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마태복음 제 II 부 왕의 선포 (4:17-16:20) 7. 왕이 물러남 (14:1-16:20)
 그러나 예수의 말씀에 대한 이 해석은 교회가 그 위에 세워진 기초는 예수이라고 가르치는 다른 신약의 구절들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그와 같이 바울은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교회를 위한]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3:11), “그리스도 자신”이 교회의 “모퉁이돌”(엡 2:20)이라고 기록했다. 베드로 자신도 예수를 교회가 그 위에 건축된 “산 돌”,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라고 제시한다(벧전 2:4-7; 행 4:11 참고). 그 외에도 마태복음의 앞부분에서 우리는 그의 가르침이 반석이라고 예수께서 주장하시는 것도 보았다(7:24). (196.2)
 이런 사실들을 취합해 볼 때, 건강한 교회가 그 위에 설립되고 지어지는 암반(巖盤) 기초가 된 것은 메시야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에 대한 베드로의 고백이었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제일 안전한 듯 보인다. 그리스도 교회는 그리스도를 그 중심에 모셨을 때에는 항상 든든히 서 왔다. 그리고 교회가 예수를 그 중심에 모셨을 때에는 “지옥의 문”이 교회를 이길 수 없었다. (196.3)
 베드로는 교회가 그 위에 설립된 “그 반석”이 아니었지만, 그가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초기에는 제자들 가운데서 걸출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의 탁월함에 아무런 이론(異論)이 없지 않았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께서 베드로를 축복하신 후에도, 제자들은 누가 가장 크냐를 놓고 계속 다투었다(18:1; 20:20-27; 막 9:34; 눅 9:46; 22:24). 많은 세월이 흘러간 후에 고린도 교회는 그 문제에 관해 전혀 분명치 않았을 뿐 아니라(고전 1:12), 우리는 첫 교회 총회 때 야고보가 의장을 맡은 것을 발견한다(행 15). (196.4)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에 관한 베드로의 고백과 결부된 복(福)의 한 부분은 예수께서 천국의 열쇠를 선물하신 것과 그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그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는 약속이었다(19절). 그러나 마태복음 18:18에서 예수께서 이 축복의 후자 부분을 모든 제자들에게 수여하시고 있음을 주목하라. 이것은 마태복음 16장의 복이 베드로 개인에게가 아닌, 그의 고백에 결부되어 있었다는 또 다른 증거이다. (197.1)
 교회가 그 위에 건축된 반석에 대한 해석이 교회 역사를 통하여 내내 논전을 거듭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천국의 열쇠”에 대한 해석도 그러했다. 그 열쇠는 문을 통해서 백성들을 입장시키는 것을 가리키는 은유임이 명백하다. “열쇠”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는 실마리는 누가복음 11:52에서 발견된다. 거기서 예수께서는 “지식의 열쇠”를 오용함으로써 백성들이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은 데 대하여 서기관들을 정죄하신다. 또한 마태복음의 뒷부분에서 우리는 바리새인들이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 못하게”(23:13) 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께서 그들을 몹시 질책하시는 장면을 발견한다. 이 구절들은 그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요한복음 17:3에서 하신 예수의 말씀과 결부시켜 생각할 필요가 있다(또한 요 6:68을 보라). (197.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활동을 하면서 그 열쇠를 오용하여 백성들이 예수에 관한 지식을 얻지 못하도록 가로막아 왔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베드로는 그 길을 열 것이다. 베드로가 그의 설교로 많은 유대인들을 왕국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사도행전 2장3장, 이방인이 들어오도록 그가 문을 열고 있는 사도행전 10장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바로 이런 장면이다. 물론 그 역할은 베드로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마태복음 28:18-20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그의 모든 제자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한 지식을 얻고 침례를 받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열쇠를 “세상 끝날까지” 사용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을 발견한다. (197.3)
 베드로의 축복은 또한 묶고 푸는 것—18:18에서 모든 제자들에게로 확장된 책임—을 포함한다. 앨프레드 플러머(Alfred Plummer)는 그 두 단어는 전문적 표현으로서, 유대인 공동체는 그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매는 것’은 금지하는 것이요 ‘푸는 것’은 허용하는 것이다”(Plummer, 231). 이 사상은 16:19에 대한 「새영어성경」(New English Bible)에 반영되어 있다. “지상에서 그대가 금지하는 것은 하늘에서도 금지될 것이며, 지상에서 그대가 허락하는 것은 하늘에서도 허락될 것이다”(또한 「필립스역」을 보라). 그러므로, 그 구절의 밑바탕을 이루는 사상은 요한복음 20:23에서처럼, 그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거나 들어가도록 만드는 것이나 아니면 죄를 용서하거나 용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행위의 규제와 가납될 수 있는 표준의 설정인 것이다. 그 열쇠들은 풀고 매는 것이 아니라 입장 허가와 축출의 일을 시사한다. 다시 그 구절은 누구든지 네가 매면”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네가 매면”이라고 말한다. (198.1)
 이 기능은 기독교 운동이 유대교와 그 생활 방식에서 분리되었을 때 그 운동 내에서 필수적 요소가 되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그 나름의 표준을 정할 필요가 있었다. 드러난 바와 같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교회에서 서로 대결하자 그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사도행전 15장의 교회 총회는 교회 지도자들이 이방인 개심자들을 위한 행동의 표준들을 결정할 때 그들의 묶고 푸는 기능을 수행하는 한 본보기를 우리에게 준다. 복음 전도적인 열쇠들의 기능과 같이, 행위의 표준을 정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이 계속 짊어져야 할 책임이다. (198.2)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경고하심으로서 그들과의 대화를 마치신다. 왜 비밀에 부쳐 두어야 하는가? 거기에는 몇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 용어는 유대인들의 소망에 그처럼 귀중했던 정복하시는 메시야에 의거하여 너무도 쉽게 정치적으로 이해되고 그릇 해석될 소지가 있었다. 모리슨이 지적하듯이, “예수께서 메시야이심을 아는 것과 그 메시야 직분이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Morris, Matthew, 427). 그리고 마태복음 16장의 나머지 부분이 증명하듯이 그 의미는 제자들도 분명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198.3)
 데이비스와 앨리슨은 첫 복음서의 전개 과정에서 마태복음 16:13-20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들은 이 구절이야말로 마태의 네 번째 이야기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본다. 첫 번째 이야기 부분(1:1-4:23)은 우리에게 예수를 소개해 준다. 두 번째 부분(8:1-9:38)은 이스라엘에 대한 그의 능하신 행위들과 전도를 상세히 말한다. 그리고 세 번째 부분(11:1-12:50)은 메시야가 행하신 일들에 대해 단체적 이스라엘이 보인 부정적 반응을 기록한다. “그러고 나서 그 다음 이야기 부분인 13:53-17:27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메시야 배척의 결과이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새롭게 탄생된다. 달리 말해서, 에클레시아(교회)의 탄생—유대인과 이방인의—의 원인을 이스라엘이 그들의 종말적 부르심에 부응하는 삶을 사는 데 실패한 데서 직접적으로 찾고 있다”(Davies and Allison, 2:642). 이와 같이 16:13-20에서 우리는 기독교 교회론의 기원을 본다. (199.1)
 ■ 말씀을 적용함
 1. 그리스도인 삶에서 언제 물러나고 언제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우리가 알 수 있을까? 나는 대결하거나 평화스럽게 공존해야 할 때와 시기에 관하여 그리스도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199.2)
 2. 제자들은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해 주시려는 것을 귀담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후에 군중들과 함께 휩쓸렸다. 나는 말씀을 읽으면서 얼마나 귀를 기울여 듣는가? 그의 말씀을 읽으면서 내가 선입견과 나의 희망 사항들을 거기 주입하고 있거나 아니면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는 것에 대해 나는 어떤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가? 나는 우리 모두가 저 너무도 인간적인 위험성을 이길 수 있는 방법들을 나열할 수 있는가? (199.3)
 3. 어떤 방법으로 기독교는 나를 더욱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왔는가? 어떤 방법으로 나는 더 나아질 수 있는가? 누군가 생활 양식 쟁점들이나 교리 등에 있어서 나와 의견을 달리할 때 내 자신이 분노를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런 상황에서 누가 변화될 필요가 가장 큰가? (200.1)
 4. 예수께서는 나에게 대해서 어떤 분이신가? 그의 임재가 나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나는 그 열쇠들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충실한 청지기였는가? 어떤 방식으로 나는 더 나아질 수 있을까? (200.2)
 ■ 말씀을 연찬함
 1. 16:1에서 우리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그리스도에게 “표적”을 요구하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첫 복음서에서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대의 성구사전(완벽 성구사전을 사용하는 것이 더 좋다)을 사용하여 신약에서 표적이나 기적들에 관하여 그대가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지 살펴 보라. 그대의 마태복음 노트에 그대의 주요한 발견들을 범주별(範疇別)로 요약하라. 이제는 구약을 조사하라. 구약에서 표적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그대의 연구는 예수께서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되셨던 그 유대인들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 (200.3)
 2. 15:1-16을 다시 읽으라. 마가복음에서 그와 평행이 되는 구절을 비교하라. 마가는 이 구절에 어떤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이는가? 마가복음 7:3, 4, 11, 19에서 삽입구(揷入句)들이 사용된 이유와 의미가 무엇인가? 예수께서 마가복음 7:19의 음식들로 뜻하신 바가 무엇이라고 그대는 생각하는가? 마태복음 15장마가복음 7장의 문맥 가운데서, 모든 음식이 정결하다고 선언하는 것과 모든 음식이 건강에 좋다고 선언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를 설명하라. 그 문맥을 감안해 볼 때, 그대는 모든 음식이 “정결하다”고 믿는가? 그렇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 음식들을 건강에 좋고 먹기에 좋게 만드는가? 한두 문단으로 그대의 답변을 설명하라. (200.4)
 ■ 말씀의 추가 연구