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출애굽기 제 III 부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심 (출애굽기 19-24장) 제 8 장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심 (출애굽기 19, 20장)
 그러므로 안식일은 모든 이들에게 평등한 날이다. 남녀노소, 종이나 자유자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부자나 가난한자나 모든 이들이 이날에 쉬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안식의 축복을 편애(偏愛)하지 않으신다. (214.7)
 신명기 5:12-15에 나타난 안식일 계명은 출애굽기의 안식일 계명과는 사뭇 다르다. 신명기는 “안식일을 지키라”고 되어있는 반면에 출애굽기는 “안식일을 기억하라”고 되어 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명기가 안식일 준수에 대한 상이한 근본적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출애굽기가 하나님께서 창조를 마치신 후에 쉬셨으므로 우리가 안식일을 쉬어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반면에 신명기는 애굽에서 출애굽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느 것이 옳은 것인가? 하고 질문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양쪽 모두 옳기 때문이다. 인간은 창조를 할 수 없었고 출애굽을 이룰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이것들을 이루셨다. 우리가 반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께서 창조와 구속의 기념일로 명하신 그날에 쉬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 계명이 변경되지 않았고 안식일 준수의 근본적 이유와 설명이 확대될 수 있다. 쉼에 대한 명령은 변하지 않았지만 쉼에 대한 이유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풍성하게 되었다. (214.8)
 모든 것에 여유가 없이 쫓기며 투쟁하듯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계명이 있다면 그것은 안식일 계명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부단히 노력하지만 자신을 만족시키기에 급급하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우리는 안식일에 쉼으로서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15.1)
 제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215.2)
 우리 이웃에 대한 의무와 책임은 우리의 부모로부터 시작된다. 가정은 사회에서 가장 작은 단위이다. 이 땅에 우리를 탄생하도록 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가정은 건강한 가정일 될 수 없다. (215.3)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순종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존경과 사랑과 관심을 의미한다. 이 세상에 자녀가 끊겼던 세대는 한 번도 없었다. (215.4)
 이 계명은 성인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어린이들은 어느 정도 강제적으로 순종을 강요할 수 있다. 문제는 성인들이 그들의 부모가 어떤 특별한 보살핌을 필요로 할 때 그들의 책임을 게을리 하기 때문이다. (215.5)
 이 율법을 범하는 극악한 행위에 대한 엄격한 제재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존재했다. 부모에게 폭행을 가하거나 저주를 하는 자들은 죽음의 형벌을 받았다(21:15, 17).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얼마나 이 계명을 심각하게 다루었는가를 증명하고 있다. 가정의 파멸은 하나님 백성의 파멸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러한 율법을 어기는 행위는 엄하게 다룰 필요가 있었다. (215.6)
 이스라엘은 가부장(家父長)적 사회였다. 이 계명과 함께 가정과 관련된 대부분의 율법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특별히 어머니가 언급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어머니는 이러한 문제들과 관련하여 아버지와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했으며 동등한 대접과 존경을 받을 권리가 있었다. (216.1)
 다시 언급하건데, 신명기 5:16은 출애굽기의 계명과는 사뭇 다르다. 한 가지 상이한 점은 그리 중요하지 않고(“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다른 하나는 매우 중요한 것을 내포하고 있다. 출애굽기가 순종에 대해 한 가지 약속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신명기서는 두 가지 약속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이 그들의 부모를 공경할 때 약속된 땅에서 만사형통할 것이다. 다시 말해 네 번째 계명에서와 같이 기본적 계명은 변하지 않지만 모세는 계명의 언약 부분을 첨가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었다. (216.2)
 제6계명
 “살인(殺人)하지 말지니라.” (216.3)
 NIV 번역이 KJV보다는 더 정확하고 분명하다(“kill”“murder”을 비교하라). 죽이다(kill)라는 단어는 보편적으로 불교도 또는 동물 보호론자들이 동물도 사람과 같은 권리가 있음을 언급할 때 사용하지만, 성경에서는 이 단어를 동물과 관련하여 사용하고 있지 않다. 죽이다라는 단어는 또한 사형이나 전쟁과 관련된 문제는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일으킨다. 분명한 것은 구약의 신정시대(神政時代)에 사형제도가 있었으며 전쟁 중에는 사람을 죽였다. 살인의 본질적 의미를 살펴보기로 하자. 필자는 사형제도에 관하여 반박하고자 함도 아니요 그렇다고 반전주의(反戰主義)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구약에 나타난 사실들을 있는 그대로 진술하고자 한다(반박하는 주장들에 관하여는 Fretheim의 책, 233 참조). (216.4)
 하지만 우리는 이 단어의 의미를 너무 제한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 단어는 종종 우발적 살인을 언급하거나(신 4:41, 42; 19:3, 4, 6), 기소된 살인자의 처형을 언급한다(신 35:30). (216.5)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악의나 증오 또는 사기 등에 기초한 폭력 행위는 용납되지 않았다. 폭력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공동체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었다. 하나님은 생명의 주인인 동시에 생명의 권리를 행사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죽음과 폭력의 위협 없이 누구나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가 있는 것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자는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자신의 신분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217.1)
 제7계명
 “간음(姦淫)하지 말지니라.” (217.2)
 고대 근동과 구약시대에 간음은 “큰 죄”로 불리었다. 간음에 비록 남자가 보다 많이 언급되지만, 남자와 여자 모두를 간음의 주체로 다루었다. 비유적으로 간음은 하나님과 언약(“혼인”)의 관계를 깨뜨리는 우상숭배를 의미한다. (217.3)
 구약시대에는 결혼한 남성이 다른 결혼한 여성 또는 약혼한 여성과 성관계를 갖는 것, 그리고 결혼한 여성이 다른 남성(아마도 결혼한 남성, Durham의 Exous 참조)과 성관계를 갖는 것을 간음으로 규정했다. 부부간의 부정에 관하여 구약에는 약혼한 여성을 결혼한 여성과 동일하게 취급함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약혼과 정혼에 대한 그들의 신중한 견해를 반영하고 있다(신 22:23-29). (2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