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를 통한 속량과 재회 제 17 장 왕국, 성령 그리고 성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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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의 희생적으로 죽으시기 전, 후에 그를 위하여 증거하는 사업의 중요성과 더불어 제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끼쳐 주시기를 원했다. 그 일은 수행하기 위한 자격을 부여함여 성경을 부어주시기로 뜻하였다. 그가 나누신 말씀에 “저들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론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행 1:4,5). 그러나 제자들은 아직도 그 믿음속에 예루살렘에서 왕국이 설립될것을 품고 있었다. “예수께 묻자왈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라 하니”(6절)라고 질문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107.1)
 유대백성들은 오래동안 구원자, 매시야 왕을 고려하고 있었다. 다니엘의 예언에 지적된 시간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막 1:14,15)하심으로 성취되었다. 군중들은 준비하는 경험보다 더욱이 왕국의 선포가 그들에게 인상을 주었으므로 빛나는 전망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들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 두가지를 연결시켰다. 그가 말씀하시기를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하신 말씀 다음에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신 것이다. 그는 인간의 마음에 깊은 회개로 갈아 엎기까지는 이스라엘 나라 회복이란 결코 있을 수 없음을 아셨다. 예수께서 그의 공생애와 제자들을 훈련하신 3년 동안, 그는 그의 제자들이 개인의 생애속에 의의 필요성을 깨닫도록 유도하는데 열열히 노력하셨다. 그는 그들이 죄를 위해 대속하신 십자가의 희생이 없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수반될 수 없음을 이해하기를 바라셨다. 그는 그들이 그의 목적 하신바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들어나며”(단 9:24) 하신대로 되기를 원하셨다. (107.2)
 그들이 이 계획을 이해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갈바리에서 크게 실망해 버렸다. 부활하신 후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성경을 열어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눅 24:46, 47)라고 알려 주셨다. (108.1)
 그러나 우리가 사도행전 1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들의 마음은 아직도 지상 왕국을 세우는데 고착되어 있었다. 의식없이 그들 생각에 “그렇지 주님이여 우리가 유월절에 잘못을 했습니다. 당신이 죽으신다는 것이 명백함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은 희생을 하셨으니 왕국을 세울 때가 아닙니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은 바로 십자가의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위의 성전에서 중보하시는 사업과 성경의 선물을 부어주심을 위한 필요를 이해하는데 실패했던 것이다. (108.2)
 우리들도 그와같이 나라가 세워질려고 하는 때에 방황하고, 그리고 영의 필요를 감감하는데 실패하고 때와 기한을 마음에 고착시키는 위험 가운데 의문과 두려하는 중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예수께서 그의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듯이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는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7, 8)하신다. (108.3)
 단지 죄가 지워져 버렸다면 모든 영광이 충만한 왕국이 세워졌을 것이다. 주님을 우리들에게 기도를 가르쳤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오니 이룬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마 6:10). 사람의 형상을 하나님의 뜻과 온전히 조화되게 회복시키는 구원의 경륜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의 희생과 하늘성소 양간(間)에서의 제사직(Priestly Ministry)이 포함된다. 지성소에서 심판하시는 장면과 연관시켜 다니엘은 “인자 같은이가 옛부터 항상 계신자에게 나아와 ∙∙∙∙∙∙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단 7:13, 14) 이 “나라는 중보자로서 그의 사업을 마칠 때에 주어지게 될 것이다”(GC 480). 그 왕국은 하늘 성소에서 그리고 지상 교회에서 죄가 제거되기까지 기다리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성취할 수 있을 때까지, 나라의 선포는 회개를 불으짖는데 항상 그 촛점을 집중시킨다. 왜냐하면 “회개는 죄로 슬퍼하고 그것에서 도리키는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SC 23) (109.1)
 이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 ∙∙∙ 하는 회개가” 모든 민족에게 증거할 그들의 사명의 중요성이 마음에 인상되기를 추구하셨다. 그러나 그는 그 가르침이 별로 효과가 없음을 아랬다. 무한한 능력은 기다리고 없었다. 지상에 있는 교회를 위한 중재의 기다림—그리고 지루히 중요한 하늘에서의 사건을 위해서 기다리셨다. (109.2)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승천하심은 그들 때로는 허락된 축복을 받는 신호였다. 이것을 위해서 그들은 그들의 사업에 들어가기 전에 기다렸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늘 문안을 통과 하실때, 그는 천사들의 경배속에 즉위하셨다. 이 의식이 마치자 마자 성경은 제자들에게 풍성한 물줄기로 하강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영원한 때 부터 아버지와 함께 누전 영광을 받으셨다. 오순절의 부어 주심은 구주의 취임이 끝났다는 하늘의 교신이었다. 그의 약속하신대로 하늘에서부터 그의 성령을 따르는 자들에게 보내사 그가 제사장이시며 왕이심을 나타내시고, 하늘과 땅의 권세를 받으시고, 그의 백성들 위에 기름 부으심을 받은 이가 되셨다”(AA 38,39). (109.3)
 성령의 강하신 감화아래 사도들의 설교는 수천명이 “우리가 어찌할꼬”하는 절규를 발하는 각성을 이르켰다. 그 답변은 명백하게도 “회개하며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 )라고 하였다. (110.1)
 사도들은 새로운 개심자들의 마음을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 제사장이시며 왕으로서 그의 교회위에 한없는 축복을 부어 주실 위의 성전으로 향하게 하셨다. “오순절 날에 임하신 성령은 제자들의 마음을 지상성소로 부터 그의 속죄의 은혜로 제자들위에 베푸시려고 흘린 그의 자신의 피로 말미암아, 들어가신 하늘 성소로 옮기셨다”(EW 260). (110.2)
 지상교회는 성소에서 예수님의 중보로 성령의 놀라운, 선물로 인해 연결됨으로 가능에 대한 하늘교회와 하나가 되었다. 거룩하신 기도 아래서 한 세대 안에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1:23)바 되었다. 지금 우리들은 다시 다니엘의 큰 예언을 보자. 주후 27년에서 31년이 되는 때에 제자들은 왕국의 취임을 기대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메시아 왕이 임하시는 다니엘의 예언을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던 바와 같이 2300 주야 끝에 재림신도들은 1844년 10월 22일에 그의 나라가 세워질 것을 믿었다. 그들이 실망한 위의 성소된 아래로 그의 교회에서 해야할 요긴한 봉사가 남아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는 “죄를 없이”(히 9:26) 하는 사명을 완성하셔야만 한다. 예수님께서 실망한 제자들의 마음을 지상성소에서 하늘로 향하게 함같이 1844년 그의 백성들의 주의를 둘째 휘장안으로 들어 가신 지성소의 사업으로 돌리셨다. 그는 거기서 잠간동안 계실 것이다. 만일 그의 백성들이 그와 함께 그 안에 들어 가기만 한다면 그는 그것을 재빨리 마치실 수 있다. 사도행전 3장 19절로 돌아가서 예수님께서 하늘 성소에서 그의 사업을 마칠 수 있기 전에 여기 지상에서 우리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에 초절을 모으자 그리고 역시 주의해 생각할 것은 지성소에서 죄를 도말해 버리는 것과 관련된 영을 크게 부어 주심의 허락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되”(행 3:19,20). (110.3)
 예수님께서 오실 수 있기 전에 죄로 도말해 버리는 일이 반드시 완수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일은 이루기 위해서 깊이 회개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돌이켜! 회개? 그렇다. 이것은 침례 요한의 기별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봉사 초기에 갈릴리에서 전한 기별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성소에서 그의 사업을 시작했을 때에 베드로의 기별이라. 그리고 아직도 회개하라는 기별이 주어지고 있다. 우리들은 반드시 죄로 슬퍼해야 한다. 그것에 대해 전적으로 충분히 슬퍼해야 한다. 언제나 나의 회개는 너무 피상적이다. 나는 그 같은 것을 내일, 내주 그리고 같은 짓을 거듭 범한다. 나는 깊은 회개가 필요하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여기 이 아래에서 내 생애의 죄를 도말하고 실천하기 까지는 결코 하늘의 기록에서 우리 죄를 도말하시지 않을 것이다. (111.1)
 지금 우리들이 이러한 깊은 경험에 들어 가게 될때 무슨 일이 일어 나는가? 그리스도께서 오순절에 성소에서 성령을 보내주심 같이 지성소에서 같은 성령을 보내신다. 오순절에 이른비의 부어주심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사직 사업에 들어간다는 신호였듯이, 지성소에서 늦은비를 부어 주심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중보적 봉사를 끝마친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111.2)
 그 거대한 복음사업은 시작할 때의 표징보다 하나님의 능력이 적게 나타남으로 끝마쳐지지 않을 것이다. 복음사업의 시초에 이른비 성령의 부어주심으로 성취된 예언은 그것의 마칠 즈음에 늦은비 가운데서 다시 성취될 것이다. 여기에 사도 베드로가 미리 내다 보고 말한 유쾌하게 되는 때가 있다.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 부터 이를 것이요, 그리고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수를 보내시리라”(GC 611). (112.1)
 그렇다 바로 여기에 큰 외침의 시기에, 예수님께서 지성소에서 끝마치는 사업—여기에 유쾌하는 때가 있다. 이 모든 배후에서 무슨 일이 있는가? 예수님께서 한가지 일을 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이 이 지상에서 죄를 그대로 행하고 있을 동안에는 하늘에서 죄를 도말하실 수가 없다. 저 위의 범재 안에 간직된 법은 그의 백성들의 마음 성전에도 간직 되어야만 한다. 승리하기 위하여 “강한 믿음과 고뇌의 불으짖 음”으로 탄원하는 자들은 원대로 될것이다. 그들은 “표준을 높히고 곧은 진리를 발한 것이다”(EW 269,270) 교회 안에 어떤 이들은 이 바른증거에 견딜수가 없다. 그들은 계속적으로 미지근한 상태로 있다가 결국 흔들려 떨어져 버릴 것이다. 그러나 늦은비가 예수님과 더불어 이심전심으로 교통하는 이들에게 내림으로 많은 사람들이 배도한 자들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때에 하나님의 교회의 지도자들로 부터 나팔을 불어 모으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들은 안다. 그리고 그대와 내가 안다. 그것은 만일 우리가 회개와 부흥과 개혁의 깊은 경험에 들어가기 까지는 늦은비 능력의 충만함이 없을 것이라는 것, 어디서 이것이 시작되어야 하겠는가? 그것은 여기 아래에 있는 교회에서 시작해야만 한다. 더 가깝게는 그것은 반드시 그대의 마음과 뜻에서 시작해야만 한다. “우리들은 하늘 성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그 사업에 경성하고 있는가? 혹은 우리가 일어나기 전에 교회 위에 어쩔수 없는 능력 을 위해 기다리고만 있을 것인가? 우리들은 전 교회가 부흥 되기를 바라고만 있을것인가? 그런때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은 반드시 개인적으로 이 사업에 투신해야 한다. 우리들은 더욱 많이 기도하고 말은 더욱 적게 해야한다.”(1SM 122) (112.2)
구세주는 오래전에 크신 능력 만큼
그의 영을 나타내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마음을 열었어야, 그리고
죄를 비어야, 부흥은 안에서 요구 되었었다.
주여 부흥케 하소서
나부터 시작하게 하소서
채워 주소서 , 자아를 버리게 기도합니다.
당신의 아름다움을 보게 하시고
지금 나를 정결케 하소서 복되신 구세주여,
오 주님 내 상한 심령의 탄원을 들으소서
하늘에서 부흥을 보내 주소서
나부터 시작하게 하옵소서
 — Evlene Owens Borton —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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