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손을 내밀라 제 2 장 중보적 치유의 기적들 기적 4 ► 벙어리가 말하며 보게 된지라
 본문 : 마 12:22-32, 참조: 막 3:20-30, 눅 11:14-32
 AD 30년 여름 일단의 사람들이 예수님께 귀신들려 눈 멀고 벙어리 된 불쌍한 한 사람을 데리고 왔다. 그를 보신 주님께서는 귀신이 그 사람을 벙어리 되게하고 장님 되게 한 것을 즉시 간파하셨다. 귀신 곧 사단의 부하들은 사람을 괴롭히고 고통을 가하며 온갖 못된 짓을 저지른다. 귀를 먹게 하고, 병들게 하고, 미치게 하며, 인성(시生)을 파괴시켜 짐승같이 울부짖게 만든다. 귀신은 참으로 고약하고 못된 놈이다. (109.1)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까지 됐으니 얼마나 가련한 사람인가! 그들은 예수님께 그 불쌍한 자를 치유해 달라고 간청했다. (109.2)
 “주님, 이 미친 자를좀 고쳐 주십시오.” (110.1)
 귀신들려 보지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불쌍한 환자를 한참 쳐다보시던 주님은 연민의 정을 억제할수 없으셨다. 주님은 사단의 일을 멸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귀신들린 자를 고쳐 달라는 요청을 거절하지 않으신다. 드디어 언어 장애(言語障礙)와 시각 장애(視覺障礙)를 일으켜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 귀신을 향해 명령하셨다. (110.2)
 “이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벙어리가 되게 한 못된 귀신아 썩 물러가라” (110.3)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을 훤히 보시며 추상 같은 명령을 내리신 것이다. 귀신은 주님의 추방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여 즉시 환자에게서 떠나갈 수밖에 없었다. 놀라운 사실은 귀신이 떠나가자 곧 그 사람은 보게 됐고 말하게 됐다는 것이다. 원인이 제거됐기 때문이다. 아무튼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다. (110.4)
 말문이 열린 그 사람은 감격에 차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펄쩍펄쩍 뛰며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했고 보게 해주신 주님께 “주님 감사합니다”를 연거푸 발하며 마음껏 사례를 드렸다. 그러나 일부의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 기적에 두 갈래로 반응하였다. (110.5)
 첫째, 기적에 놀란 사람들의 부정적인 반응이다. (110.6)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110.7)
 다윗의 자손이란 곧 메시야를 말한다. 부정적인 물음은 부정적인 답을 기대하기 때문에 이 말은 메시야일 리가 없다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너무나 보통 사람과 같아서 외양(外樣)에서는 메시야의 증표(證票)를 찾아볼 수 없었다. 화려함이나 기품(氣品)도 없었고 군대도 거느리지 않았으며 그저 소박한 시골뜨기에 불과했다.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라고 이사야가 예언한 그대로였다. 그들은 단지 예수님을 크신 교사(요 3:2)나 선지자(마 21:11)로만 생각했지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야라고는 믿지 않았다. 그래서 “무리가 다 놀라 가로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는 반응을 나타냈던 것이다. (110.8)
 둘째, 바리새인들의 엉뚱한 반응이다. (111.1)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111.2)
 이것은 아주 황당무계(荒唐無權)한 소리였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매우 경멸하는 언어로 “이가”라고 했다. “이 사람이”(눅 15:2) 혹은 “이 녀석”이라는 뜻이다. “바알세불”“땅의 왕”, “바알은 왕이다”, 혹은 “파리의 주”라는 뜻이다. 그들은 성령의 역사를 사단의 역사로 말하여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느니라”고 한 것이다. (111.3)
 예수님께서 저희들의 반응을 아시고 다음과 같은 3가지 논증을 사용하여 그들 주장의 불합리성(不合理生)을 드러내었다. (111.4)
 첫째, 주님께서 사단의 나라에 스스로 분쟁하는 것을 지적하셨다. (111.5)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리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사단이 만일 사단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111.6)
 이 말은 만일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그것은 곧 귀신 세계에 불화와 분열이 있는 내란(內亂)일 뿐이라는 뜻이다. 사실 내란은 그 나라의 종국(終局)을 의미한다. 아무튼 예수님은 이 논증으로 자신은 귀신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하셨다. (111.7)
 둘째, 그 당시 유대인 사회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불러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쳐 주는 무당들이 있었는데(막 9:38;행 19:13),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정죄하지 않았고 오히려 성령의 역사로 보았다. 그분은 이 사실을 지적하셨다. (111.8)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저희가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