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야고보서 제III부 참 지혜 (3:1-18) 7. 거짓 지혜와 참 지혜 (3:13-18)
 야고보는 혀의 오용에 관한 토의(3:1-12)에서 지혜에 대한 분석(13-18절)으로 화제를 바꾸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두 부분은 통합된다. 첫 번째로, 13-18절에서 야고보가 분석한 지혜의 두 유형은 혀의 사용에 대한 것과 대구를 이루고 있다. 즉, 혀의 오용(1-12절)은 그 상부에 있는 거짓 지혜(14-16절)에 대한 표징인 것이다. (161.1)
 두 번째로, 두 부분 모두 논쟁, 분쟁, 알력의 문맥이 배경을 이룬다. 야고보서 3:1-12은 혀가 모든 악의 뿌리임을 예증한다. 13-17절은 그 공동체의 화평과 결속의 부족이 거짓 지혜가 최고로 군림했던 사실에 기인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그 역(逆)도 사실이다; 참되고 성결한 지혜가 있을 때, 화평과 연합이 있을 것이다. (161.2)
 그의 요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야고보는 세 가지 일을 한다. 첫째, 그는 지혜 있는 사람을 옳게 행하는 사람으로 확증한다(13절), 즉 단지 옳은 일을 하도록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요, 실제로 그 일을 행하는 사람이다. 둘째, 그는 거짓 지혜의 영향, 성질, 결과를 묘사한다(14-16절). 그가 여기서 열거한 악은 바로 그 마귀로부터 기원된 세상적이요 정욕적인 것들이다. 셋째, 그는 참된 지혜의 일곱 가지 성격을 제시한다(17, 18절). 이 덕성들은 참된 성결의 특질들이요 그 기원이 하늘에 있다. (161.3)
 ■ 말씀에 들어감
 야고보서 3:13-18을 주의 깊게 두 번 읽은 후, 아래의 과제를 하라. (162.1)
 1. 이 구절에서 발견한 지혜의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특징들을 열거하라. 이제 잠언서를 읽어 보고(특히 1장8장) 그곳에서 발견한 지혜의 특징을 당신의 노트에 열거하라. 당신이 만든 두 개의 목록을 비교하고 대조하라. 두 목록을 기초로 하여 지혜를 정의하는 요약된 문장을 기록하라. (162.2)
 2. 당신의 노트를 두 단으로 나누라. 한쪽 면 상단에는 악이라는 단어를 기록하고, 다른 편 상단에는 덕이라고 쓰라. 각각의 단락에 야고보서 3:13-18에서 발견한 악과 덕의 목록과 갈라디아서 5:19-26에베소서 5:1-20에서 발견된 것들을 열거하라. 당신의 예배 집회에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목록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악과 덕도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것들을 열거하라. (162.3)
 3. 마태복음 5장로마서 13장의 화평에 대한 예수님과 바울의 교훈과 같은 주제에 대한 야고보의 교훈을 각각 비교하라. 유사점들을 기록하라. 이것들을 한 지체로서 개인과 교회에게, 심지어 더 크게는 사회에까지 동일하게 적용되는가? 그러한지 혹은 그렇지 아니한지 이유를 설명하라. (162.4)
 ■ 말씀을 탐구함
 지혜로운 사람이 확인됨
 야고보는 이 구절에서(3:13-18) 거짓된 지혜와 참된 지혜의 특징들을 펼쳐 보이려 한다. 하지만 명백하고 조직적으로 그 일을 하기 전에, 그는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라 확증되는 사람에 대한 구절을 시작하는 주제 문구로 제시한다. (163.1)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라는 시작 구절은 우리에게 누가 지혜로운 사람인지에 대한 단서를 주지 않는다. 야고보가,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1절의 선생들을 마음에 간직했음직도 하다. sophos(지혜로운)라는 단어는 선생들을 위한 전문 용어이다. 유대주의에서, 선생, 서기관, 혹은 랍비는 특별히 지혜로운 사람과 동일시되었다. 그는 가장 높은 지식과 실제적인 지혜를 가진 사람으로서 인식되어졌다. 그는 지식을 가진 전문가였다. 그때, 야고보는 같은 인물을 확증하기 위해 중복되는 범주들(선생과 지혜로운 자)을 사용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적용은 더욱더 광범위하다는 것이 훨씬 더 그럴듯해 보인다. 확실히 그는 더 넓은 공동체를 마음속에 가지고 있으며 그의 모든 독자들을 포함하려한다. (163.2)
 지혜 있는 사람은 적당한 생활양식과 선행으로 그의 지혜를 보이도록 요구받는다(13절). 이 권고는 그가 그의 행함으로 그의 믿음을 보이겠다고 그의 가상의 대적자에게 말했던 2:18의 야고보의 도전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같은 방법으로, 여기서 그는 본질적으로 말한다: “네가 지혜롭다면, 너의 행동과 생활에서 너의 지혜를 증명하라.” 비슷한 어조로 예수께서는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마 11:19)고 말씀하셨다. 야고보와 예수께서 강조하는 바는 종교나 지혜는 사색적이고 credal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초점과 강조점이 요구하고 믿고 생각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행하는 것이다. 올바른 믿음(Orthodoxy)보다 올바른 삶(Orthopraxis)이 지혜로운 사람에 대한 더 진실한 표징이다. 이것이 올바른 믿음을 감소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생활 양식이 신앙과 접목되지 않는다면, 후자는 그 가치가 줄어든다. 야고보는 이런 태도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그는 “행동이 말보다 더 크게 말한다”는 그의 입장을 계속해서 반복한다(1:22-27; 2:12, 13; 2:14-26). (163.3)
 진정으로 지혜롭고 지식적인 사람은 선한 삶과 적절한 행동으로 그의 지혜를 증명할 뿐만 아니라 그 같은 행동들이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꼴지워질 것이다(3:13). 이런 입장을 주장하면서, 야고보는 그 당시의 그레코로망 세계의 규범에 저항하고 있었다. 온유와 겸손은 일반적으로 추구된 덕성이 아니었다. 온유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굴종적이고, 비천하며, 품위 없는 사람으로 연상되었다. Leon Morris는 “거짓 없는 사람은 그의 권리를 옹호할 것이며 자신이 누그러뜨려짐을 허락치 않는 자라고 주장되었다. 사람의 온전한 권리와 적절한 지위에 조화되지 않는 것은 굴욕적인 것이었다. 경쟁자가 자신의 적절한 특권과 그와 부합되는 것을 침해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었다”(86)고 언급한다. (164.1)
 대조적으로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보증으로 온유와 겸손을 끊임없이 제시한다. 모세는 겸손에 대한 본보기로 제시된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민 12:3). 더욱이, 예수께서는 온유함의 중요성을 되풀이하셨다. 그분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라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듣는 자들에게 짐을 졌거든 그분께로 오라, 그러면 그들에게 쉼을 주실 것이라고 권하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8, 29; 23:8-11과 비교)고 그는 계속하신다. 온유와 겸손에 대한 동일한 강조가, 특히 잠재적인 갈등이 있는 상황에서, 바울의 서신과 다른 신약 기자들을 통해서도 발견된다(고후 10:1; 갈 6:1; 엡 4:2; 딤후 2:25; 딛 3:2; 벧전 3:15). 마찬가지로, 여기서 야고보도 그의 공동체에서 지혜 있고 지식 있는 사람은 그의 삶과 행동이 온유와 겸손으로 꼴지워지는 사람임을 확인한다. (164.2)
 거짓 지혜가 확인됨
 14-16절에서 야고보는 3:13에서 확인된 지혜로운 사람과 대조되는 특징들을 제시한다. 그렇게 함으로 그는 거짓 지혜를 확인하며, 그는 후에 참된 지혜와 대조할 것이다. (165.1)
 Sophie Laws는 야고보서와 “고린도전서가 시작되는 장에서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의 ‘당파’와 관련하여 논쟁하기 좋아하는 것을 비난하고(1:10-13; 3:3f), 그리스도인 ‘지혜’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제시하려 한(1:18-2:15; 3:18-21)”(160) 것과는 명백히 비교됨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비록 고린도의 상황과 야고보 공동체의 상황이 현저히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비슷한 악이 불화와 분열의 정신의 중심에 있음은 사실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런 악들은 고린도와 야고보 공동체에게만 제한되지 않는다. 바울의 서신들에는 대부분의 교회 안에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악의 목록이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바울은 그의 윤리적 교훈의 범주 안에 어떤 종류의 “고정된” 결과를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Debelius, 210). 예를 들어, 갈라디아서 5:20에서 우리는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을 발견한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12:20에서, 바울은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에 대하여 말한다. 야고보의 악의 목록은 그만큼 넓은 범위는 아니지만, 세 가지는 바울이 말한 모든 것을 포함하여 강조하기 위함이다. (165.2)
 야고보가 언급한 첫 번째 악은 zēlos(3:14; “악한 시기”)이다. 이 단어는 중성이며, 기본적으로 ‘열심 있다 혹은 질투하다’로 번역될 수 있다. 긍정적으로, “그것은 위대함과 선함의 어떤 모습에 직면했을 때 사람이 느끼는 숭고한 경쟁심을 의미할 수 있다”(Barclay, 91). 비느하스가 이스라엘 사람과 미디안 여인을 함께 창으로 찔러 하나님의 영예를 수호했을 때 명령받은 바가 바로 이런 “질투”의 유형이다(민 25:11-13). 혹은, 예수님의 경우에 있어서, 그분의 질투가 짐승들을 채찍으로 성전 밖으로 내어쫓으시고,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자들을 쫓아내게 했다(요 2:17). (1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