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출애굽기 제 III 부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심 (출애굽기 19-24장) 제 8 장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심 (출애굽기 19, 20장)
 만약 이웃의 재산을 탐내는 것이 재산을 직접 취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이미 도적질하지 말라는 계명에 금지되어 있는 것이다. (220.4)
 이제 우리는 이 단어 본래 의미를 살펴보기로 하자. 탐심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을 소유코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마음에 해(害)가 되는 심적 상태를 의미한다. 자신의 권리로 행사할 수 없는 무엇을 갈망하고 열망하고 소유코자 하는 마음이다. 탐심은 다른 신앙 또는 신앙의 경험을 갈망하는 것으로 이는 우상숭배인 동시에 처음 네 계명을 범하는 동시에 인간관계와 관련된 나머지 계명도 범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된다. (220.5)
 신명기 5장에 나타난 이 계명은 출애굽기 20장의 계명과는 사뭇 다르다. 이웃의 집과 아내의 순서가 바뀌어 있고 신명기에는 땅을 집과 함께 탐내지 말아야 할 것으로 함께 포함하고 있다. 가장 많이 논쟁이 되는 부분은 두 번째 성경절에 나타난 탐심(covet)에 해당하는 히브리 단어의 선택이다. 영어 성경 NIV에는 “탐(covet)”하다는 단어 대신에 “마음을 두다(set your desire)”로 번역함으로 그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차이가 의미에 상당한 변화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220.6)
 아홉째 계명까지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올바른 행위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셨다. 열째 계명은 올바른 태도와 생각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고 계심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내적인 마음가짐에 관한 계명을 범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죄이자 다른 나머지 죄들을 범하는 것이기도 하다. (221.1)
 십계명을 연구할 때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원칙을 마음에 염두에 두어야 한다. (221.2)
 첫째로, 이 계명들은 출애굽이라는 구원의 역사적 사건 이후에 발생한 언약이라는 문맥 속에서 연구되어질 때 올바로 관찰되어질 수 있다. 단순한 율법으로의 십계명은 아무런 힘이 없다. 십계명에 부언된 내용들은 구원의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언약을 세우셨다는 구원의 개인적 차원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십계명에는 규례가 아닌 개인적 그리고 관계적 성격이 드러나 있다. 이것을 범하는 것은 단순히 율법을 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자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 된다. 이것이 십계명이 지닌 능력이자 독특함이다. (221.3)
 둘째로, 이 십계명은 진실로 범 우주적이다. 필자는 여러 곳에서 살았고 여러 곳에서 목회하였다. 또 고대와 현대 역사도 공부했다. 십계명의 시대와 문화의 적응력은 놀라운 것이다. 십계명에 축약된 원리가 이상적인 것으로 볼 수 없는 문화는 없다. (221.4)
 셋째로, 오늘날 우리는 십계명을 다시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 많이 권리와 특권에 이야기 하지만 의무와 책임에 대하여는 너무나 적게 이야기하고 있다. 십계명에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구원과 그 결과로 나타나는 의무 등은 다시 곱씹어 볼 만하다. 출애굽 사건의 문맥 속에 천명되어 있는 십계명은 오늘 우리 사회의 필요들과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 (221.5)
 백성들의 응답
 백성들은 모두 공포에 떨고 있었다. 아마도 공포로 전율하고 있었을 것이다. 백성들은 충분히 보았고 들었고 경험하고 있었다. 백성들은 모세가 대변해 주기를 원했다. 그들은 모세의 말에 경청할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직접 말씀하신다면 그들은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공포로 떨고 있었다. 모세는 능동적으로 대처했다. (222.1)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강림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치 않게 하려 하심이라”(20절). 모세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어떻게 이 모든 것이 시험이 되며 이 경우에 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222.2)
 “시험하다” 또는 “증명하다”라고 번역된 단어는 “보다” 또는 “경험”하다 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듀헴은 이 구절을 “하나님께서 강림하시는 경험을 백성에게 주기 위함이다”라고 해석하고 있다(Durham의 Exodus 301, 303 참조).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당신의 임재를 직접 경험하기를 원하셨다. 이렇게 함으로 백성들은 존경과 경외심(이 문맥 안에서 “공포(fear)”라는 의미로 더 잘 표현된다)을 갖게 되며 십계명을 범하는 죄를 범하지 않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222.3)
 상기의 성경절과 평행을 이루는 신명기 5장 중 특별히 24절은 이러한 번역 또는 해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 구절은 출애굽기 20:18에서처럼 하나님을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모세오경의 사마리아 번역서에는 실지로 신명기 5:24-27출애굽기 20:19에 삽입하였다. (222.4)
 이스라엘이 시내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은 그들로 하여금 공포로 사지가 얼어붙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존경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거룩한 경외함은 의로운 행동에 대한 강한 동기로 모세오경의 많은 곳에 나타난다. (222.5)
 모세는 다시 하나님을 대면하기 위하여 시내 산에 오른다. 모세는 백성들의 요구를 유념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더욱 많은 명령을 가지고 계셨으며 모세는 그것을 듣고자 시내 산에 오른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서 어떠한 명령을 주셨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222.6)
 이스라엘의 경배
 하나님의 중요한 계시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과 같이 경배의 문제 역시 절차가 필요하다. 출애굽기 20:22-26도 예외는 아니다. 시내 산에서의 범상치 않은 자연현상은 제단의 규례를 논하는 가교(架橋)역할을 한다. (223.1)
 이 제단의 규례는 모든 율법을 시작하는 머리말 같은 부분으로 종종 언약서라고 부른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언약서(covenant code)에 관하여 자세히 다룰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이 법규가 하나님께서 과거에 이스라엘에게 역사하신 것을 강조한 십계명과 같이 동일한 방법으로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십계명은 언약서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말씀하신 것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시작되는 반면에 출애굽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223.2)
 제단을 쌓을 때 허락되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신상을 만드는 것을 금하고 있는데 특별히 금과 은과 같은 귀금속으로 신상을 만드는 것이 금지되었다. 제단의 돌은 쪼거나 다듬어서 사용할 수 없었다. 금속 연장을 사용하여 만든 단은 부정한 것으로 여겼다. 제사장의 하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단에는 층계를 만들 수 없었다. (223.3)
 우상과 신상을 만드는 것은 극명하게 금지되었으며 십계명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된다. 한 가지 차이점은 금과 은의 언급이라는 것이다. 귀금속을 사용하여 우상을 만드는 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곁길로 가도록 하였다. 이러한 귀금속을 사용하여 우상을 만드는 행위는 십계명에 금지되어 있었다. (2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