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마태복음 제 III 부 왕의 고난, 죽음, 그리고 부활 (16:21-28:20) 8. 십자가와 왕국에 대한 전조(前兆): 미래의 형태 (16:21-17:27)
 마태복음 16: 21은 첫 복음서에서 큰 전환점의 하나를 이룬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을 받’을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라”고 그 구절은 말하고 있다. 그 구절의 처음 몇 단어들은 4:17을 생각나게 해준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기 시작하셨다. (205.1)
 매우 의식적으로, 우리의 저자는 그의 복음서의 그 위대한 전환점들을 구획해 왔다. “이 때로부터” 라는 표현 둘은 마태복음을 세 가지 큰 부분으로 나눈다. 첫째(1:1-4:16)는 왕의 인격을 다루고 있고, 둘째(4:17-16:20)는 왕의 선포를 다루고, 셋째(16:21-28:20)는 왕의 고난, 죽음 그리고 부활을 제시하고 있다. 그와 같이, 첫째 복음서의 나머지 부분은 16:21의 그의 고난,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예수의 고지(告知)로 더불어 출발하여 십자가와 그 여파를 향하여 사정없이 움직여 나간다. 물론, 십자가로 향하는 예수의 움직임과 예루살렘을 향한 그의 움직임은 하나이며 동일한 것이다. 그 운동은 그 복음서의 절정을 위하여 우리를 준비시킨다. (205.2)
 이 장(16:21-17:27)에서 우리가 연구하는 이 구절은 세 가지 생생한 언어 표현들로 미래에 대한 맛보기를 제공하고 있다. 그 첫째는 그리스도와 우리 둘 모두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들에 대한 충격적인 전조(前兆)이다(16:21-28). 둘째는 미래 영광의 왕국에 대한 즐거운, 만족스런 전조이다(17:1-13). 그리고 셋째는 제자들의 준비되지 못함에 대한 두 가지 낙담어린 전조로 구성되어 있다. (205.3)
 ■ 말씀에 들어감
 마태복음 16:21-17:27까지 두 번을 읽으라. 그러고 나서 그 주제에 관하여 그대의 노트에 몇 문장을 쓰고 다음의 질문들에 답해 보라. (206.1)
 1. 마태복음 16:21은 마태복음에서 그의 죽음과 부활에 관하여 예수께서 하신 세 가지 예언 중 제일 첫째 것이다. 성경의 관주들과 성구사전을 사용하여 다른 두 가지도 찾아보라. 셋을 비교하라. 그리스도께서 16:21에서 그가 당할 고초에 관하여 상술하시는 구체적인 사항들을 열거하라. 그러고 나서 다른 두 성경절들에서 보태진 정보의 사항들을 나열하라. (206.2)
 2.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으로서, 메시야와 인간의 심리학에 대한 유대인의 개념에 관하여 그대가 알고 있는 지식을 사용하여 16:22의 예수의 고지(告知)에 대해서 베드로가 왜 그런 반응을 나타냈는지를 부각시키는 글을 한두 문단 쓰라. 그러고 나서 왜 예수께서 23절에서 그처럼 단호하게 반응하셨는지 논하라. 그대의 관주들(혹은 성구사전)을 사용하여, 마태복음의 다른 어떤 곳에서 예수께서 그와 유사한 “사단” 관계 진술을 하셨는지 찾아보라. 그 다른 구절이 16:23에 대해서 어떤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는가? (206.3)
 3. 십자가는 무엇이었는가? 그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그 목적에 비추어, 그리고 그에 뒤이은 구절들에 비추어, 16:24의 의미를 요약해 보라. 누가는 16:24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무엇을 보태어 주는가? (206.4)
 4. 16:28을 동떨어진 독립된(즉 아무런 문맥도 없는) 구절로 가정하고, 그 구절을 설명하려고 최선을 다해 보라. 그러고 나서 16:27에 비추어 그것을 설명하려고 노력해 보라. 또한 그것을 17:1-13에 비추어 설명하라. 문맥에 담긴 의미를 살핀 후에, 그 문맥에서 그 본문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그대의 생각을 요약해서 써 보라. (207.1)
 5. 변형산 사건에 포함된 기본적 요소들을 나열하라. 그 사건이 예수께 대해서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제자들에 대해서는? 그대는 예수께서 왜 세 제자만을 데리고 가셨다고 생각하는가? (207.2)
 6. 17:14-21의 요점이나 교훈을 몇 문장으로 요약하라. 그 교훈은 예수와 제자들이 십자가를 향하여 나아가는 마태복음의 흐름에 어떻게 부합되는가? (207.3)
 ■ 말씀을 탐구함
 십자가에 대한 전조
 16:21의 중요성은 아무리 과도하게 강조해도 지나칠 수 없다. 16장에 이르러서는 법인(法人)으로서의 이스라엘이 예수를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명백해 졌었다. 그런 사태로 인해 예수께서는 이 중요한 장에서 성취하실 두 가지 임무가 생기셨다. 첫째, 그는 새 공동체-교회-를 설립하시고 그것에 교훈과 지침들을 마련해 주실 필요가 있었다. 그는 그 일을 16:13-20에서 시작하셨다. 둘째, 그는 그의 죽음을 위하여 그의 제자들을 준비시키는 일을 시작하실 필요가 있었다. (207.4)
 마태복음 16:21은 두 번째 과제에 관계된 첫 번째 명백한 선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기 담긴 각각의 요소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207.5)
 예수에 따르면, 그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야만 했고”

     유대인들의 손에 “많은 고난을 받아야 했고”

     “셋째 날에 살아나실 것이었다.” (208.1)
 흥미롭게도 저 요소들의 대부분은 이미 마태복음에 암시되어 왔다. 즉, 그들이 예수를 죽이기를 원하는 지점까지 도달할 유대인 지도자들의 반대(2:1-6; 9:34; 12:1-8, 14), 예수 자신이 인식하신 고난당하는 종으로서의 자신의 역할(12:15-21), 그리고 죽음에 대한 그의 승리(12:40; 16:4)가 그것이다. 이것들 모두가 마태에 의해 제시되어 왔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16:21에서 예수께서는 그의 의미가 더 이상 무시될 수 없도록 아주 명백한 방법으로 그의 계획을 공개하신다. 그는 그의 봉사에서 위기 지점에 도달하셨다. 그의 제자들은 마침내 그가 메시야임을 깨달을 것이다. 이제 그는 메시야가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들에게 납득시키는 일을 시작하셔야만 한다. (208.2)
 예수께서 그가 고난 당하고 죽으시기 위해 올라가야 할 것에 대해 말씀하고 계심을 주목하기 바란다. 그가 가서 죽으시는 것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사실상, 그것이 그가 이 땅에 오신 바로 그 목적이었다. 그는 훌륭한 생애를 사기 위해서 뿐 아니라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20:28) 위하여 오셨다. 그는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구원의 계획에서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 사항이 아니었다. 저 대속적인 죽음이 없다면, 구속의 계획 자체가 없을 것이다. (208.3)
 그러나 제자들은 그 요점을 직관적으로 명백하게 꿰뚫어 볼 수 없었다. 그들은 메시야가 그 나라의 원수들을 전복시킬 정복하시는 왕이 되실 것이라는, 유대인들 가운데 보편적으로 퍼져있던 견해를 갖고 자라났었다. 또한, 제자들은 그런 형태의 메시야로부터는 얻을 것이 상당히 많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예수의 “내각”(內閣)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곧 도래할 왕국에서 가장 높은 열 두 명의 관리들이 될 것이었다. (20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