳도 그의 것이로다
바다가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시 95:1~6)
(222.4)
 도덕의 하나님을 예배함
 창조주께서는 당신을 기쁘게 하는 예배의 기본 특성을 세우셨다. 하나님께서는 예식적이거나 외형적으로만 하는 예배에 만족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인간의 마음을 원하시며, 그의 말과 행동의 동기를 달아 보신다. 진정한 행동과 사상이 요구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행위를 보시기 전에 사람을 보시고 계신다(창 4:4, 5 참조). (223.1)
 시편 24편은 단지 두 가지 죄악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우상 숭배와 거짓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것들은 성전 예배에 참여가 금지되었다. 그것들은 인간 마음의 본성적 무지를, 더 이상 진정한 하나님과 주님을 깨닫지 못하는 영혼의 은밀한 방황을 노린다. 그러나 제사장의 목소리는 야훼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축복과 의를 남녀 무론하고 부어 주실 것임을 확신시켜 주고 있다(시 24:5). “축복”“보호”(문자대로는 “의”)는 어떤 자연법이나 요식적 행위에 의한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뜻으로부터 선물처럼 오는 것이다. 참된 이스라엘 이란 그들의 생애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요구를 인식하는 예배와 기도의 백성을 말한다. 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찾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들로 특징 지어진다(시 24:6). (223.2)
 예수께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라고 말씀하실 때, 시편 24 편에 하나의 새로운 확증을 주셨다. (224.1)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두 가지로 적용할 수 있는데, 영적인 눈으로 보는 현재성(고전 2: 9, 10)과 완전한 현실로 나타날 계시적 미래성이 그것이다. (224.2)
“너희 눈은 그 영광 중의 왕을 보며
광활한 땅을 목도하겠고”
(시 33:17)
(2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