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은 많은 동의어를 사용하여 왜 토라가 하늘의 태양과 별보다 더 그에게 개인적인 의미를 주는가를 감미롭게 표현하고 있다. 토라는 자체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밝게 해준다. 다윗도 태양이 자신의 육체에 가져다 주는 혜택을 부인하려 하지 않는다. 그의 요점은 토라가 보다 높은 차원에서, 보다 심오하게 인간을 축복한다는 것이다. 즉, 그의 영혼을 소성케 하는 것이다(
7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율법의
“완전성”이다. 그것은 믿는 자에게 고상한 도덕적 표준보다는 오히려 역동적이며 생생한 감화를 준다. 그것은 생동하는 완전인 것이다. 영혼을
“소성”케 해주는 것이다. 히브리 어에서는 문자 그대로 영혼을 돌이키게 또는 되돌아오게 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지적 회심 그 이상의 것이다. 바로 하나님과 영혼의 관계 회복을 말한다. 본래 이 사상은 영혼이—생명력의 중심체로서 그리고
“joi de vivre” 로서—슬픔과 공포 또는 죄의식 때문에 낙담 중에 쓰러졌음을 말해 준다. 그런데 토라가 이같이 고뇌 중에 있는 영혼을 구해 준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할지라! 그분의 약속의 말씀은 생명을 되찾아 주며 영혼을 지옥의 심저로 부터 이끌어 올려 준다. 마치 삼손이 목마름으로 거의 죽게 되었다가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
삿 15:19) 되었듯이 토라는 하나님을 목마르게 찾는 자들에게 생명수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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