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하기 짝이 없는 의학 공부에 뒷바침이 없이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공부하랴 학비를 조달하랴 하게 되면 정신없이 바쁜 나날이다. 선친이 친구인 은행가에게 학비 원조를 부탁하신 모양이다. 그 댁에는 세자녀, 즉 중학 입학 준비생, 대학 시험 준비생, 여중 2학년생 등이 있어, 그들의 가정교사 겸 후일에 알고보니 사위 후보생으로 부른 것이다. 그럴 줄을 알았던들 아예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왕 와놓고 경솔하게 다시 뜰 수도 없어 꾹 참고 견디어 보기로 했다. 모든 것을 운명에 맡겨 버렸다. (219.1)
 그래도 등교 시간이 제일 즐거웠다. 학교가 끝나면 육상부에 적을 두었던 관계로 서울운동장으로 향하곤 하였다. 원래는 마라톤이 나 800m와 1,500m 등 중거리를 하기로 하였다. 모든 것을 다 잊어 버리고 몸을 단련한다는 목적으로 매일같이 빠지지 않았다. (219.2)
 소격동으로 이사 온 후에는 냉수 마찰도 냉수욕도 중단이되고, 운동 후의 샤워가 고작이었다. 해가 느직해서 집에 돌아와서 저녁 상을 물리고 나면, 날마다 피 곤에 몸을 가눌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내 자유라곤 한 시 간도 없고 그날 해야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219.3)
 1. 고된 가정교사 생활
 학생 한명을 가르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3명, 그것도 두명을 각각 상급학교에 입학을 시켜 줘야만 된다는 책임감 때문에, 결국은 긴장감이 늘 과로를 이기곤 하였다. 그럭저럭 6 개월이 지났다. 다행스럽게도 작은애는 일류중학인 경복중학에 입학이 되었고, 큰애는 일류 미술 학교인 동경미술학교에 응시하였다. 짐은 좀 가벼워져서, 중학 1년생과 여중 2년생만 지도하면 되었다. (219.4)
 학교에 가서는 강의를 노트하는 것이 고작이요 집에서 노트를 들여다보는 것은 꿈도 못 꾸었다. 시험때가 되어야 억지 억지 노트를 들여 다보면서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을 표시한다. 그것을 일본말로는 “야마가께” 라고 하는데, 그것이 고작이다. 좋은 성적은 얻으리라고는 꿈도 못 꾸고 다만 재시험 안치르는 것이 목표였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러게 하다 보니, 해부노트에 야마가께한 것이 무려 200여개나 되었다. 다행히 시험 문제가 전부 그 속에서 출제되긴 하였다. (220.1)
 겨울방학에 공부 좀 해볼까 하고 노트를 싸가지고 집에 갔더니, 부랴부랴 아이스하키 선수들 합숙을 한다고 긴급히 상경하라는 전보가 왔다. 따스한 아랫목에서 그 동안 못한 공부도 하며 내 고향 아늑한 품에 안기고 싶었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한강에서 합숙을 하며 때로는 뜨거운 오조니(단팥죽의 일종)로 추위를 달래던 일이 요새는 아이스하키 경기를 볼 때마다 생각나고 아득한 그 옛날로 되돌아가게 한다. (220.2)
 그 때, 경성의전에는 축구만이 한국 학생들의 유일한 경기였다. 그래서, 아이스하키부만이라도 한국 학생들의 것이 되었으면 하는것은 숨은 소망이었다. 처음에는 멤버 가운데 한국인이 나 한 사람뿐이었으나, 해가 갈수록 한 사람 한 사람씩 증원을 시켜 나갔다. 과연 그 노력은 헛되지 않아, 졸업할 때에는 전원이 한국인으로 바뀌었고, 그 다음 해에는 인터칼레지 리그전에서 강적이었던 연전을 꺾고 통쾌하게도 우승을 거뒀다. (220.3)
 2. 시간에 쫓긴 나날들
 의과하면, 학교 공부만도 시간의 여유가 없다. 거기다가 아침 저녁으로 여러 애들을 가르쳐 주어야한다. 학교가 끝나면 겨울철은 아이스하키, 다른철은 서울운동장으로 거기다가 2학년때부터는 교내 기독청년회의 음악부까지 맡았다. 그야말로 주마등과같이 핑핑 돌아가는 그날그날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바쁜 생활 가운데 데이트까지 해야 하니, 그것도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모르겠거니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시켜 주는 것이었다. (221.1)
 뚱뚱한 주인 마나님 왈 “여보! 오늘은 걔네(큰딸)가 교내 음악회를 한다고 초청장을 한 장밖에 못가져 왔으니 오늘 저녁엘랑 걔 데리고 좀 갖다 오실라우?” 언제든지 그저 “네”다. 걔가 크레오파트라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어여쁘기도 했지만, 나는 다만 속히 내 공부를 마치는 것이 소원이 었다. (221.2)
 “여보, 걔 저금을 시켜 줘야 할텐데, 내가 오늘 바빠서 못가니 대신 좀 갖다 넣어 주오.” 그저 “네” 뿐이다. 딸자랑 돈자랑 또 나를 테스트하는구나 생각하면서 ∙∙∙ . (221.3)
 “저 평택에 걔 위해 토지가 얼마가 된다우.” 돈 한 푼이 없어 쩔쩔매는 터에 죽을 지경이다. 모든 것은 내게 그림의 떡이다. 그래도 방학만 되면 참으로 해방된 기분이다. 이와같이 분주한 생활 때문에 오히려 병들었던 신경은 점차로 회복되어 거의 정상적으로 되었다. (221.4)
 3. 담을 넘다 찢어진 바지
 매일 저녁 8시만 되면 대문을 꼭 닫아 버리고 만다. 주인아저씨는 은행의 중역이라 매일같이 늦게 오기가 일쑤다. 그럴 때마다 안절부절 못하는 것은 문간지기 안잠자리다. 밖에서는 왜 문 안 여느냐 호통, 문 열어 준 후에는 문 열어 주었다고 야단, 참으로 웃지 못할 진 풍경이다. (221.5)
 나 역시 주인 못지않게 늦을 때가 많다. 음악부의 음악 연습, 경기부의 파티 등 밤 8시가 지나는 것은 보통이다. 그럴때마다 연극이 벌어진다. 내 체면에 문 열어 달라고 할 용기는 물론 없다. 어떻게 생각하면 좀 비굴한 것 같기는 하나,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222.1)
 그 집 앞마당에는 높은 담이 있다. 담만 있다면야 문제는 없다. 그 담장 위에는 가시 철사가 또 둘려있다. 그런데, 높은 담을 뛰어오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가시 철사가 둘려 있으니, 이와 같은 안방마님의 진지를 뛰어넘어 간다는 것은 참으로 난공사다. (222.2)
 그것도 매일같이 운동으로 단련한 몸이라 무사히 넘어가곤 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이냐! 어느 날, 넘어 뛰노라니 사타구니에서 “북”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222.3)
 이것 야단이다. 단 한 벌밖에 없는 교복 바지 밑이 쭉 찢어진 것이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낙상한다는 말과같이, 그만실수를 해서 바지 밑이 가시줄에 걸렸고, 동정심이 없는 가시는 바지를 째놓고야 말았다. 그것은 입학 당시 양복점에 서 맞춰입은 교복이 아닌가. 서투른 솜씨로 수리를 해보았으나, 너무 많이 찢어져서 소용이 없었다. (222.4)
 하는 수 없이 주머니 돈을 다 털어 가지고 현 명동 4가인지 5가인지 그 곳 로스케의 기성복점을 찾았다. 입어보니 소매와 다리 길이는 맞는데, 내가 허리가 잘쏙한 미남형이 되어 그런지는 몰라도 양복 웃저고리가 절구통같다. 값을 깎고 깎아서 주머니 돈 다 털어주고 좌우간 한벌 사왔다. (2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