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출애굽기 제 III 부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심 (출애굽기 19-24장) 제 8 장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심 (출애굽기 19, 20장)
 실질적 우상의 위험은 하나님을 지역화 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손으로 우리가 꾸민 환경 속에 우리가 모시기 가장 쉬운 곳에 모셔놓고 그분을 만나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그분을 우리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게 되고 그분을 우리의 방식대로 우리의 목적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211.5)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많은 것들이 우상이 된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기 위해 사용하는 개인적인 예배 장소 또는 특별한 교회, 신전 등은 그분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언제든지 어디든 나타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게 된다. (211.6)
 이 둘째 계명의 후반부는 자주 잘못 이해되어져 왔다. 그 이유의 상당 부분은 KJV의 5절을 문자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 그분을 미워하는 자의 죄를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벌주시겠다고 선언하신다. 이와는 반대로 당신을 사랑하며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NIV)까지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하셨다(NIV의 초기 번역판에는 대(代)라는 말이 없었다). (212.1)
 KJV은 대(代)라는 단어를 누락시켰다. 히브리어 본문에는 없는 단어가 문맥상 그런 뜻을 담고 있기 때문에 영어 성경에 등장하게 되었다. 삼 사 대까지 벌주시겠다는 것과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시겠다는 사실이 분명히 대조를 이루고 있다. (212.2)
 어원연구(Getting Into the Word) 부분의 제안을 읽어 보면 이 성경절이 신명기 5장을 제외한 모세오경의 세 곳에 조명(照明)되어져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 각각의 성경구절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강조되어져 있는데(신 7:9), 대(代)라는 단어가 실질적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문맥상 그리고 유사한 성경절 등이 NIV의 번역을 지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212.3)
 이와 같은 까닭에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은혜로운 분이시다. 심판과 축복과 구원이 있다. 하지만 그분의 사랑과 자비로운 품성이 우선한다. 죄의 결과는 삼, 사 대에 이를 수 있지만, 사랑과 의(義)의 결과는 천대에 이르게 된다. (212.4)
 제3계명
 창조주 여호와를 어떤 형상으로 붙잡아 둘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성호를 존중하고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될 것이다. (212.5)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20세기 대중적 신학은 이 계명을 하나님의 이름을 맹세하는데 사용하는 관습과 연관시켜 왔다. 이러한 관습은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하다”라는 KJV 번역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212.6)
 이러한 관습은 확실히 여호와의 이름을 오용(誤用)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습은 이스라엘이 지닌 문제는 아니었다. 그들은 결코 그와 같은 우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너무나 존엄했기 때문에 가장 신성한 종교적 관습들에서조차도 쓰여질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이름을 경박하게 사용하는 신성 모독은 대단히 심각한 것으로 죽음의 형벌에 처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213.1)
 이스라엘에게 특별히 문제가 되었던 것은 아마도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약속이나 서약의 신용을 입증하기 위하여 맹세하는 행위를 내포하고 있다. 개인적 거래나 사업상 사람들은 자신의 말이 진실됨을 확신시키고자 종교적 상징이나 이름 또는 존재를 들어 맹세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하나님의 이름은 종종 개인의 사적인 목적이나 사람을 사취(詐取)하는데 사용되어 공공연하게 오용되었다. 이 계명은 다른 사람을 저주하거나 주술적 주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도 포함하고 있다. (213.2)
 이러한 까닭에 이 계명은 개인적 이익이나 욕심을 위하여 하나님의 품성을 희생시키며 그분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하나님 믿는자임을 주장하며 온당치 않은 방법으로 사업을 벌이고 또 남을 속이는 자들은 이 계명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213.3)
 이 계명의 가장 중요한 언급은 주 여호와의 이름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그분은 그저 그런 평범하신 신이 아니라 은혜가 풍성한 출애굽의 하나님으로 어떤 것으로도 그분의 품위를 손상해서는 않될 것이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선교적 목적과도 부합된다. 만약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에게 하나님을 가르칠 때 또 그들을 상대할 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하나님을 올바로 소개해야 할 것이다. (213.4)
 제4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214.1)
 이제 우리는 십계명중 가장 긴 계명에 도달했다. 이 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의무들과 관련시켜 결론을 맺는다. (214.2)
 비록 이 계명이 특별히 안식일에 예배를 드릴 것을 명하지 않았지만 이 날은 하나님을 위하여 특별히 구별된 날이다. 이날은 “구별된”(거룩한) 날이다. 이와 같은 날을 지정함으로 이날은 예배의 날이 되었다. (214.3)
 이 계명은 이날에 만물이 쉬도록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우주를 창조하시며 일곱째 날에 쉬셨다. 그분께서는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셨으며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으며 우리에게도 쉴 것을 명하셨다. (214.4)
 왜 쉬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가? 우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사회적으로 쉼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안식일은 또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실로 역사하고 계심을 상징하고 있다. 우리가 일곱째 날에 쉬는 것은 특별히 창조와 구원과 같은 모든 것들이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우리가 그와 같은 것들을 불러 올 수 없지만, 그분이 선물로 주신 그날에 단순히 쉴 수는 있다. (214.5)
 이날은 순전히 인간을 위한 날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쉬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녀와 종과 육축과 객들이 모두 쉬었다. 모든 인간과 육축이 그 날에 쉼으로 복을 받았다. (2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