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교회조직이나 보다 나은 방법도 아니고 새로운 조직을 짜는 것도 아니고 성령께서 사용하실수 있는 기도의 사람, 기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성령께서는 기술을 통하여 공급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통하여 부어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인간의 계획에 기름 부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 기도의 사람에게 부어주십니다.”E.M. 바운즈(32.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의 마지막 모임에서 그들의 생애에서 무엇인가 빠져 있기 때문에 그것이 없이는 그들 앞에 놓인 사명을 완수할 수 없기 때문에 전도하러 나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니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행 1:4, 5) (32.2)
마지막 말은 무언가 중요하고 힘이 있는 말입니다. 내가 여행을 갈때마다 가족과 포옹을 하면서 항상 마지막 말로 “사랑한다, 얘들아, 나는 너희들이 보고 싶을 거야”라는 말을 남깁니다. 나는 가족들이 내가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확신하기를 바랍니다. 내가 필요로 해서 여행을 가지만, 내 마음은 내가 멀리 떠나 있는 그 시간에도 가족과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말은 중요합니다. 이 말은 여러분들이 떠나 있을 때에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32.3)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가 하신 말씀을 기억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더 많은 돈이나, 더 좋은 상태나, 더 좋은 지위나, 영향력이나, 기술이나, 지식이나, 명망이나 경험을 기다리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능력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32.4)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행 1:8). 그리스어로 사용된 권능이라는 단어는 “두나미스”(폭발적)이라는 말입니다. (32.5)
이 두나미스라는 말은 “다이나마이트”라는 말에 그 어원을 두고 있습니다. (32.6)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한 권능은 거저 간단한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다이나마이트처럼 폭발적인 능력이었습니다! 강력한 능력! 세계를 뒤흔들만큼 강한 폭발력을 지닌 것이었습니다. (32.7)
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런 권능을 제공했을까요? 왜냐하면, 성령의 폭발적인 능력만이 예수님에 대한 증인인 우리를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능력도 이 두나미스의 권능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사용되는 그런 권능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책의 네 장을 통하여 이 두나미스 권능을 살펴볼 것입니다. (32.8)
여러분은 다이나마이트의 폭발력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공사장에서 인부들이 이 다이나마이트를 두 부분에서 주로 사용 하는데 한 곳은 낡은 건물을 부술 때 사용하고, 다른 부분은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해 공간 확보를 위해 사용합니다. (32.9)
건축 노동자들은 다이나마이트를 오래 된 건물의 리모델링하거나 고치는데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고치는 데는 너무 많은 힘이 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이나마이트는 건물을 파괴하거나 새로 시작하기 좋게 하기 위하여 사용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폭발적인 능력(두나미스)만이 존경받는 유대인이 되게 하고, 사마리아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직 이 두나미스의 능력만이 제자들 앞에 놓인 도전에 직면한 문제들을 충분이 해결할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오직 이런 능력을 통하여 세상에서 증언을 할 수 있고 세상을 어지럽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다르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우리가 사는 도시나, 살고 있는 주나, 나라나 세상에서 이웃 공동체에 차이를 보이기를 원하신다면, 우리 전도사업이나, 우리 생활에서 성령께서 제공하는 두나미스 능력을 가지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32.10)
두나미스의 능력이 없다면, 우리의 기대는 낮아지고, 예수님을 위한 효과적인 증인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32.11)
낮은 기대들
얼마 전 나는 한 교회 전도단의 설교자가 되어 줄 것을 초청을 받았습니다. 전도회 첫날 우리는 사람들이 많이 왔고, 방문자들도 많이 참석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 그 교회의 지도자 중의 한 분이 내게 다가와서 “목사님 오늘 저녁에는 많은 사람이 참석했지만 내일은 일요일이고 사람들이 할 일이 많고 해서, 아쉽게도 참석자들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잠깐동안 나는 그분의 언급에 대해서 생각을 가졌습니다. “잠깐,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겁니까?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오고 적게 오고를 나에게 말하는 것은 그분의 일이 아니지 않는가? 그 일은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고,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도록 기도하고 그들을 초청하는 일이 교회 지도자들의 할 일이지 않는가?” 이 교회 지도자들은 성령님을 우습게 알고 있었습니다. 이 지도자들의 설명은 하나님의 성령님께 도전적이었습니다. 성령께서 그와 같은 말을 들으실 때 그분의 마음은 어떻게 느끼게 되겠는가? 사람들이 일요일 저녁에 한가한 시간이 나서 참석하게 된다는 말인가? 우리는 성령님의 활동하지 못하도록 우리 믿음의 부족으로 막고 있지는 않는가? (32.12)
그날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일요일에도 참석할 수 있게 도와주시기를 열렬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였습니다. 다음날에도 나는 토요일에 참석한 사람보다 훨씬 많게 사람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강력하게 기도를 했습니다. 집으로 오는 도중에도 기도를 했고, 집에 돌아와서도 기도했으며, 일요일 아침부터 오후까지 기도를 계속 했습니다.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고 전도회에 참석하려는 한 사람 한사람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일요일 저녁에, 그 날 저녁 지도자들이 비웃었던 하나님의 성령께서 전도회전에 내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리고 토요일 저녁에 참석했던 사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교회가 가득 찼습니다. 두나미스의 능력이 없다면 우리의 기대는 낮아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을 위한 효과적인 증인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32.13)
만약 내가 그 지도자분의 설명에 동의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요? 만일 내가 똑 같은 보잘 것 없는 결과를 기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의 성령께서도 분명히 그렇게 하셨을까요? (32.14)
성경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성령께서도 우리 생활에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두나미스 능력이 없이는 좋은 일도 일어나지 않고, 깊은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두나미스 능력이 없다면 전도단에서 기대하면서 행한 일들이 보잘것 없는 결과로 끝나 버릴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없다면,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위하여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32.15)
생각해 볼 문제
1. 여러분은 여러분의 전도사업이나 여러분의 생애를 통해 하나님께서 위대한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믿음에 낮은 기대를 해 보셨습니까? (32.16)
2. 여러분은 여러분의 전도활동에서 성령의 역할에 관하여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3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