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확증 13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복스러운 확증
 요한의 묵시는 신약의 다른 어떤 책보다 인내하는 신자들을 위한 영생의 확증을 더 많이 제공한다. 이 확증들은 전체 책의 구조를 제시하고,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위한 완전한 확증의 주제를 제공하는 일곱 개의 축복 선언문들 속에 집중되어 있다. (189.1)
 요한계시록이 정확히 일곱 개의 복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모세의 이야기가 6일간의 세상 창조에 이어 일곱째 날에 하나님의 쉬심을 묘사한 이래 7이란 숫자는 충만, 완성, 그리고 완전을 상징했다. 여호와께서는 가인에게 “칠 배” 혹은 완전한 복수를 약속했다(창 4:15, 24). 속죄하는 피를 일곱 번 뿌리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완전한 정결을 가져다주었다(레 16:14, 19).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일곱 개의 눈으로 보신다(슥 4:10). 하나님의 나라에서 태양은 “칠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을 것이다(사 30:26). (189.2)
 신약에서 일곱 귀신에 들린 것은 완전한 점유를 상징했다(눅 8:2; 마 13:43-45).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자기 형제를 단지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마 18:21, 22)이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완전히 그리고 제한 없이 하라는 의미이셨다(참조 눅 17:4). 심지어 마태는 숫자 7을 “자신의 성취 신학에서 문체적 표현”으로 사용하였다.1) 하지만 사도 요한은 7이란 숫자를 신약의 다른 저자들보다 더 많이 사용하였다. 그는 자신의 묵시를 아시아의 로마 속주에 있는 일곱 교회—즉 모든 교회들(1:4, 11)—에 보내고 이 숫자 위에 요한계시록의 구조의 기초를 놓았다. (190.1)
 요한계시록의 일곱 복들은 그분께서 약속의 땅으로 그들을 안연히 이끌어서 마지막 날 그들을 완전하게 변호할 것이라는 철저한 확증과 소망을 하나님의 억압받는 백성들에게 가져다주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고스넬 요크(Gosnell Yorke)는 “이 일곱 복들이 마지막 혹은 종말론적 사건들의 순서로 중요한 지점들에 위치되어 있으면서 현재와 잃어버린 낙원의 일시적 기간으로부터 미래와 회복된 낙원의 끝없는 기간으로 우리를 이끈다”고 진술했다.2) (190.2)
 요한계시록은 불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신앙 안에서 인내하도록 우리에게 최고의 격려를 제공하고, 또 일곱 복들은 본서의 핵심으로 볼 수 있다. 예수로부터 오는 이 구체적인 확증에 대한 연구는 우리 마음과 생애에 성화케 하는 능력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또한 우리의 소망을, 다가오는 세계에서 구속과 구원의 확실성으로 향하게 한다. “신자들은 ∙∙∙ 열려진 하늘 문을 엿보게 될 것이며, 따라서 마음과 정신은 심령이 청결한 자의 보상이 될 그 축복을 실현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이 계발해야만 할 품성에 대하여 깊은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3) (190.3)
 읽고 듣고 마음에 간직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 (191.1)
 요한의 묵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계시와 관련된 축복이나 혹은 영적 유익을 약속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속히 될 일”(계 1:1)을 그의 종들에게 보여주도록 그에게 주신 것이다. 이 계시의 사슬은 요한의 묵시가 거룩한 권위로써 이야기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우주적인 효력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그 책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부터 온 “예언”(1:3)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그것은 권위성을 주장한다. 그것은 구약의 기록들과 더불어 교회 예배에서 공적으로 낭독되어야 한다(딤전 4:13). (191.2)
 예수께서는 뜨뜻미지근한 교인들을 책망하고 회개하지 않은 자들에게 그의 진노를 고지할 뿐만 아니라, 이 예언서를 읽는 자들과 듣는 자들을 위한 축복을 선언하기도 하신다. 하지만 그는 이 축복을 무조건적으로 허락하지 않으신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에서 그 책을 큰 소리로 읽도록 위임받고(계 1:3, NRSV; 1:16, 20), 또 청중들은 그것을 마음에 간직하고 그 안에 기록된 것을 지켜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그것을 읽거나 듣는 것이 충분하지 않을 것임을 뜻한다. 시금석은 실제적인 기독교에서 그 권고들에 주의를 기울이는데 있다. (191.3)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혹은 ‘계명’]과 예수의 증거 [혹은 ‘믿음’]” (참조 계 1:2, 9; 6:9; 12:17; 14:12; 20:4)로서 성격상 이중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중적으로 만드는 요한의 이 진술들은 신약에 나오는 예수의 증거를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시한다. 요한계시록은 예수께서 대언의 영의 충만하심으로 말씀하셨다고 주장한다(참조 계 2:1, 7; 19:10; 요 3:31-34; 히 1:1-2). 결과적으로 히브리 신앙은 진보하여 기독교 신앙이 된다. (192.1)
 바울은 “우리 주의 증거”(딤후 1:8)를 위하여 죽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이 “예수의 증거”를 위하여 요한은 밧모섬으로 유배되고(계 1:9) 무수한 순교자들이 자기들의 생명을 바쳤다(계 6:9; 20:4). 구원을 위한 진리의 궁극적 표준이 성경 오직 성경뿐이라는 충성심은 예수를 따르는 자들의 마지막 세대를 구분할 것이다(참조 계 12:17; 14:12). 엘렌 화잇은 이렇게 설명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성경, 오직 성경만을 모든 교리의 기준과 온갖 개혁의 기초로 삼아 지지하는 백성을 가지실 것이다.”4) (192.2)
 시편 기자는 이렇게 선언했다: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시 119:1, 2). (192.3)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음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4:13). (192.4)
 요한은 마지막 시대의 사건들을 예견하는 중대한 시점에 이 복을 위치시켰다. 그것은 그리스도인 시대의 끝에 가까운 12장에서 14장 사이에 위치되어 있으며 예수의 재림으로 끝을 맺는다(계 14:14-20).문맥은 축복이 모든 죽은 사람들이 아닌 신앙의 최후 위기 동안 “주안에서” 죽는 사람들에게 선언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자금 이후로”라는 표현은 이 마지막 시대 상황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데, 그때 적그리스도가 “짐승의 우상”에게 절하기를 거부하는 모든 자들을 핍박할 것이다(계 13:11-17). 성도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귀하게 여기는 삼중 천사의 기별을 순종하기로 선택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하늘에서 인정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보상받게 될 것이라는 거룩한 확증을 가지고 있다. (193.1)
 엘렌 화잇은 최후의 위기의 본질을 이렇게 묘사했다: (193.2)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14:12]을 지키는 자들은 용과 그의 군사들의 분노를 느끼게 될 것이다. 사단은 세상을 자기에게 예속된 것으로 간주하고, 그는 타락한 교회들을 지배해 왔다. 그러나 그의 절대권을 거부하고 있는 작은 무리가 여기에 있다. 만일 그가 그들을 세상에서 제거해 버릴 수만 있다면 그의 승리는 이루어 질 것이다. 마치 그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이방 나라들을 충동한 것처럼, 가까운 장래에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세상의 악한 세력들을 충동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인간의 법령에 복종하도록 강요당할 것이다.5)
(193.3)
 요한계시록 14:13의 복은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 4:13-18고린도전서 15:51-57에서 확증한 것처럼 주 예수 안에서 죽는 모든 자들을 위한 위로를 가져다준다. 하지만 요한계시록 14장의 복에 대한 선언은 독특한 설득력을 가지고 예수의 백성의 마지막 세대들에게 적용된다. (194.1)
 깨어서 옷을 입고 있는 자들은 복이 있음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 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 16:15). (1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