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확증 13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복스러운 확증
 어떤 성경 번역들(NRSV, NASB)은 그것이 마치 여기서 문제가 있는 것처럼 이 구절을 괄호 안에 넣었다. 그러나 이것은 일곱 마지막 재앙(15장16장에서 묘사된)에 대한 종말적 상황에서 이 복이 가진 특별한 기능을 평가 절하한다. 이 복은 종전의 것을 능가하여 우리를 인간의 재앙이 종결된 이후의 때에 둔다(참조 계 15:5-8). 여섯 째와 일곱 째 재앙 사이에 위치함으로써 그것은 세계적인 바벨론의 멸망의 순간에 온다(계 16:17-21). 그것은 거기서 성도들이 거짓 안전에 잠들지 않고 예수와의 교제 안에 남도록 위치되어 있다. 선지자들은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의 옷,”“의의 옷”을 주실 수 있음을 알았다(사 61:10; 슥 3장). (194.3)
 예수의 영광 안에서 그를 대면하기 위하여 각 성도는 그의 의의 옷을 입어야 한다. 우리가 라오디게아 교회를 위해 하시는 당신의 말씀을 들을 때, 예수께서는 그것을 지금 허락하신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계 3:18, 강조 첨가). 교회를 향한 사도 요한의 첫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기록했다: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일 2:28). 이것은 깨어 옷을 입고 있는 것을 예수 안에서 “거하”거나 사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일찍이 포도나무와 그 가지의 비유를 사용하심으로써 예수는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요 15:4)고 권고하셨다. (194.4)
 요한계시록 16:15의 복은 3:18의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예수의 권면과 일치한다. 둘 다 우리의 벌거벗음과 수치를 가리는 “옷”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앞 구절에서 주님께서 지금 당신의 의의 옷을 받으라고 우리에게 강력히 권하면서 요한계시록 16장에서 그분은 우리가 당신의 보호 없이는 그의 진노의 날에 설 수 없다고 우리에게 경고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지한 회개로 그분께 와야 한다(참조 계 3:19). 오직 그분의 의의 선물만이 밤중에 “도적 같이” 예상치 않은 시간에 그가 오실 때, 그의 다시 오심을 위해 신자들을 준비 시킬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는 그의 혼인 잔치가 시작되기 전에 당신의 혼인 예복의 선물을 찾을 것이라고 경고하셨다(참조 마 22:11). (195.1)
 예수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음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계 19:9). (195.2)
 예수께서 저녁 식사의 손님이셨을 때, 그는 누군가가 이렇게 외치는 소리를 들으셨다: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눅 14:15). 예수께서는 큰 잔치의 비유를 말씀하심으로 대답하셨다. 그분은 주인이 청함 받은 모든 자들에게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눅 14:17)라는 통지를 보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초청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변명을 했다. 오직 낯선 자들, 가난한자들, 그리고 불구자들만 잔치에 참석했다. 예수께서는 이런 예언적 경고로 당신의 이야기를 마무리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눅 14:24, 강조 첨가). 예수께서는 많은 이방인들이 그를 예언의 메시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마 8:11). (196.1)
 요한계시록 19장은 이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예수의 재림 후에 하늘에서 열릴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모든 반역적인 악인들과 그들의 종교 지도자들이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소멸되는 “하나님의 큰 잔치”와 정확히 대조를 이룬다(참조 계 19:17-21). 우리의 확증의 느낌을 위하여 천사가,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계 19:9)라고 자신의 복에 덧붙인 것은 필요 불가결한 것이다: 이 보다 더 큰 확증이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을까! (196.2)
 네 번째 복은 천사들, 장로들, 그리고 산 생물들이 “할렐루야”를 네 번 외치는 하늘로 우리를 인도한다(계 19:1-6). 할렐루야는 “할렐” 혹은 이스라엘의 유월절에 불렀던 시편 113-118편의 찬양시를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모든 하늘이 기쁨으로 외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결국 핍박하는 “음녀”에게 공의를 베풀고, 당신의 종들의 피를 보수하고(2절), 또한 바벨론을 멸망시키셨기 때문이다(3절). 그리고 “어린양의 노래”에서 영화롭게 된 성도들은 그들의 거룩하신 구속주께 찬양을 드린다(계 15:2-4). 엘렌 화잇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인상적으로 묘사했다: (196.3)
땅 위의 싸움이 마쳐지고 성도 모두가 본향으로 모일 때, 우리의 첫째 주제는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일 것이다. 두번 째 주제는 은혜와 구속의 노래인 어린양의 노래일 것이다. 이 노래는 더욱 크고, 더욱 고상하고, 더욱 웅장한 가락이 되어 하늘 궁전에 메아리치고 다시 메아리치게 될 것이다.6)
(197.1)
 이 종말론적 조망에서 영화롭게 된 성도들은 혼인 잔치의 손님이 될 것인데, 이때 신부는 “새 예루살렘”—성도들이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어린양과 더불어 영원히 살게 될 거룩한 도성—이다(참조 계 21:2, 9, 10, 22, 27). “손님”“신부” 사이에는 분리가 없다. 두 상징들은 통합되어 있다. 앨런 F. 존슨(Alan F. Johnson)은 이렇게 설명한다: (197.2)
약혼 기간이 끝났다. 이제 충성과 고난으로 준비된 교회가 그녀의 사랑하는 배우자 그리스도와의 구원과 영광의 온전한 경험 속으로 들어갈 준비가 된 시간이다. 이 연합의 깨달음에 대한 보다 온전한 계시가 21장22장에 묘사되어 있다.7)
(197.3)
 요한계시록 19:7, 8에서 하나님의 은혜(“세마포를 입게 하셨은 즉)와 제자도(“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사이의 조화를 주목하라. (197.4)
 하늘에서 왕 노릇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계 20:6). (198.1)
 이 구절은 축복이나 혹은 행복, 그리고 거룩이 협력하여 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예수의 복음의 구속적 명령의 핵심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마 5:8; 히 12:14, 강조 첨가). (198.2)
 시간적으로 요한계시록 20장의 복은 앞에 나온 것을 넘어서서 우리를 이끈다. 그것은 “첫째 부활”로 불멸성을 입게 될 성도들이 하늘에서 단순히 축하하고 노래하는 것 이상을 하게 될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들은 예수와 더불어 천년 동안 감당할 “제사장과 ∙∙∙ 왕”으로서의 신성한 책임을 부여받게 될 것이다. 그들은 타락한 천사들을 포함하여 회개치 않은 자들을 심판하는 일에 있어서 공동 통치자와 평가자가 되는 거룩한 일을 위임받는다(참조 마 19:28; 고전 6:2, 3). (198.3)
 요한은 이렇게 기록했다: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문자적으로: ‘예수의 증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NASB]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계 20:4, 강조 첨가). 하늘에 있는 이 “보좌들”에 대한 요한의 배치는 그들이 하늘 법정, 곧 다니엘이 본 것과 유사한 것을 상징함을 드러낸다(참조 단 7:9, 10, 13, 14). 다니엘의 이상에서 핍박받는 성도들이 거룩하신 심판자에 의해 심판받고 옹호받는데 반해(단 7:22), 요한계시록 20장에서 이 신실한 성도들은 예수와 함께 보좌에 앉아 심판하는 권세를 얻는다. “여기 역사의 분명한 진보가 있고, 또 그것은 다니엘 7장요한계시록 20장의 하늘 법정 회기가 서로 연계되어 있는 것을 가리킨다. ∙∙∙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게 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예는 승리자들을 위한 것이다.”8) (198.4)
 예수의 증거를 지키고 자기들의 옷을 빠는 자들은 복이 있음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 22:7, 14). (199.1)
 요한계시록 22:7-21 은 우리의 지금의 현실과 책임을 상기시킨다. 그것은 하나님과 함께 겸손히 걷고 예수를 따름으로써 미래의 기쁨을 미리 맛보는데 참여하도록 우리를 부른다. 이것은 마지막 두 복에 표현되어 있다: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계 22:7).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계 22:14). 이 두 가지 기독교인의 의무들이 서로 관련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들에 대한 외형적인 맹종 자체가 우리를 거룩한 성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신자들 역시 상징적으로 “그 두루마기를 빠는”(22:14, 제일 오래된 번역본에 따르면) 것으로 묘사된 것처럼 자기 영혼들을 계속해서 정결케 할 필요가 있다.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