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아비가일이 인간을 통한,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일을 설명한다면 나발은 반대의 성향을 설명한다. 미묘한 방법으로 저자는 그를 사울을 대신하는 사람으로 묘사한다. 폴친은
24장의 사울처럼,
25장의 나발도 자비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다윗은 선을 악으로 갚은 사람을 죽이지 않기로 선택한다”(Polzin,
Samuel, 210, 211). 아비가일도 기도할 때에 나발과 사울을 연결시킨다:
“내 주의 원수들과 내 주를 해하려 하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25:26, 「새개정표준역」). 대사 전체를 통하여, 사울은 다윗에게 악을 행하려고 한다.
24장에서, 다윗은 사울을
“나의 아버지”(
11절)라고 부르고, 사울은 그를
“내 아들”(
16절)이라 부른다. 유사하게,
25:8에서 다윗은 나발에게 자기를 아들이라고 소개한다. 다윗에 대한 나발의 말도 사울을 말을 상기시킨다: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뇨?”라고 나발이 묻는다(
25:10). 이것은 골리앗과의 전장에 나온
“풋내기”에 관하여 던진 사울의 질문의 메아리와 같다(
17:56-58). 그리고 나발이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에 그는 매우 진리에 가까웠다:
“근일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2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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