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의 요한계시록 연구 요한계시록 2, 3 — 그리스도께서 일곱 교회에 편지하심
 서론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그리스도의 편지는 가정 성경 연구 모임을 재미있고 유익한 모임으로 만들어 줄 토대를 갖추고 있다. 아이들은 글을 읽을 정도만 되어도 “2, 3장의 기별”에서 소개되는 것과 유사한 일곱 교회 도표를 만들 수 있다. (89.1)
 또 아이들로 하여금 개략적인 눈금을 그리게 할 수 있다. 그 다음에는 매일 몇 분동안 그들로 하여금 어른들과 함께 네모꼴속에 기록할 항목들을 찾아내게 한다. 점차 요령이 생기기 시작하면 새로운 항목들, 예컨데 예수님에 대한 묘사, 경고, 특별 약속 등을 먼저 발견해내는 일에 열성이 생기기 시작한다. 온 가족이 성경의 용어를 개작하여 빈칸에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드는 일에 협조할 수 있다. 도표를 부엌에 있는 게시판에 꽂아 놓으면 온 가족이 칸 메우는 작업의 진행을 알 수 있다. (89.2)
 누구나 요한계시록 2, 3장에 있는 약속들을 암송할 수 있다. 예컨데,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든지 또는 “누구든지∙∙∙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같은 구절이다. (89.3)
 이런 과정을 통해 자녀들은 예수님이, 서투른 그리스도인들 즉 아직도 예수님과 같이 되기 위해 배우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지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갖게 된다. (89.4)
 필자는, 교회에 자신들이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또는 교인들이 위선적이라는 이유로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완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음을 알고 계신다(요 2:25). 그러나, 얘수님 자신이 매우 성실한 교회 출석자였다, 그분은 요한계시록 1장 20절의 일곱 금촛대는 “일곱 교회”를 대표하는 것이라 하셨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장 1절에서 자신을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로 표현하셨다. (89.5)
 진정한 친구는 우리의 약점들을 알고 있으며 그 약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동일하게 사랑한다. (89.6)
 필자는 어느 날 저녁, 목회 방문을 마칠 무렵에 나이 많은 한 여신도에게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여인을 초청해 함께 기도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 여신도는 “우리는 각자의 방에 가지 않기로 서로 약속했다”고 말하면서 난색을 표하는 것이로다. (89.7)
 하나님은 불필요한 장벽을 쌓지 않으시며 우리에게도 그런 일을 바라지 않으신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면 우선 가까이 가야한다는 것을 아신다. 서로의 대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일을 해야 한다. (89.8)
 

계시록의 주요 이상들은 대부분은 하늘 성소 장면과 더불어 시작되고 있다. 일곱 교회에 주시는 기별을 받기 전에 요한은 예수께서 촛대들 사이에 계시는 것을 보았다.
(90.1)
 히브리서 10장 23~25절에서 말하기를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하였다. (91.1)
 예수님께서 촛대 사이를 거닐고 계시다. (91.2)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 103:13, 14) (91.3)
 일곱 “천사”
 요한이 이 일곱 편지를 일곱 교회의 천사들에게 쓰도록 지시 받았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천사들이 요한계시록에 자주 등장하는데 대개의 경우 그들은 초자연적인 존재들이다. 요한에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초자연적인 하늘의 천사들에게 편지를 쓰라고 하신 것은 납득하기 어렵게 보인다. (91.1)
 그런데, 천사라는 뜻의 영어 엔젤(angel)은 희랍어 앙겔로스(aggelos)에서 파생된 것인데 그 본래의 뜻은 “사자(使者)”이다. 하나님의 하늘 사자들은 분명히 초자연적인 존재들이다. 그러나, 희랍어 앙겔로스는 초자연적이 아닌 보통 어의(語意)의 사자 혹은 사자들로 마가복음 1장 2절, 누가복음 7장 24절, 누가복음 9장 52절, 야고보서 2장 25절에 번역되었다. 위의 구절에서는 사자들(또는 “천사들”)이

 (a) 침례 요한,

 (b)침례 요한의 제자들,

 (c)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

 (d) 두 첩자들一등 모두 인간들을 가리키고 있다. (91.2)
 일곱 교회의 인간 천사 또는 인간 사자들은 하나님의 기별을 그 회중에 전달하는 사신(목사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들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의 오른손에 이 “천사” 사신들을 붙잡고 있다고 하였다(계 1:16; 2:1). 여러분의 가족들로 하여금 여러분의 목사님들을, 예수님의 손 안에 붙잡혀 있는 별로 상상하도록 해보라. 목사들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91.1)
 일곱 교회의 신원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일곱 교회에 편지를 쓰도록 지시하셨을 당시, 이 일곱 도시에는 그리스도인 집단이 존재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이들 일곱 도시들은 요한계시록에 기술된 순서대로 방문할 수 있도록 로마의 국도(國道)로 연결되어 있었다. 로마 제국의 우체국 관리들은 체신 업무를 위해 정기적으로 이 도시들을 순회했을 것이다. W. M. 람지(Ramsay)는 그의 고전적인 저서「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서한(書翰)」에서 말하기를 “일곱 교회는 모두 가장 인구가 많고 부유하며 영향력이 큰(아시아의) 지역을 함께 묶는 대 순환 도로(循環道路)상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했다.1 (91.1)
 요한계시록처럼 상징이 많이 나오는 책에 소개되는 이 기별을 당시 이 일곱 도시에 위치했던 일곱 교회에만 한정된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인가? 아니면 이 일곱 교회는 모든 상이한 시대의 서로 다른 교회의 다른 상태들을 나타내는 것인가? 아니면 일곱 교회는 요한의 시대로부터 세상의 끝까지 이어지는 전체 기독교의 경험의 연속적인 일곱 단계를 나타내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일곱 편지에 나타난 기별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인가? 위의 모든 가능성들을 아래에서 검토해 보기로 하자. (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