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요한계시록 제13장 두 증인
 요한계시록 11:3-14은 이방인들에 의하여 거룩한 도성이 짓밟히는 마흔두 달, 즉 1,260년 동안에 하나님의 백성이 복음을 증거하면서 적대적인 세계에서 당하는 쓴 경험을 묘사한다. (180.2)
 두 증인의 신원 (11:3-6)
 하늘에서 들린 음성은 요한에게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두 증인을 세울 것이고, 그들은 1,260일의 고달픈 세월 동안 베옷을 입고 예언할 것이라고 하셨다. 이 기간은 예언적 마흔두 달과 같은 기간이며,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백성을 억압하도록 허락받은 기간이다(계 11:2). “예언하다”라는 말은 요한계시록 10:11을 생각하게 하며, 이 구절에서 요한은 많은 백성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것은 요한의 예언하는 사명이 교회에까지 확대되었음을 보여 준다. (180.3)
 두 증인이란 개념은, 어떤 것이 사실인지를 밝히기 위해서는 적어도 2명 이상의 증인이 있어야한다는 고대 이스라엘의 법률 제도(신 19:15; 요 8:17-18)에서 유래하였다. 예수님도 이런 원칙을 따라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그의 제자들을 내보내실 때에 2명씩 짝을 지어 내보내셨다(막 6:7; 눅 10:1). 초기교회도 같은 관습을 계속해서 따랐다(행 13:2). 복음을 전하는 두 증인의 모습은 선포되는 복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해 준다. 그런 것을 거하는 것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180.4)
 두 증인은 베옷을 입었는데, 이런 옷은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 입던 일상적인 의복이었다(사 20:2; 슥 13:4). 요한계시록 11:10에서 그 두 증인은 두 선지자라고 불린다. 게다가 베옷은 또한 상복(喪服)이었다(창 37:34; 에 4:1-4). 베옷을 입고 1,260년의 예언 기간 동안에 예언하는 두 증인에 대한 이와 같은 묘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에 복음 기별을 선포할 때 겪게 될 역경을 보여 주는 것이다(참고 계 6:9-10). 그들이 복음을 전한 기간[1,260일=3.5년]은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봉사하신 3년 반과 상응한다. 이 예언에서 요한은 그 작은 두루마리를 먹었을 때 입에서는 꿀과 같이 달았으나 뱃속에서는 쓰라렸다고 기록했다(10:8-11). 하나님의 백성은 흔히 그들의 증거가 거절과 경멸을 당할 때 쓰라린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180.5)
 요한은 두 증인에 대해서 구약의 몇 인물들의 예를 들어 묘사하였다. 첫째로, 요한은 두 증인을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계 11:4)로 묘사하였다. 여기서 요한은 두 감람나무 사이에 서 있는 금 등대를 본 스가랴의 이상을 가리키고 있다(슥 4:2-3). 스가랴는, 두 감람나무는 “기름부음 받은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는 자”(4:14)라는 말씀을 들었다. 기름부음을 받은 두 사람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유다의 총독 스룹바벨이었다. 스가랴의 이상 속의 두 증의 활동은 그 당시의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의 역할과 흡사하다. 그러므로 그 두 증인은 제사장과 왕족의 용어로 묘사되었다. (181.1)
 다음으로, 요한은 그 두 증인을 엘리야와 모세로 묘사했다(계 11:5-6). 엘리야는 하늘을 닫아 3년 반(=1,260일) 동안 비가 내리지 못하게 했고(왕상 17:1-7; 18:41-46; 눅 4:25), 또 한 번은 엘리야를 체포하려고 온 군인들에게 하늘이 불을 내려 그들이 불에 타 죽게 하였다(왕하 1:9-14). 이와 같은 방법으로 요한이 이상 가운데 본 이 두 증인은 1,260년(=3넌 반) 동안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 그들의 원수들을 칠 것이며, 하늘을 닫아 비가 내리지 못하게 할 것이다. 모세가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애굽 땅을 온갖 재앙들로 친 것과 마찬가지로(출 7-11), 이들 두 증인도 물을 피로 만드는 권능을 가졌고, 땅을 온갖 재앙으로 쳤다. (181.2)
 이 두 증인이 환생(還生)한 모세와 엘리야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이 두 증인은 상징적 인물들이다. 그들의 역할과 사역은 바벨론에서 돌아온 여호수아와 스룹바벨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와 역할 및 사역과 흡사하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두 선지자인 모세와 엘리야의 예언 사역에 함께했던 동일한 신적 능력이 요한계시록의 이 두상징적 인물의 예언 사역에 함께했다. (181.3)
 이 두 증인은 누구인가? 그들에 대한묘사는 이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경과 복음을 이 세상에 증거하는 자들임을 가리킨다. 요한계시록 11:8-9은 두 증인이 두 개의 개체가 아니라 하나의 개체임을 보여 준다(여기에 언급된 “그들의 시체”라는 말의 그리스어는 토 프토마 아우톤[to ptoma auton]”인데, 프토마[ptoma, ‘시체’]가 단수로 쓰였다—역자 주). 그러므로 두 증인을, 왕과 제사장의 역할로써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보는 것은 타당한 일이다(참고 계 1:6; 5:10).3 하나님의 백성이 중세 시대에 1, 260일 또는 마흔두 달간의 예언 기간에 고달픈 세월을 통과해야 했던 것은 그들이 성경에 충실했기 때문이다(6:9; 12:6, 13-14). (182.1)
 두 증인을 죽임(11:7-10)
 예언 기간인 1,260일 동안에 이 증인들이 그들의 일을 마친 후,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계 11:7) 것이다. 우리는 무저갱이란 사탄과 타락한 천사들이 거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눅 8:31; 벧후 2:4). 이 문단은 두 증인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서 그들을 죽이는 그 짐승이 사탄의 조종과 지지를 받는 권세임을 보여 준다. (182.2)
 짐승은 정치적 세력의 상징이다(계 13; 17:3-8). 요한계시록 17장은 마지막 시기 동안에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한 짐승을 언급한다(17:8). 그러나 두 증인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죽이는 짐승은 1,260일의 예언 기간이 끝날 때 등장하는 지배적인 정치 세력이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그 두 증인을 죽인 것이 프랑스 혁명 때에 성경을 공격하고 종교를 말살한 무신론자들의 행위라고 바르게 해석했다. 이 두 사건은 바로 1,260일의 예언 기간끝에 일어났다. (182.3)
 이 두 증인은 죽어서 공개적으로 “그 큰 성 길거리에”(계 11:8) 노출되어 있다. 구약에는 하나님께 거역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한 큰 도성들의 긴 목록이 기록되어 있다. 요한계시록에서 “그 큰 성”은 자주 마지막 때의 바벨론을 가리키는데, 이 도성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대항하는 최후의 쟁투에 가담하는 도시이다. 요한계시록 11장에서 이 큰 성은 예언 기간인 1,260일 끝에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다스리는 영토이다. 그 영토는 성경에 언급된 바 하나님을 거역하는 큰 도성들이 갖는 영적 특성들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소돔의 사악함과 도덕적 타락(창 19:4-11), 애굽의 무신론적 거만함(출 5:2) 그리고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계 11:8)인 예루살렘의 반역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예루살렘이 예수님을 거절하고 죽였듯이, 이 큰 상징적 도성도 그리스도 교회와 성경을 죽인다. (183.1)
 두 증인의 시체는 노출된 채 3일 반 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이 기간은 예수님께서 무덤 속에서 보내신 기간과 일치된다. 두 증인의 순교와 죽음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결된다. 그들의 죽음은 “땅에 거하는 자들”(계 11:10), 즉 악인들에게(계 6:10; 8:13; 13:8, 14; 17:2) 큰 기쁨을 안겨 주었다. 이들이 기뻐하는 이유는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하였기”(11:10)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듣고도 그것에 굴복하지 않는 자들의 양심을 언제나 괴롭게 한다. (183.2)
 두 증인의 부활 (11:11-14)
 3일 반 후에 하나님께서는 두 증인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그들을 부활시키셨다. 그리고 그분은 또한 그들을 일으켜 세우신다. 여기서 사용된 언어는 창세기 2:7에서 기록된 첫 사람의 창조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 이상(異象)의 전체 장면은 에스겔이 본 마른 뼈의 골짜기에 대한 이상을 상기시킨다(겔 37:1-10). 그 이상은 바벨론 포로 후에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이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원수들은 이스라엘이 완전히 패배하고 죽임을 당한 것으로 감지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명하셔서 마른 뼈들에게 생기가 들어가게 하셨다. 그리하여 생기가 그 시체에 들어갔고, 그들은 다시 살아나서 두 발로 일어섰다. (183.3)
 증인들이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났을 때, 그들의 원수들은 경탄과 공포에 사로 잡혔다. 그들은 자신의 양심을 괴롭게 하던 증인들을 완전히 침묵시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궁극적으로 승리한다. 그러고는 그들의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부활한 증인들은 기적적으로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두 증인이 모욕을 당하던 이전의 위치로부터 높이 올림을 받은 것은 땅에 거하는 자들의 두려움을 증폭시켰다. (184.1)
 역사적으로, 프랑스 혁명의 결과들 중의 하나는 성경에 대한 큰 관심이 일어난 것이었다. 이것은 특히 여러 나라에서 많은 성서공회와 선교기관들이 세워지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이런 것들은 성경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두 증인은 다시 살아났고, 인류 역사에서 일찍이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넓게 복음을 확산할 수 있는 무대가 설치되었다. (184.2)
 부활한 증인들이 승천(昇天)했을 때 큰 지진이 일어나 큰 도성의 10분의 1을 쳐서 7,000명의 사람들을 죽인다. 성경에서 10분의 1은 전체의 최소 부분을 상징한다.4 지진은 도시의 일부만을 쳐서 파괴시킨다. 그러나 또 다른 더 끔찍한 지진이 마지막 매에 바벨론을 쳐서 완전히 무너지게 할 것이다(계 16:18-19). 7은 충만 또는 완전을 의미하므로 7,000명이 죽는다는 것은 강퍅한 불신자들 전체를 가리킨다.5 (184.3)
 그 외의 사람들은 두려움에 휩싸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이것은 고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회심을 상기시키는데,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경험한 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단 4:34-37). “두려워하다”라는 단어와 “하나님께 영광을돌리다”라는 구절은 요한계시록 14:7“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라는 첫째 천사의 호소에 응답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것이 시사(示唆)하는 바는 두 증인이 옹호를 받고 높이 올려진 것과 큰 도성을 흔든 지진의 결과로 얼마의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것이다. (1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