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의 왕권의 마지막 날들은 극적인 장면들과 위기일발 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쫓기는 자가 두 번이나 쫓는 자를 수중에 넣었다. 한번은 우연히, 둘째는 작전으로 그리했다. 그러나 다윗이 증거물을 들이대었을 때에 사울은 다윗이 옳다고 선언하였고, 추적을 중지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사울은 그 자신의 말을 믿었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윗은 계속 이동하였다(24:22; 26:25). 참으로 그 마지막 사건 후에 다윗은 사울의 의도를 알고 너무 두려워서 다시는 사울을 보지 않으려고 블레셋으로 도망하였다. (181.1)
 이 장의 여러 사건 속에서 여호와의 손이 강하게 나타났다. 쉽게 사울을 처치할 수도 있었던 두 경우에 다윗은 여호와께서 사울을 자기의 손에 넘겨주셨다고 말하였다(24:10; 26:23). 그것은 다윗의 고결성을 시험한 것이었는가? 다윗이 나발의 집을 진멸하려고 했을 때, 여호와께서 아비가일을 통하여 다윗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보호하셨다. 아비가일과 다윗은 여호와께서 그를 제어하시려고 개입하셨다고 증거하였다(25:26, 34). 그리고 성경은 최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쳐죽게 하셨다고 말한다(38절). (181.2)
 저자는 다윗과 아비새가 사울의 진에 들어가서 사울의 창과 물병을 가져올 때에 여호와께서 사울과 그의 부하들을 “깊이 잠들게” 하심으로 그들을 보호하셨다고 말한다(26:12). 그리고 아말렉이 시글락을 약탈하였을 때에 다윗은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다(30:6). 그리고 노략물과 포로를 회복시키는 것은 여호와의 일이라고 말했다(23절). (181.3)
 그러나 만일 여호와께서 어떤 경우에 강력하게 임하신다면, 그분은 다른 일들에는 임하지 않으신다. 다윗의 손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후에 사울은 아직도 여호와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는 여호와께서 다윗의 정직함을 복주시길 원한다고 하였고(24:19) 다윗에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사울의 가족을 멸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라고 요구했다(21절). 그러나 두 번째 그런 일이 있은 후에, 다윗이 여호와의 이름을 열 번이나 언급했지만, 사울은 한번도 그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26:16-24). 그러나 후에 “꿈으로나 우림으로나 선지자로나”(6절)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이 신접한 여인을 찾아간 첫째 이유였음에도 불구하고 엔돌의 여인을 해하지 않으리라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한다(28:10). 마지막으로, “떠나간” 사무엘이 사울의 운명을 확인하는데, 여호와의 이름을 일곱 번이나 말하였고, 여호와께서 사울과 그의 군대를 블레셋의 손에 넘기실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182.1)
 하지만 마지막 전쟁, 사울의 죽음, 다윗의 애가(삼상 31; 삼하 1)의 사실적 묘사에는 재난 중에서의 여호와의 역할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아마도 16:14에서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났다는 진술을 감안할 때에 이것은 이해할 만하다. 다윗이 블레셋으로 도망한 것과 아기스와 그의 군대를 철저하게 속인 것을 묘사하는 27-29장에서의 여호와의 손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아기스는 다윗의 속임수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다윗의 정직성을 확증한다: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네가 정직하여”(29:6). 아기스가 알기만 했더라면! 그리고 만일 다윗이 블레셋과 함께 사울을 대항하여 싸우러 나갔다면 다윗이 어떻게 행동했을지는 우리의 상상에 맡겨져 있다: 고마운 주인에게 대들어 싸웠을까? 자기 백성을 대항해 싸웠을까? (182.2)
 섭리처럼 보이는 것은, 다른 블레셋 장군들이 끼여들어서 다윗이 전장에 나가지 못하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저자는 여호와의 손을 운운하지 않았다. 이것은 의도적이었는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은 상승 중에 있었다. 그러나 그가 여호와의 길로 가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의 악한 마음의 성향을 따라 가려고 결정하면 그 결과는 어지러웠다. (182.3)
 그러나 사무엘상의 첫 독자들에게는 이런 결과들이 이스라엘의 과거와 현재의 상황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를 죽이고 법궤를 빼앗아 간 후에 이스라엘을 블레셋이 다스린 것과 같이, 블레셋이 여호와의 기름부은 자를 전쟁에서 죽였을 때에, 그들은 또 다시 이스라엘 땅을 다스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사무엘상의 마지막은 처음으로 돌아간다. 풍자적이게도, 이 두 경우에 블레셋 사람들이 아벡에 모였다(4:1; 29:1). 하지만 이번에 잡혀간 것은 법궤가 아니라, 새로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다윗이었다. 그는 그의 블레셋 주인 아기스가 마련한 도시에서 유배의 신세가 된 것이다. (183.1)
 초기의 그 어두운 때에 사무엘 선지자가 희망의 인물이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다”(7:9). 그 후에, “블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셨다(13절). (183.2)
 그러나 그때에 백성들이 왕을 구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셨다. 심지어 사울이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리라”(9:16)고 선언하셨다. (183.3)
 이제 사무엘과 사울이 죽었다.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그 땅을 다스렸다. 용모 준수하고, 재능 많은 이새의 아들에 의해 어떤 희망이 제시되었는가? 사무엘상의 독자들은 그들의 상태가 사무엘상 4, 31장의 형편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느꼈을 것이다. 외세가 나라를 주장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왕을 포함하여, 유랑하고 있다. 그들의 신전도 사라졌고, 법궤도 사라졌다. 다윗의 일어섬과 넘어짐의 이야기를 읽을 때에, 처음의 독자들이 무엇을 알았으며 무엇을 기억했는지를 되새긴다면 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엘리 집안의 몰락이 사울을 친 재난의 전조였다. 그리고 사울 왕의 몰락은 다윗 집안의 실패와 이스라엘 왕권의 실패의 전조였다. 다윗과 솔로몬의 모든 영광에도 불구하고, 왕권의 결국은 이전 역사에 다른 빛을 비춘다. (183.4)
 ■ 말씀에 들어감
 사무엘상 24장부터 사무엘하 1장까지 읽은 후에 24-26장으로 돌아가서 다음의 연구 문제들에 주의하면서 다시 읽으라: (184.1)
 1. 설득력 있는 동료들. 동료들이나 친구들이 어떤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자한 내용이 들어 있는 구절들을 나열하라. 사무엘상 24-26장에서 본 것에 기초하여 동료들이, 선량하든지 악하든지, 우리의 의사 결정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관하여 간단한 문단으로 표현하라. (184.2)
 2. 위기일발. 24장26장에서 다윗의 “위기일발”을 연구하고 그들 사이의 유사점과 상이점을 써라. 각 장에서 독특한 교훈을 찾을 수 있는가? 각 경우의 교훈은 무엇인가? (184.3)
 3. 정직성. 다윗이 걸출한 정직성을 드러낸 구절들을 나열하라. 이런 경우에서 그는 여호와와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였는가? (184.4)
 4. 지리. 지도와 성경 사전의 기사들을 참고하여, 24, 26장의 주요 사건들의 위치를 결정하라. 지리는 이야기의 흐름을 어떻게 도와주는가? (184.5)
 5. 정상적. 사울이 “정상적”으로 보이는 구절들을 열거하라. 성경은 그가 가끔씩만 “악한” 영의 영향 아래 있다고 시사하는가? 그대의 대답을 설명하라. (184.6)
 ■ 말씀을 탐구함
 위기일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