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이 시편을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가장 중요한 사건을 축하하여 부르는 찬양의 노래로 작시했는데, 이 사건은 바로 사무엘하 6장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거룩한 법궤를 시온 산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법궤는 하나님의 복된 임재와 뛰어난 통치권의 상징이었다. (215.1)
하나님께서는 부조 시대 이래로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의 후손에게 주기로 약속하셨다.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약속의 땅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 땅 전역을 정복하여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가나안 사람들을 만군의 주이신 야훼의 이름으로 함락시킬 때까지는 기나긴 세월이 흘렀다. 결국 다윗 왕의 통치기에 모든 대 적들이 정복되고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을 전부 갖게 되었다. 이 일은 예루살렘에 있는 시온의 성체를 여부스 사람들로 부터 빼앗았을 때 생긴 일이었다. 이 영예스러운 업적으로 다윗은 이스라엘 땅에 자신의 보좌를 굳게 세우게 되었다. 하나님의 임재가 시온에 임하는 법궤의 관행적 이전 행사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이스라엘에게 근본적으로 성취되었다. (215.2)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 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삼하 6:12).
야훼 하나님을 영광의 왕으로 모시는 환호의 축하 행사는, 최고의 통치자이신 야훼 하나님의 가나안 정복을 극화시킨 교창 악단의 찬미가가 새 도성 문에 울려 퍼지면서 절정을 이룬다. (217.1)
입장 예배 의식
7~10절에 나오는 영광의 찬미는 분명히 본래적, 전통적 찬양 음악의 가락을 저버리고 있다. 종교적 배경은 다음과 같이 재구성될 수 있으리라. 기쁨에 충만한 이스라엘의 행진은 하나님의 법궤와 더불어 시온의 옛 도성 문에 도 착한다. 지도자들이 목소리를 모두어 외친다. (217.2)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시 24:7)
(217.3)
희년가(jubilant lyrics)에 보면, 그 문들을 마치 수문장들인 양시적으로 의인화시키고 있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엄청난 위대성을 더욱 분명히 하고자 함이다. 하나님께는 문이라는 모든 “문”들이 너무 작도소이다! 입장 요청에 대한 응답으로 근무 중인 시온의 수문장들이 질문을 던진다. (217.4)
그들은 문들의 “머리”인 상인방(上引:top dooposts) 들에게 문들이 너무 작아서 이 위대하신 하나님이 들어가실 수 없으므로 머리를 더 높이 들도록 재차 요청하는 것이다. 솔로몬 왕은 훗날 성전을 위한 그의 헌신 기도 가운데서 이스라엘 하나님의 우주적인 권위를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218.4)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 오리이까”(왕상 8:27).
(219.1)
이 때, 이 제사장 찬양대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완전한 호칭, 즉 야훼 사바옷, 왕중 왕, 만군의 여호와(10절)를 부르며 응답한다. 다윗은 그의 어린 시절에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독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 7:45) 고 외치면서 골리앗을 물리쳤었다. 이 승리의 하나님이 이제 시온 산 가나안 땅의 주요 성체를 차지하시는 것이다. (219.2)
문들은 하나님의 완전한 호칭이 불려짐에 따라 활짝 젖혀지고, 마침내 하나님의 법궤와 그 기쁨에 찬 무리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성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하여 다윗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과 모든 이방인들을 위하여 야훼 하나님을 경배하는 독보적인 중심지로 만들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약속을 단호히 이방에까지 연장시키고 있다. (219.3)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시 5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