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굴하지 않는 인내로 드리는 기도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인정되어왔다. 그런데, 서구 문명에 익숙한 신자들은 그들이 당면한 문제를 기도가 신속히 해결해 줄 것을 기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오늘날 이런 속전 속결의 기도 문화가 우리의 믿음을 좀먹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끈질기게 기도하는 대신 생각날 때 마다 한번 씩 기도하는 습관에 젖어가고 있다. 연합하여 드리는 기도가 우리의 믿음에 필수적이 듯이, 꾸준히 드리는 기도 역시 필수적이다. 이것은 우리가 취사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굴하지 않는 인내로 드리는 기도 없이 우리는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대적 마귀를 이겨낼 길이 없다. (19.1)
예수님은 굴하지 않는 기도의 필요성을 경험적으로 아셨다. 그분은 자주 기도로 밤을 꼬박 새곤 하셨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신자들의 끈기 있는 기도의 필요성에 대해 예수께서 하나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신 것이 기록되어있다. 예수께서는 말씀의 요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두개의 핵심 문구를 사용하셨다. (19.2)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눅 18:1) (19.3)
이 비유의 목적은 끈기 있는 기도의 중요성에 대한 교훈을 가르치는데 있다. 누가는 예수님의 의도를 잘 알고 있었다. 응답 받기 전 까지는 기도를 중단하지 말고, 바로 응답되지 않는다고 낙담하지도 말아야 될 것이다. 여기 사용된 “기도”라는 희랍어 단어에는 진행형의 의미가 있다. 이 비유에 담겨있는 예수님의 교훈은 포기하지 말고 부단히 기도하라는 것이다. (19.4)
끈기 있는 기도의 중요성을 보강하는 문구는 제7절에 나온다. (19.5)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눅 18:7) (19.6)
여기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명백하다.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많은 경우에 있어 우리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르짖은 결과라는 것이다. 황급하게 드리는 기도로는 지속적이고 꾸준한 기도가 초래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19.7)
화잇여사도 그 당시의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적 나약성을 자각하고 수행하는 천사에게 왜 그러냐고 질문했다. 다음에 천사의 대답이 있다. (19.8)
“나는 천사에게 왜 이스라엘에게 더 큰 믿음과 능력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천사가 대답하기를 ‘그대들은 너무도 속히 주님의 팔을 놓아버린다. 그대의 탄원을 보좌에 올리고 강인한 믿음으로 그의 약속을 붙들라. 그의 약속들은 확실하니 그대가 구한 것을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받으리라’ 하였다. 그 후에 나는 엘리야를 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었으나 열렬히 기도했다. 그의 믿음은 시련을 견디었다. 그가 주님 앞에서 일곱 번 기도를 올리고 나서야 드디어 구름이 나타났다.” (초기 73) (19.9)
오늘날도 역시 우리는 너무 속히 주님의 팔을 놓아버린다. 우리는 주님을 붙잡고 기도로 씨름하는 습관을 배양해야 할 것이다. (19.10)
개인적 성찰과 토의
1. 기도로 하나님과 씨름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2. 서구사회에 사는 일반 그리스도인들이 끈기 있는 기도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쉬운일일까? 의견을 기술하라.
3. 끈기 있는 기도의 중요성에 관해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나?
4. 하나님의 교회가 그다지도 나약한 이유에 관해 화잇여사를 수행하는 천사가 무엇이라 말했는가? (1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